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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상품(Commodity)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상품(Commodity)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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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Commodity

 

 

경제적으로 보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뭔가를 소비하는 과정이다. 의식주의 기본 생활, 나아가 각종 문화생활과 사회 활동도 소비를 떼어놓고는 진행될 수 없다. 소비되는 것을 흔히 상품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재화(財貨)라고 해야 한다. 재화는 소비를 목적으로 하고 상품은 시장에서의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그래서 재화는 인류 역사상 언제나 있었던 것이지만 상품은 자본주의 시대에 출현한 것이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자본론을 상품의 분석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장사꾼이 최고이고, 사회주의에서는 공직자가 최고다.”

지나간 냉전 시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을 기본으로 하므로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장사가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며, 사회주의는 관료제의 폐해로 국가 기관이 부패해 있으므로 정부 고위 관리라든가 고급 당원들이 배불리 먹고 산다는 이야기다.

 

사회주의야 이제는 세계 무대에서 뒷전으로 물러난 상황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옳은 걸까? 자본주의에서는 정말 장사꾼이 최고일까?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그럴 듯한 이야기다. 자본주의는 애초부터 상업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중세의 상인들이 수공업자들을 조직하여, 이들에게 자본과 도구를 빌려주고 물건을 생산하게 한 뒤 그 물건을 시장에서 팔아 이윤을 얻은 데서 자본주의가 출발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그럴까?

 

 

자본주의는 상품에 기초한 사회다. 상품은 그냥 물건과는 달리 누군가에게 소비된다는 일차적 기능 이외에 시장에서 다른 상품, 즉 화폐라는 상품과 교환된다는 이차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가치),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도 재화는 있었지만 상품은 없었다. 상품은 그것이 판매될 수 있는 시장을 전제로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상품도 있을 수 없다. 목수가 집안에서 쓰기 위해 의자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재화가 되지만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만들었다면 그것은 상품을 생산한 것이다(노동).

 

이렇게 상품에는 생산과 유통이라는 두 가지 주요한 측면이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되는 것은 모두 시장에서 유통되며, 유통될 수 없는 것은 생산되지 않는다. 생산된 상품의 유통을 맡은 사람이 바로 장사꾼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장사꾼이 최고라는 말은 만드는 이에 비해서 파는 이가 더 많은 이익을 남긴다는 뜻이다.

 

사실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바로 그런 문제가 두드러지게 된다. 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진 결과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은 갈수록 단순해지고 같은 상품의 대량생산이 쉬워진다. 그 반면 상품의 유통이란 상품의 최종 소비자와 관계가 있으므로 아무리 기술 혁신이 있다 해도 생산에 비해서는 우회로를 많이 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는 장사꾼이 최고라는 말은 불행하게도 옳은 이야기가 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상품의 유통은 비생산적 분야에 속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통 분야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경제의 기초는 역시 생산에 있다. 상품이 유통되기 위해서는 먼저 상품이 생산되어야 한다.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 없다면 상품을 파는 상점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어 상품의 개념은 단순히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만을 가리키지 않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래 지금까지 산업이라는 개념에는 주로 제조업의 의미가 컸다. 즉 재화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파는 것이 곧 산업이었다. 제조업을 뜻하는 영어 단어 manufacture을 뜻하는 manu만든다는 뜻의 facture가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고전적인 산업 개념은 현대에 들어 많이 바뀌었다. 이른바 물류라고 부르는 유통업 분야도 산업의 중요한 갈래이며, 서비스업도 중요한 산업이다. 또한 상품의 의미도 예전처럼 뭔가 물건의 형태를 띠는 것뿐만 아니라 무형의 것까지 사고 팔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포괄한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취급하는 금융 상품이나 여행사에서 취급하는 관광 상품은 고전적인 의미의 상품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엿한 상품의 한 종류다. 상품의 가치는 여전히 노동이 만들어내지만 과거처럼 노동의 직접적인 산물은 아니다.

 

 

이렇듯 경제구조, 생산, 노동의 개념이 복잡해진 현대 세계에서 21세기를 지배할 산업과 상품은 뭘까? 경제학자, 사회학자, 미래학자마다 각기 달리 꼽을 수 있겠지만 공통분모를 추출해 보면 정보통신 산업과 문화 산업이다.

 

정보통신 산업은 20세기 산업의 막내 격으로 첨단 산업의 대명사다. 특히 이동 통신, 개인 통신과 더불어 컴퓨터 통신은 본격적인 정보화 시대의 막을 열었다. 전화가 발명된 지 100년 만에 정보통신 산업은 현대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비중 있는 산업 분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사실 통신 산업이 그 자체로 만드는 상품은 없다. 그러나 현대 세계에서는 정보를 장악하는 것이 곧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라 할 정도로 정보가 어느 실물 상품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삶도 정보통신 산업의 발달로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미 집안에서 쇼핑도 하고 은행 일도 처리하는 홈쇼핑과 홈뱅킹이 생활화되어 있으며,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업무를 보는 재택근무, 과거처럼 한 장소에 모두 모이지 않고 각자 자기가 있는 곳에서 회의를 할 수 있는 화상회의 같은 것들도 정보통신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정보 통신 산업은 다른 산업 분야와 인간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통적인 상품을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막대한 부가가치를 낳는 하이테크(high-tech) 산업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정보통신 산업과 더불어 차세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문화 산업이다. 이것은 문화 상품이라는 구체적인 상품 형태를 가지기는 하지만 이 상품 역시 전통적인 상품과는 거리가 멀다. 문화 상품은 기존의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으나, 물건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문화 상품의 소비, 즉 문화에 대한 향유와 수용을 담보로 돈을 지불하는 형식을 취한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절실한 절대 빈곤의 사회들이 남아 있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기본 생활 요건이 충족되면 인간은 문화적인 욕구를 상대적으로 더욱 키우게 마련이다. 문화 산업이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물건이라는 구체적인 매개체가 없는데도 고부가가치를 낳는 게 문화 산업의 특징이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한 편이면 자동차 수백만 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비틀스(The Beatles)로 유명한 영국의 팝 음악이 거두는 순익은 세계적 대기업의 순익을 능가한다. 더구나 문화 상품은 생산라인을 갖춰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규모 공장 부지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다른 상품에 비해 생산 원가도 거의 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므로 특히 부가가치가 높다.

 

 

정보통신 산업과 문화 산업은 둘 다 기존의 상품 개념에서 크게 벗어난 상품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존의 산업분야보다 부가가치가 높다는 점에서 미래형 산업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산업 모두 생산된 상품 자체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제조 기술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 분야의 상품을 만드는 데는 장기적인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반도체를 소형화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간의 기술 축적이 필요하며, 불과 두 시간 동안 감상하는 영화 한 편, 5분 즐기는 노래 한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어야 한다. 이런 축적과 배경을 죽은 노동이라고 본다면, 첨단 상품도 생산에 투입된 노동량으로 가치를 측정하는 전통적 상품과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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