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된 변증법을 바로 세우려는 맑스②
그렇다면 변증법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합’이라는 의미가 발생하기 이전에 ‘정’과 ‘반’이라는 차이 나는 두 계기를 그 자체로 사유하자는 것, 나아가 이 두 계기의 마주침을 사유하자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맑스의 변증법은 ‘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정’과 ‘반’으로부터 출발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맑스의 바로 세워진 변증법이란 ‘우발성의 변증법’ 혹은 ‘마주침의 변증법’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겠지요. 맑스의 『자본론』 이란 바로 이렇게 마주침의 변증법에 입각해서 쓰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생산물의 교환은 서로 다른 가족, 부족 또는 공동체가 접촉하게 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문명의 초기에는 사적인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나 부족 등이 독립적인 지위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공동체는 자신들의 자연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생산수단과 생존 수단을 찾아낸다. 따라서 그들의 생산양식과 생활양식은 그들의 생산물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바로 이렇게 ‘자발적으로 발전한 차이’가 서로 다른 공동체들이 접촉하게 될 때 생산물의 상호 교환을 부추기고 이어서 점차 그 생산물을 상품으로 전환시킨다.
『자본론』
무엇보다 먼저 가족이나 부족이 ‘독립적인 지위’에 입각해서 각자 ‘자발적으로 발전한 차이’를 키워내야만 합니다. 물론 더 나아가 이들 공동체가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어느 순간 반드시 상대방을 서로 만나야만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바로 이런 마주침에 맑스가 바로 세운 변증법의 비밀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독립적으로 유지되던 두 공동체가 만났을 때에만 상품이라는 ‘합’이 출현할 수 있습니다. 만약 두 공동체가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에피쿠로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클리나멘’이 촉발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바다 혹은 모래사장에 무의미한 비가 내리듯이 말이죠.
이렇게 본다면 맑스의 사유는 엥겔스(Engels, 1820~1895)나 스탈린(Stalin, 1879~1953)이 생각했던 ‘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사적 유물론, 즉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는 어떤 사회의 구조나 변화의 법칙을 경제구조의 본성과 진화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이런 이해에 따르면 사회 속의 개인들은 자신들을 결정하는 사회적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자신들이 의식적으로 지향하는 이상과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고 간주된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됩니다. 사적 유물론이라는 것은 정치나 사회의 변화가 경제적 하부구조가 그대로 이행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니까요. 이 점에서 엥겔스나 스탈린의 사유는 헤겔의 사유를 단순하게 조금 비틀어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헤겔의 절대정신이나 이념이란 것을 단지 경제적 하부구조 정도로 변환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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