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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 저자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 저자

건방진방랑자 2021. 9. 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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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설(1994)

 

 

저자 1. 자사 저작설의 두 가지 근거

 

 

중용은 중간이 아닌 평형

 

중용(中庸)이란 책에서 ()’이란 개념은 영어의 중간(Middle)이 아니고 평형(equilibrium)이란 말입니다. ‘()’은 범용하다는 뜻이고 공통성(commonality)’, ‘보통(mediocrity)’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그저 그렇다는 뜻이죠. ‘He is a mediocrity’라고 하면 똑똑하지도 않고 바보스럽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사람을 뜻합니다. 실존주의도 보면 항상 일상성(Taglichkeit)을 말합니다. 중용(中庸)에 대한 정의는 앞으로 더 생각해봅시다.

 

보통 중용(中庸)을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고 하는 설()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공자의 8세손인 공부(孔駙)가 공씨 집안의 모든 이야기를 총서화해서 만든 공총자(孔叢子)라는 책에 근거합니다. 자사(子思0가 정확하게 어떤 사람인지는 정사에 안 나와서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마천도 중용(中庸)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었다고 하지만 공자의 생애와 비교하여 연대를 잘 맞추어 보면 틀리는 구석이 많아요.

 

 

 

유대인이 인류사에 무수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

 

공총자(孔叢子)라는 책을 내가 알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내가 대만에 유학하고 있을 때 중국문명을 공부하겠다고 이스라엘에서 온 요아브 아리엘(Yoav Ariel)이라는 유대인 친구가 있었어요.

 

여기 오구라씨도 한국 무속문명에 대한 일원론적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러 왔다고 하는데요. 유대인들은 참 저돌적입니다. 아인슈타인, 칼 맑스, 스티븐 스필버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노암 촘스키, 예수 등 이 세계를 개혁한 사람들의 이름을 대보십시오. 유대인 아닌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이예요. 도대체가 유대인은 왜 이렇게 천재성이 대단한가? 한국사람들도 천재성이 있다는데 왜 그렇게 되지 못할까요?

 

유대인들은 방랑아들입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A.D 2세기에는 유대인들을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쫒아내 버렸습니다. 이들은 2000년간 고향을 잃고 헤매다가, 출애굽(EXODUS)라는 영화에 나오듯이 자기들의 선조가 살았다고 추정되는 땅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웠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타문명에 가서도 자기들 나름대로 공동체(community)를 형성하고 자기들의 종교, 언어, 습관, 탈무드를 버리지 않고 살면서 완전히 동일성을 유지했어요. 그래서 모든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최소한 두개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개국어 사용자(bilingual)’들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문명의 대비적인 구조 속에서도 절대 동화가 되지 않고 항상 자기들의 아이덴티티를 고수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암적인 존재로 보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히틀러가 완전히 싹 도려내버리려고 했던 것 아니겠어요? 이들의 굉장한 천재성은 이개국어 이상의 필로로기(Philology) 인식과 이러한 탄압과 억압의 충돌 구조 속에서 개발되는 것 같습니다.

 

내 친구가 그런 천재는 아니지만 이스라엘에서 대만으로 와서 하는 말이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이개 국어 사용자들이 모여들었으므로 자기가 속해있었던 문명을 남한테 소개하고 가르쳐주는 코스모폴리탄한 분위기와 체제가 텔아비브대학 등을 비롯해서 사회 전체적으로 잘 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네 생각만하고 중국에 왔는데, 누가 영어로 이스라엘에서 온 사람을 잘 가르쳐 주겠습니까? 그래서 영어로 자기와 철학적 논의(debate)를 할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나를 발견하고 단짝 친구가 된 것입니다. 처음엔 이 친구가 유대인들의 성서적인 이원적 사고를 가지고 중국문명에 접근하려고 해서 나하고 무지하게 싸웠습니다.

 

 

 

공총자(孔叢子)에 묘사된 자사

 

그런데 나중에 논문을 쓰기 위해서 좀 애매하고 남들이 안 보면서 근사할 수 있는 텍스트가 어디 없을까 하고 도서관에서 찾다 찾다 결국 우리 둘이 찾은 것이 공총자(孔叢子)였어요. 공총자(孔叢子)에 대해서는 아무도 논문을 쓰지 않았고 분량이 짧으면서도 재미있는 책이긴 하지만 사실은 문제가 많은 텍스트입니다. 그런데 또 이 자식이 나보고 이 책을 다 번역을 해 달라고 해서 내가 다 영역을 해 주기도 했는데, 결국 이 친구는 공총자(孔叢子) 박사가 되었고 텔아비브대학으로 돌아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공총자(孔叢子)라는 텍스트에는 이처럼 재미있는 인연이 걸쳐져 있는데, 아무튼 이 책 안에는 희한한 얘기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공자와 자사에 대한 얘기도 자세히 나와요. 그런데 이게 모두 쌩 구라들입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것들이 리얼리티일 수가 없어요. 공총자(孔叢子)가 위서임에는 분명하지만 여러 가지 이론(異論)이 많습니다.

