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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유물론(Materialism)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유물론(Materialism)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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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

Materialism

 

 

기원전 6~4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문명의 빛이 밝았던 유럽의 그리스와 아시아의 중국은 상당히 닮은꼴이었다. 그리스에서는 여러 폴리스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며 고대 그리스 문명을 일구었고, 중국에서는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이합집산(離合集散)하면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이끌었다. 현실의 역사보다 더 비슷한 것은 지성사의 측면이다. 그리스에서는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Θαλής, BC 640~546)를 비롯해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399), 플라톤(Platon, BC 427~347),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등이 서양 철학의 뿌리를 형성했으며, 중국에서는 공자(孔子, BC 551~479), 맹자(孟子, BC 371~289), 장자(莊子) 등 제자백가들이 동양 철학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동서양의 초기 철학자들이 제기한 철학적 물음은 크게 달랐다. 중국 철학자들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늘의 이치에 맞는가를 근본 물음으로 삼았고,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상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래서 중국 철학은 사람과 국가의 경영을 지향하는 정치철학으로 발달했고, 서양 철학은 자연철학으로 출발해 신의 존재를 묻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동양 철학에는 없는 유물론이 서양 철학의 중요한 조류로 자리 잡은 데는 그런 자연철학적 탐구 자세가 바탕이 되었다.

 

 

관념이나 영혼 같은 정신적인 것보다 물질이 더 근원적이라고 보는 유물론을 가장 선명하게 주장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BC 460~370). 그는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면 궁극적으로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가 된다고 보고 그것을 원자(原字)라고 이름 지었다. 이후 아테네 시대에 접어들어 그리스 철학은 자연철학에서 벗어나지만 유물론의 전통은 끊어지지 않았다. 특히 헬레니즘 시대의 에피쿠로스(Epicouros, BC 341~270)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이어받아 세계는 원자와 빈 공간의 조합으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물질을 근본으로 여기는 유물론이 신의 개념과 상충할 것은 당연하다. 신학이 지배한 유럽의 중세에 유물론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세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쟁점인 실재론과 유명론의 대립(물자체)에서 유물론은 실재론으로 변형되어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사물의 보편자가 실재한다는 실재론은 유물론의 존재론적 표현이다(존재론적으로 유물론의 대립은 유심론이고 인식론적으로는 실재론과 관념론이 짝을 이루지만 보통은 유물론과 관념론을 대비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이후 유물론은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과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같은 경험론자들의 사상에 일부 포함되어 전승되다가 19세기의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에 의해 확실하게 부활한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 유물론을 결합시켜 변증법적 유물론을 구성했다(관념론), 여기서 변증법은 철학적 방법이고 유물론은 철학적 이론이다.

 

세상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는 고대 그리스의 소박한 유물론과 달리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의 인식과 사회를 대상으로 한다. 그 전까지의 유물론에서 다루는 물질이 물리적인 물질이라면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말하는 물질은 사회적인 물질, 더 구체적으로는 경제적인 물질이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측면이 인간 생활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이라고 본다.

인간 생활의 사회적 생산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독립적인 불가피한 관계, 물질적 생산력의 특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진정한 토대를 구성하며, 이것 위에 법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올라서고, 여기에 특정한 사회적 의식의 형태들이 조응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은 사회적ㆍ정치적ㆍ정신적 생활 과정 전반을 제약한다. 인간의 의식이 인간의 사회적 존재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강요

 

여기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두 가지 대원칙이 나온다. 첫째는 경제적 구조가 토대, 즉 하부구조를 이룬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가 모든 상부구조를 결정하고 사회적 존재가 말 그대로 한 개인의 의식 전반을 지배한다면, 그것은 사주팔자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논리일 것이다. 한날 한시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듯이 경제적 수준이 같은 사회라고 해서 문화의 색깔마저 전부 같은 것은 아니며, 사회적 지위가 같다고 해서 누구나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당대에도, 또 후대에도 그런 천박한 해석에 따른 부당한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그런 기계적 결정론이라면 유물론이라는 말 앞에 변증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이유가 없다. 예상되는 오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마르크스가 굳이 유물론을 내세운 이유는 한편으로 경제구조가 지닌 막강한 힘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려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경제구조의 개혁이 바로 사회혁명의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 발전 단계에 적용해 역사적 유물론으로 발전시켰다(혁명).

 

유물론은 흔히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을 물질로 환원시키는 부도덕한 사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유물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정신적 측면을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가 유물론을 앞세운 참된 의도는 사회의 발전 단계에도 자연과학적 법칙성이 관철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데 있었다. 사회에는 경제만이 아니라 정신적ㆍ문화적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법칙성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의 물질적 성격에 주목해야 했다. 특히 마르크스는 철학을 위한 철학을 전개하기보다 철학에서 실천을 위한 이론을 얻고자 했기 때문에 법칙적인 이해가 중요했다(마르크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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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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