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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6부 표류하는 고려 - 2장 최초의 이민족 지배, 식민지적 발전Ⅰ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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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6부 표류하는 고려 - 2장 최초의 이민족 지배, 식민지적 발전Ⅰ③

건방진방랑자 2021. 6.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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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적 발전Ⅰ③

 

 

무신정권에게 배운 수법일까? 권문세족은 자기들끼리 고위 관직을 독점하고, 서로 혼맥을 통해 끈끈한 이해관계를 유지하며, 과거보다는 음서를 통해 지위와 기득권을 대물림하는 등 철저한 문민독재(文民獨裁)’로 일관한다. 당대에는 그런 권력형 부조리가 큰 문제였으리라. 그러나 후대의 관점에서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들로 인해 대단히 좋지 않은 역사적 선례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20세기 일제 식민지 시대 친일파의 조상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권문세족들은 적극적인 친원파였다여기서 권문세족과 무신정권기 이전까지 고려 사회의 지배층으로 군림했던 전통적인 개경 귀족의 차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물론 권문세족들 중에는 개경 귀족 출신도 많으니까 양자는 상당 부분 겹치기도 한다. 그러나 두 집단의 큰 차이는 개경 귀족들이 유학을 숭상한 반면 권문세족들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점이다(이는 아마도 권문세족들이 토지 겸병으로 농장을 늘려나가는 과정에서 사원 세력과 결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기에 권문세족들은 개경 귀족들과 달리 중국의 한족 왕조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 않고, 거부감 없이 몽골 지배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동행성을 비롯한 원나라의 고려 지배기관들에 접촉해서 연고를 맺으려 했고, 심지어 원나라의 고관들과 혼맥을 구축하기도 했다. 원래 원나라가 고려에 요구한 주요 공물 로서 귀족 집안의 처녀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누구나 마지못해 그에 따랐으나 권문세족들이 득세하면서부터는 오히려 원나라의 지배층과 인연을 맺는 통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운이 좋아 자기 집안의 딸이 원나라 황실의 첩실로라도 들어가게 되면 그 가문 전체가 크게 뜰 수 있었으니 아마 단기간에 집안을 일으키는 데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문세족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원나라와 운명공동체이므로 미래도 함께 하리라는 것이다. 물론 원나라가 영원히 고려를 지배한다면 권문세족의 미래도 영원히 보장될 것이다. 당시 그들은 그러리라고 굳게 믿었겠지만(일제 치하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식민지 지배가 종식되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머잖아 몽골은 중국 대륙에서 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아울러 한반도를 죄던 손아귀도 놓게 된다. 그에 따라 식민지 기득권층인 권문세족에게 눌려 있던 신흥 사대부 세력이 개혁을 주도하게 되고 나아가 새 왕조를 세우게 된다. 그렇다면 장차 새 시대를 주도할 세력이 물밑에서 자라난 게 또 하나의 식민지적 발전이라 해야 할까?

 

 

 제주도 말 목장 몽골이 징발하는 군마를 충당하기 위해 고려 정부는 제주도에 대규모 말 목장을 조성했다. 제주도에는 삼국시대부터 작고 힘센 토착 말이 있었는데, 몽고 말들과 피가 섞여 오늘날 조랑말의 순수 혈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림은 조선시대 제주도 말 목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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