 

이 책에 보면 자사에 대해 아주 상세히 나오는데, 자사는 자신에 대해서 엄청나게 엄격(austere)하고 굉장한 금욕주의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자사에게 누가 쌀을 보냈을 때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할 수 없이 받지만, 친구가 육포를 보냈을 때는 일신의 쾌락을 위해서 육포를 받는 짓은 할 수 없다하여 거절한다는 얘기도 나오죠. 공총자(孔叢子)에는 자사가 오해로 인하여 감옥에 갇혀 있다가 거기서 중용(中庸)49편을 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자의 중용장구(中庸章句)33장으로 되어 있고 앞의 스무장과 뒤의 열세장의 성격이 다릅니다. 또한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중용설 이편(中庸說 二篇)’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이 어떤 책인지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저자 2. 자사가 지을 수가 없다

 

 

중용(中庸)의 단행본화는 주희 이전에 이미 있었다

 

사서(四書) 이전에 중용(中庸)예기(禮記)에 있었다는 것과 따로 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어떠한 점이 다를까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중용(中庸)에 대한 별도의 주석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 예기(禮記)에 주석을 할 적에 중용(中庸)에 관한 것이 예기 중의 일부분으로는 있을 수 있어도 독립적인 주석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논어(論語)는 한나라 때부터 계속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주석이 축적되어왔지만 중용(中庸)은 비교적 주석이 없어요. 중용(中庸)은 주자가 맨 처음으로 끄집어낸 것은 아니고 이미 주자 이전에도 단독본으로 조금씩 유명해지기는 했습니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양무제가 지은 중용강의(中庸講義)일권(一卷)이라는 책이 보이고 있고 송나라 인종은 과거 급제자들에게 대학(大學)중용(中庸)을 하사하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송나라의 대옹(戴雍)예기 중용전(禮記 中庸傳)이권(二卷)을 썼고 정명도ㆍ정이천 형제도 중용(中庸)을 단독본으로 만들어 중요시했습니다.

 

 

 

중용(中庸)은 자사작일 수 없다

 

중용(中庸)을 자사(子思)의 작()이라고 보는 근거는 기본적으로 사기(史記)공총자(孔叢子)의 내용 때문인데, 이에 따라서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중용(中庸)은 자사의 작품이라고 말을 합니다. 자사(子思)는 공자(孔子)의 손자이지만 사상적으로는 증삼(曾參)에게서 직접 배웠다고 합니다. 공총자(孔叢子)에는 자사(子思)가 할아버지인 공자(孔子)의 무릎위에 앉아 얘기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공자(孔子)가 자사(子思)에게 우리 집안에서 내 학설을 이어갈 놈은 정말 너 하나 밖에 없다. 네가 나에게 묻고 대답하는 것을 보니 내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참으로 기특하기 그지 없구나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게 다 쌩구라예요. 공총자(孔叢子)에 나오는 자사에 대한 언급은 죄다 이런 것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이 중용(中庸)자사작설(子思作說)’을 설정하고 있는데, 이것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자사(子思)가 공자(孔子)보다 60살 정도 아래이므로 중용(中庸)의 성립 연대가 논어(論語)와 비슷한 시기가 됩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설에 대해서 거의 99퍼센트 동조하고 있어요. 근세 20세기에서 가장 명쾌하고 위대한 학자인 서복관(徐復觀) 선생까지도 그렇게 동조하고 있지만 나는 이 설에 동조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것을 반박해야 되는데 반박이란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예요. 하지만 중용(中庸)의 문장을 읽어본 나의 감()으로는 도저히 자사의 작품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이론화하려면 상당한 작업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지금 한의학 공부하고, 여러분들 가르치느라고 이 작업을 못하고 있습니다.

 

 

 

고전의 선후를 가르는 天地 코스몰로지

 

내가 중용(中庸)논어(論語)와 동시대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중용(中庸)이라는 텍스트에는 내가 말하는 천지(天地) 코스몰로지가 깊게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천지코스몰로지라는 말은 나의 독특한 용어이기 때문에 따로 제기하겠지만, 논어(論語)에는 천지코스몰로지가 전혀 없고, 중용(中庸)에는 천지코스몰로지가 가득 차있습니다.

