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2. 자사가 지을 수가 없다
『중용(中庸)』의 단행본화는 주희 이전에 이미 있었다
사서(四書) 이전에 『중용(中庸)』이 『예기(禮記)』에 있었다는 것과 따로 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어떠한 점이 다를까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중용(中庸)』에 대한 별도의 주석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 『예기(禮記)』에 주석을 할 적에 『중용(中庸)』에 관한 것이 예기 중의 일부분으로는 있을 수 있어도 독립적인 주석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논어(論語)』는 한나라 때부터 계속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주석이 축적되어왔지만 『중용(中庸)』은 비교적 주석이 없어요. 『중용(中庸)』은 주자가 맨 처음으로 끄집어낸 것은 아니고 이미 주자 이전에도 단독본으로 조금씩 유명해지기는 했습니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양무제가 지은 『중용강의(中庸講義)』 일권(一卷)이라는 책이 보이고 있고 송나라 인종은 과거 급제자들에게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하사하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송나라의 대옹(戴雍)은 『예기 중용전(禮記 中庸傳)』 이권(二卷)을 썼고 정명도ㆍ정이천 형제도 『중용(中庸)』을 단독본으로 만들어 중요시했습니다.
『중용(中庸)』은 자사작일 수 없다
『중용(中庸)』을 자사(子思)의 작(作)이라고 보는 근거는 기본적으로 『사기(史記)』와 『공총자(孔叢子)』의 내용 때문인데, 이에 따라서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중용(中庸)』은 자사의 작품이라고 말을 합니다. 자사(子思)는 공자(孔子)의 손자이지만 사상적으로는 증삼(曾參)에게서 직접 배웠다고 합니다. 『공총자(孔叢子)』에는 자사(子思)가 할아버지인 공자(孔子)의 무릎위에 앉아 얘기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공자(孔子)가 자사(子思)에게 “우리 집안에서 내 학설을 이어갈 놈은 정말 너 하나 밖에 없다. 네가 나에게 묻고 대답하는 것을 보니 내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참으로 기특하기 그지 없구나” 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게 다 쌩구라예요. 『공총자(孔叢子)』에 나오는 자사에 대한 언급은 죄다 이런 것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이 『중용(中庸)』의 ‘자사작설(子思作說)’을 설정하고 있는데, 이것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자사(子思)가 공자(孔子)보다 60살 정도 아래이므로 『중용(中庸)』의 성립 연대가 『논어(論語)』와 비슷한 시기가 됩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설에 대해서 거의 99퍼센트 동조하고 있어요. 근세 20세기에서 가장 명쾌하고 위대한 학자인 서복관(徐復觀) 선생까지도 그렇게 동조하고 있지만 나는 이 설에 동조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것을 반박해야 되는데 반박이란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예요. 하지만 『중용(中庸)』의 문장을 읽어본 나의 감(感)으로는 도저히 자사의 작품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이론화하려면 상당한 작업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지금 한의학 공부하고, 여러분들 가르치느라고 이 작업을 못하고 있습니다.
고전의 선후를 가르는 ‘天地 코스몰로지’
내가 『중용(中庸)』이 『논어(論語)』와 동시대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중용(中庸)』이라는 텍스트에는 내가 말하는 ‘천지(天地) 코스몰로지’가 깊게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천지코스몰로지’라는 말은 나의 독특한 용어이기 때문에 따로 제기하겠지만, 『논어(論語)』에는 천지코스몰로지가 전혀 없고, 『중용(中庸)』에는 천지코스몰로지가 가득 차있습니다.
내 이론에서 천지코스몰로지는 전국 말에서 한대 이후에 성립되는 것이므로, 이것에 따른다면 『중용(中庸)』의 성립 시기는 전국 말이나 한대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예기(禮記)』의 다른 편들의 성립 연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텍스트를 보고 더 구체적으로 강의를 할 것이고, 또한 서복관 선생이 어떠한 논리를 가지고 『중용(中庸)』의 자사작설을 주장하는 지는 이동철 선생이 여러분들에게 자세히 소개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서복관선생의 학설에 동의를 못해요. 나는 『중용(中庸)』이 그렇게 일찍 성립된 책은 아니라고 판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 감이니까 여러분들이 꼭 정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은 텍스트 크리틱(Text Critique, 텍스트 비평)을 할 줄 아는 상당히 높은 학문 수준에 도달해야만 가능한 논거(argument)이기 때문에 함부로 주장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런 텍스트를 하나 볼 적에도 꼭 이런 문제가 언급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2011년에 나온 『중용한글역주』에서 중용의 저자가 바뀌다
자사, 공자의 사상을 흡수하다 |
사상가 자사의 모습을 통해 본 『중용』 저작의 가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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