3. 코끼리를 눈으로 보고도 코를 찾는 사람들
그 생김새가 몸뚱이는 소인데 꼬리는 나귀 같고, 낙타 무릎에다 범의 발굽을 하고 있다. 털은 짧고 회색으로, 모습은 어질게 생겼고 소리는 구슬프다. 귀는 마치 구름을 드리운 듯 하고, 눈은 초승달처럼 생겼다. 양쪽의 어금니는 크기가 두 아람이나 되고, 길이는 한 자 남짓이다. 코가 어금니보다 더 길어서 구부리고 펴는 것은 자벌레만 같고, 두르르 말고 굽히는 것은 굼벵이 같다. 그 끝은 누에 꽁무니처럼 생겼는데, 마치 족집게처럼 물건을 끼워가지고는 말아서 입에다 넣는다. 其爲物也, 牛身驢尾, 駝膝虎蹄. 淺毛灰色, 仁形悲聲. 耳若垂雲, 眼如初月. 兩牙之大二圍, 其長丈餘. 鼻長於牙, 屈伸如蠖, 卷曲如蠐. 其端如蠶尾, 挾物如鑷, 卷而納之口. |
그 다음 단락은 코끼리의 외모에 대한 묘사이다. 코끼리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독자를 위해 누구나 알고 있는 사물에 견주어 코끼리의 각 부분을 친절하게 그려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관심은 쓸데없이 긴 어금니, 자벌레 같고 굼벵이 같고 누에의 꽁무니 같고 족집게 같은 코로만 집중되어 있다.
혹 코를 주둥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어, 다시금 코끼리의 코가 있는 곳을 찾기도 하니, 대개 그 코가 이렇게 길 줄은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다. 간혹 코끼리는 다리가 다섯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다. 혹은 코끼리 눈이 쥐눈과 같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개 온 마음이 코와 어금니 사이로만 쏠려서 그 온 몸뚱이 가운데서 가장 작은 것을 좇다 보니 이렇듯 앞뒤가 안 맞는 비유가 있게 된 것이다. 대개 코끼리의 눈은 몹시 가늘어 마치 간사한 사람이 아양을 떨 때 그 눈이 먼저 웃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그 어진 성품이 바로 이 눈에 담겨 있다. 或有認鼻爲喙者, 復覓象鼻所在, 蓋不意其鼻之至斯也. 或有謂象五脚者. 或謂象目如鼠, 蓋情窮於鼻牙之間, 就其通軆之最少者, 有此比擬之不倫. 蓋象眼甚細, 如姦人獻媚, 其眼先笑. 然其仁性在眼. |
코로 물건을 집으니 그것이 주둥이인가 싶어 코는 어디 있는가고 묻는 이도 있다. 아예 그 긴 코를 다리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덩치는 집채 만한게 눈은 쥐눈처럼 조그맣다. 그럴 리가. 워낙에 덩치가 크고 코와 어금니가 희한하다 보니, 그 위에 붙은 눈이 그만 작게 보인 것일 뿐이다.
강희康熙 때에 남해자南海子에 사나운 범 두 마리가 있었다. 오래 되어도 능히 길들이지 못하자, 황제가 노하여 범을 몰아다가 코끼리 우리로 들여보낼 것을 명하였다. 코끼리가 크게 놀라 한 번 그 코를 휘두르매 범 두 마리는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 코끼리가 범을 죽일 마음은 없었는데, 냄새 나는 것을 싫어하여 코를 휘두른다는 것이 잘못 맞았던 것이었다. 康熙時, 南海子有二惡虎. 久而不能馴, 帝怒命驅虎, 納之象房. 象大恐, 一揮其鼻, 而兩虎立斃. 象非有意殺虎也, 惡生臭而揮鼻誤觸也. |
그 살살 웃는 듯한 작은 눈에서 어진 성품을 읽어내던 연암은 대뜸 사나운 범 두 마리를 일격에 쓰러뜨리는 코끼리의 완력으로 화제를 돌린다. 사나워 길들이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의 난폭한 범이 코끼리가 휘두른 코 한방에 즉사해 버렸다고 하니, 다시금 독자들은 코끼리의 어마어마한 크기와 긴 코의 위력을 상상으로 그려볼밖에 도리가 없다. 더욱이 애초에 죽일려던 것도 아니고 냄새가 싫어 그저 허공에 대고 휘두른다는 것이 빗맞았다고 하지 않는가?
▲ 전문
인용
6. 만물은 제각기 살아 숨 쉴 뿐, 절대적 법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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