 

내 이론에서 천지코스몰로지는 전국 말에서 한대 이후에 성립되는 것이므로, 이것에 따른다면 중용(中庸)의 성립 시기는 전국 말이나 한대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예기(禮記)의 다른 편들의 성립 연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텍스트를 보고 더 구체적으로 강의를 할 것이고, 또한 서복관 선생이 어떠한 논리를 가지고 중용(中庸)의 자사작설을 주장하는 지는 이동철 선생이 여러분들에게 자세히 소개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서복관선생의 학설에 동의를 못해요. 나는 중용(中庸)이 그렇게 일찍 성립된 책은 아니라고 판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 감이니까 여러분들이 꼭 정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은 텍스트 크리틱(Text Critique, 텍스트 비평)을 할 줄 아는 상당히 높은 학문 수준에 도달해야만 가능한 논거(argument)이기 때문에 함부로 주장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런 텍스트를 하나 볼 적에도 꼭 이런 문제가 언급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3. 네이춰(Nature)와 너춰(Nurture)

 

 

도덕경(道德經)도경(道經)덕경(德經)의 합본이라고 한다면 중용(中庸)중용경(中庸經)성경(誠經)의 합본이라고 할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중용(中庸)이라는 텍스트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이 공관4복음의 전승에 양식사학(Formsgeschichte)이라는 궁켈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비신화화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했듯이 중용(中庸)이라는 고전도 일차적으로 양식에 따라 분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중용(中庸)1장의 특수성을 이러한 전체적 텍스트의 이해 위에서 조감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과 습()

 

지난 시간에 소개 했던 프로이디안 프로드(Freudian Fraud)라는 책은 의사가 쓴 책인데 문서 조사(Documentation)가 상당히 잘 되어 있어서 재미도 있고 미국사회의 내면을 아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진지한 책입니다.

 

여러분 마가레트 미드(Margaret Mead)라는 사람 아시죠? 마가레트 미드는 근세 미국의 유명한 여자 인류학자입니다.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도 역시 여자 인류학자로서 두 사람 다 아주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서로 평생 마음속 깊이 사랑한 레즈비언들이었습니다. 나는 동성연애가 도대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 사람들은 바나드 컬리지(Barnard College)라는 학교를 다녔었는데, 이들의 선생이 유명한 인류학자인 프란쯔 보아스(Franz Boas)입니다. 그러니까 프란쯔 보아스나 마가레트 미드나 루스 베니딕트는 같은 학파(school)를 구성한 사람들이죠. 이들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가장 극적인 활약을 활발하게 한 사람들이며, 마가레트 미드는 1960년대에 내가 학교 다닐 때에도 살아있었습니다.

 

 

 

네이춰(Nature)와 너춰(Nurture)

 

전 시간에 말했던 네이춰(Nature)와 너춰(Nurture)에 관련된 논쟁은 근세 20세기의 가장 큰 논쟁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운 말로 한다면 네이춰는 인간의 타고난 성()을 말하는 것이고 너춰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배우는 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논어(論語)양화(陽貨)에 보면 성상근 습상원야(性相近也, 習相遠也).’라는 말이 나오는데 똑같은 얘기에요. 네이춰는 미국사회에서의 인종차별(Racism)과 관계가 깊은데 네이춰는 바로 유전(Heredity)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이미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즉 흑인이 한번 열등하다고 규정되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백인 흉내를 낼 수 없다는 거예요. 결국 이 논쟁에서 네이춰를 주장하는 파들은 인간본성에 대한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결정론자(Determinist)들입니다.

 

