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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변증법(Dialectic)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변증법(Dialectic)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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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Dialectic

 

 

모순은 논리의 적이다. 올바른 논리를 전개하려면 모순을 배제해야 한다. 반대로, 논쟁에서 승리하려면 상대방의 논리에서 모순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은 논리학의 기본이자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변증법은 모순을 포함하고 이용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모순에도 위상이 있기 때문이다. 모순을 모순으로 규정하는 것은 특정한 맥락에서다. 어떤 맥락에서는 모순이라 해도 다른 맥락에서는 모순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천동설에서는 일부 행성의 역행 운동이 모순이었지만 지동설에서는 모순이 아니다외행성들은 지구 공전과의 상대적 관계 때문에 일시적으로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모순이지만 인간이 더 큰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변증법은 원래 대화술에서 나왔다대화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dialogue와 같은 어원이다.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399)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자기 안의 진리를 깨우치도록 하는 방법을 자주 구사했는데, 산파술(産婆術)이라고 알려진 이 방법이 곧 변증법이다. 그래서 초기의 변증법은 혼자만의 일방적인 사유가 아니라 쌍방향적인 대화를 통해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알려졌다.

 

대화에는 흐름이 있다. 처음에는 주제로부터 먼 상태에서 대화가 시작되지만 진행되면서 점점 주제에 접근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는 모순을 끌어안을 수 있다. 낮은 차원의 대화에서 모순이었던 것이 높은 차원에서 해소되고, 다시 여기서 모순이 생겨나 더 높은 차원에서 해소되는 전개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독일의 근대 철학자 헤겔(Hegel, 1770~1831)은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해 대화술로 출발한 변증법의 논리를 철학의 방법론으로 끌어올렸다. 헤겔은 특정한 명제나 사물의 상태를 정립으로 보고 여기에 반정립이 대립해 종합이 이루어진다는 ()-()-()’의 변증법 법칙을 확립했다. 이런 변증법은 처음부터 변화와 발전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헤겔의 쇄신된 변증법은 논리학만이 아니라 종교나 현실의 역사에도 두루 적용된다. 성서로 말하면 최초의 인간 아담이 정립이고 그의 갈비뼈에서 반정립인 이브가 나왔다. 두 사람의 합이 아들인 카인이다. 더 거창한 성서적 주제를 든다면, 태초에 신이 있었고 이 신이 외화되어 사탄이 나온 과정이다. 그 합은 성서의 맨 끝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신과 사탄의 싸움이다. 물론 그리스도교 성서인 만큼 당연히 신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고 천년왕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끝난다.

 

 

역사에 적용되는 변증법의 예로 헤겔은 노예제를 든다. 고대 아테네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와 노예제가 공존했다. 민주주의가 정립이라면 노예제는 반정립이다. 고대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노예제를 낳고 그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노예들이 사회의 물질적 토대, 즉 경제적 생산을 담당하지 않았다면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그리스의 철학과 문화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립-반정립의 관계가 어느 정도 지속되면 양자의 모순이 점점 커져 결국 합으로 치닫는다. 시민의 자유와 노예의 예속은 고대 민주주의 사회를 해체하고 중세 봉건제 사회라는 합을 낳았다.

 

 

헤겔은 자신의 철학에서 핵심적 개념절대정신의 운동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변증법을 이용했다. 그러나 헤겔을 계승하면서 비판한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헤겔의 변증법을 관념론으로 몰아붙이고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했다. 사회가 발전하는 동력을 모순에서 찾은 것은 헤겔과 같지만, 마르크스는 그 모순이 논리적인 게 아니라 경제적 토대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경제적 토대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구성되며,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사회의 생산양식을 이룬다. 생산양식이 변하는 계기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다. 생산력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단선적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생산관계는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일정한 기간 동안 변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비유하자면 둘은 몸과 옷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 시기에 몸은 시간에 비례해 꾸준히 성장하지만 옷은 그렇지 않다. 옷은 매일 새 것으로 갈아입는 게 아니라 적어도 몇 개월 동안은 입다가 자라난 몸을 감당할 수 없게 될 때 새 옷을 사 입는다.

 

봉건 사회에서 생산력은 완만하면서도 꾸준히 발달했다. 봉건적 생산관계가 성장한 생산력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생산관계가 변해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진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발달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조만간 버티지 못하고 새로운 생산관계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그렇게 예측했고 새로운 생산관계가 가져올 새로운 생산양식을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그 결절점(結節點)이 바로 사회주의 혁명이다, 이렇게 변증법적 유물론이 역사에 적용되는 것을 가리켜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부른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발전 법칙이 마치 자연법칙처럼 통용된다고 믿었다. 실제로 자연 현상에서도 변증법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물은 섭씨 0도에서 99도까지는 액체 상태를 유지하다가 100도가 되면 기체로 변하기 시작한다상온에서의 자연 증발은 무시해도 좋을 양이다. 이렇게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유발하는 법칙은 생산력의 발달로 생산관계가 바뀌는 과정을 설명하는 원리와 같다. 그러나 실제 역사의 전개 과정을 보면 사회주의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자연의 변증법과 역사의 변증법은 차이가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적절한 시기가 오지 않은 걸까?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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