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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중용의 저자 - 3. 『중용』의 저자는 자사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중용의 저자 - 3. 『중용』의 저자는 자사다

건방진방랑자 2021. 9. 16.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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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의 저자 3. 중용의 저자는 자사다

 

 

중용의 구조

 

總論 1    
中庸論 2~20장 중반 가장 오리지널한 로기온 자료 자사
誠論 20장 후반~ 우주론적으로 심화시킨 논술 자사? or 자사학파?

 

 

 

자사가 지었다는 중용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가? 다른가?

 

1. ‘()’이란 개념은 선진문헌에 등장하지 않으며, 맹자(孟子)순자(荀子)등 전국후반 문헌에 등장함.

2. 중용(中庸)의 성론(誠論)이야말로 가장 완미, 완비, 완숙한 논의이기에, 다음의 두 가지 가능성으로 나누어짐.

 

자사나 자사학파의 탁월한 사상가 공자의 말을 통합하여 ()’을 개발 → 『맹자(孟子)순자(荀子)의 성론(誠論)이 나옴. 춘추시대에 성립
WHO? 맹자(孟子)순자(荀子)의 성론(誠論) 출현 이 논리가 성숙하여 중용등장. 진한교체기 or 한대 성립

 

 

3. 주희가 무척 길고 내용도 분절되는 20을 통째로 놔둔 것은 공자가어(孔子家語)』 「애공문정(哀公問政)편에 들어 있기 때문임.

4. 이런 논의로 볼 때 공자가어(孔子家語)중용(中庸)은 동일계열의 텍스트, 맹자(孟子)는 거기서 갈라져 나온 파편임.

5. 중용(中庸)맹자(孟子)보다 선행 텍스트임을 밝힌 서복관(徐復觀) 선생의 주장.

1) 중용(中庸)에선 군신(君臣)’, 맹자(孟子)에선 부자(父子)’가 중요하다고 여김. 대체로 정치관계가 가정관계보다 더 긴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현실정치가 개인에게 비치는 영향이 맹자시대보다 큼.

2) 논어(論語)에선 ()’()’가 대칭적으로 나타나며 중용(中庸)도 마찬가지임. 그리고 지인용(智仁勇)’도 나와 같은 패러다임을 말해주나, 맹자(孟子)엔 아예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나옴.

3) ()논어(論語)에선 내면적 자기향상으로 맹자(孟子)에선 애인(愛人)’의 사회적 맥락으로 푸는데, 중용논어에 가까움.

4) 논어(論語)묵식(黙識)’내성(內省)’중용(中庸)신독(愼獨)’의 바탕이 되었는데, 맹자(孟子)에선 구방심(求放心)존심(存心)양기(養氣)’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오행(五行)을 통해 보면 중용의 작자를 짐작할 수 있다

 

五行仁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行.

義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行.

禮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行.

智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行.

聖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德之行.

 

 

해석

五行仁形於內, 謂之德之行;

인이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어 축적된 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덕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不形於內, 謂之行.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은 그냥 물리적 행동일 뿐이다.

 

義形於內, 謂之德之行;

의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어 축적된 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덕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不形於內, 謂之行.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은 그냥 물리적 행동일 뿐이다.

 

禮形於內, 謂之德之行;

예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어 축적된 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덕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不形於內, 謂之行.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은 그냥 물리적 행동일 뿐이다.

 

智形於內, 謂之德之行;

지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어 축적된 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덕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不形於內, 謂之行.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은 그냥 물리적 행동일 뿐이다.

 

聖形於內, 謂之德之行;

성이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어 축적된 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덕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不形於內, 謂之德之行.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도 덕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인ㆍ의ㆍ예ㆍ지의 경우는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적 구분이 존재하지만 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러한 구분이 근원적으로 초월된다는 것이다. 성은 인간존재의 안과 밖의 구분이 사라지는 근원적 행()이다. 인ㆍ의ㆍ예ㆍ지는 상대에 속하지만 성()은 절대에 속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ㆍ의ㆍ예ㆍ지의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ㆍ의ㆍ예ㆍ지의 덕성을 내면에 축적하는 과정을 통하여 성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한다. 이때 성()을 성()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바로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가 되는 것이다.

-중용한글역주, 2011, 통나무, 147.

 

 

1. 곽점초간의 오행이 자사의 작으로 굳어지고 있으며 이 안에 이미 성()에 대한 논의가 있고 그게 성론(誠論)’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2. 그러하기에 도 자사가 쓴 것이고, 중용전체가 자사가 지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인용

목차

전문

1. 자사, 공자의 사상을 흡수하다

2. 사상가 자사의 모습을 통해 본 중용저작의 가능성

3. 중용의 저자는 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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