이에 반해서 너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반대하는 평등주의자(Egalitarian)들이며 근세의 휴머니스트들이지요. 여러분들은 마가레트 미드를 인류학자로만 알고 있지만 이 사람의 책에는 이 논쟁에 대한 자기의 아폴로지(Apology)가 담겨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평등하며 후천적인 습득에 의해서 그 본성이 형성되는 것이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프란쯔 보아스는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이론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근세 미국에서 네이춰를 주장한 사람들은 우익분자들이었는데 네이춰와 너춰의 논쟁에 결정적으로 못을 박은 사람이 바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1889-1945)입니다. ‘유대인들은 전부 본성이 잘못된 놈들이므로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놈들이다. 따라서 그들을 청소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라는 이론들을 네이춰 이론가(Nature theorist)들이 히틀러에게 제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찌 하의 양심적인 사람들은 히틀러를 피해서 전부 미국으로 흘러들어오고 이 사람들이 너춰 이론가(Nurture theorist)들이 됩니다. 이 논쟁은 30년대에 더욱 가중되는 거대한 논쟁이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가레트 미드에게는 사모아의 성년(Comming of Age in Samoa)문화의 유형(Patterns of Culture)라는 유명한 책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너춰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저작입니다. 우리가 중용(中庸)을 논하는 것도 이런 현대 논쟁과 결코 무관한 문제들이 아니라는 것을 꼭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동양 사람들은 인간의 성(0과 습()의 문제를 결코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립적으로 파악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성()의 문제는 결국 네이춰와 너춰를 다 포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순자(荀子)맹자(孟子)의 성()에 관한 논쟁도 상당 부분이 네이춰와 너춰 논쟁과 비슷합니다. 그들의 목적이 인종차별주의(Racism)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맹자(孟子)는 상당히 네이춰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순자는 너춰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는 인간의 후천적인 습득과정을 더 중시했다는 말입니다.

 

 

 

 

 

저자 4. ‘중용경(中庸經)’성경(誠經)’으로 나뉜다

 

 

 

한 편의 글이 단일하지가 않다

 

지난시간에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에서부터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로 대표되는 중용(中庸) 1장은 도저히 자사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중용(中庸)이 훨씬 후대의 이론인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이나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을 포괄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중용(中庸)중화(中和)사상은 맹자(孟子)와 순자의 진테제(Synthese)로서 나온 것으로, 통일된 제국의 운영원리가 요청되는 그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중용(中庸)1장은 대단히 문제가 많아요. 자 보세요. 1장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으로 시작해서 치중화천지위언 만물육언(致中和天地位焉 萬物育焉)’으로 끝납니다. 이 책의 제목이 중용(中庸)인데 1장에 중화(中和)라는 말은 있지만 중용(中庸)이란 말은 안 나옵니다. 2을 보십시오 중니께서 군자는 중용을 실천하고, 소인은 중용에서 벗어난다[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이라는 말이 나오죠? 그러니까 중용(中庸)이라는 원래의 서물이 있었다면 우선 1장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중용(中庸)이라는 책의 진짜 시작은 2장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예요. 그리고 2장은 중니왈(仲尼曰)’이라고 해서 공자의 말을 인용하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1장은 어떻습니까? 이것은 엄청난 철학적인 논문(Treatise)니다. 전혀 양식이 달라요. 여러분들은 문헌을 볼 때 그냥 책장을 넘기지 말고 이런 텍스트 크리티시즘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중니왈(仲尼曰)’이라는 것은 고전서에 매우 흔한 형식이지만, 중용(中庸) 1장은 그 형식이 노자(老子)1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처럼 나타나고 있어서 자기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논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1장은 이 중용(中庸)이라는 책을 편집하면서 어떤 사람이 후대에 완벽한 자기의 견해를 가지고 중용(中庸) 전체를 요약해서 쓴 자기의 논문을 붙인 것이라고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11에 보면 중용(中庸)이란 말이 나오죠? 2장부터 11장까지는 중용(中庸)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기존의 말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서 이 부분은 상당히 오래된 단(Old Fragment)일 수 있습니다. 텍스트 크리틱을 할 때에는 단편(Fragment)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텍스트들을 단편들로 쪼개서 분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2장부터 11장은 어떤 한 사람이 편집한 프레그먼트인데 성격상으로 봐서 시대가 많이 올라가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체계적인 논술형식은 후대에 와서야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자왈 귀신지위덕기성의호(子曰 鬼神之爲德其盛矣乎)’라고 시작하는 16을 보십시오. 이것이 그 유명한 귀신장인데 정약용 선생은 이 장에 근거해서 새로운 철학을 만들기도 했었죠. 그런데 이 16장은 전체 흐름으로 볼 때 매우 특이하고 문제가 많은 곳입니다.

 

20에 가면 한 장의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나죠. 20장 중에서 재하위불획호상 민불가득이치의 획호상유도(在下位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矣. 獲乎上有道).’라는 부분을 기준으로 나누어서 재하위(在下位)’로부터 시작되는 문장의 결론이 성자천지도야 성지자인지도야(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라고 되어 있습니다. ‘재하위(在下位)’ 이하로 무슨 글자가 제일 많이 나오는지 한번 보십시오. 바로 ()’이라는 글자입니다. 문장의 톤(Tone)이 확 달라졌죠? ‘재하위(在下位)’를 중심으로 양쪽이 매우 칼라가 다른 프레그먼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중용설이편(中庸說二篇)’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설()이라는 말이 붙었다는 것을 보면 물론 이 이편(二篇)’이 원래의 중용(中庸)은 아니고 중용(中庸)에 대한 또 하나의 부연일 수 있고 그 당시의 중용(中庸)과 비슷한 어떠한 책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오늘날 남아있지 않습니다.

 

 

 

한 편이 두 편의 글로 나뉜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존재하는 중용(中庸)과 관계된 어떤 것이고 그 2편이라는 말로 미루어 현존하는 중용(中庸) 텍스트를 둘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재하위(在下位)’ 이전이 1, 이하가 2편이 될 것입니다. 도덕경(道德經)도경(道經)’덕경(德經)’으로 나눠져 있죠. 고대 서물이 상, 하편으로 나누어진 것은 흔한 일입니다. 도덕경(道德經)식으로 말하면 재하위(在下位) 앞부분은 중용경(中庸經)’이 되고 뒷부분은 성경(誠經)’이 되겠죠. 그리고 16 귀신장(鬼神章)은 텍스트의 여러 성격으로 봐서 전편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2장부터 15장까지, 17장부터 20장의 재하위(在下位)’ 윗부분까지의 열여덟 편이 상경(上經)으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고 2장에서부터 11장까지는 중용(中庸)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프레그먼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용(中庸)이라는 전체 텍스트가 부분별로 냄새가 이렇게 달라요. 여러분들이 읽어서 알겠지만, 1장은 사상적 내용이 오히려 하편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용(中庸)의 형성과정에서 가장 오래된 프레그먼트는 자사학파에서 나왔을 것이다라고 추측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자사는 증자의 계통인데 증자라는 사람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 예()의 철학적 측면을 굉장히 깊게 파고들어간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공자 제자의 여러 가지 학파들의 성격을 알려면 예기(禮記)에서 공자의 제자들을 다룬 부분을 보면 됩니다. 이 부분은 기독교의 사도행전과 같은 성격의 글인데 이것을 분석해보면 공자의 제자들이 그 뒤에 공자의 사상을 어떻게 펼쳐 나갔는가를 대강 알 수 있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중용(中庸)은 자사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증자 계열에서 나온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용(中庸)에 있어서 상편은 오래된 단편(Old Fragment)들을 반영하는 것이고, 지금 특히 문제가 되는 20장 이하의 성론(誠論)은 아무리 올라가도 잔국말(戰國末)에서 한대(漢代)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성론(誠論)’을 붙인 사람이 나중에 편집하면서 제1장을 썼을 가능성이 많아요. 아마 이러한 나의 생각(텍스트 크리티시즘)이 가장 정확할 것입니다.

 

 

中庸經 2~11, 13 ~ 20(在下位) 자사 or 자사학파
誠經 16, 20(在下位)~ 전국 or 한대

 

 

 

 

저자 5. 천지 코스몰로지

 

 

통일제국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기에, 자사작은 아니다

 

, 28금천하 거동궤 서동문 행동륜(今天下 車同軌 書同文 行同倫)’이란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스팔트가 없었으므로 비가 오면 수레바퀴 자국이 깊게 남습니다. 그 바퀴사이의 너비가 안 맞는 마차는 그 길로 다니기가 힘들죠. 그래서 수레바퀴를 높이고 바퀴와 바퀴사이의 간격을 통일해서 수레바퀴가 많이 빠져도 쉽게 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옛날 길은 길 자체가 모두 철도(Rail Road)입니다. 즉 흙이 파여서 레일이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진시황(B.C 259~210)이 수레의 통행을 수월하게 하려고 이 제국에 존재하는 모든 수레바퀴간 너비를 얼마로 한다하고 결정해 버린 거예요. 그리고 이 거동궤(車同軌)이사(李斯)의 혁명적인 사업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다음 서동문(書同文)이란 것은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육국의 여러 가지 글씨체를 소전(小篆)으로 통일시키는 문자 혁명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서()라는 것은 서체를 말하고 문()이라는 것은 문장이 아니고 글자(Character)입니다.

 

마찬가지로 행동륜(行同倫)은 풍습을 일치시킨 것입니다. 인간의 행동방식까지도 일치를 시킨 것이지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일들은 진시황 이후에 일어난 것이 분명한데, 과연 이 중용(中庸)이 자사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도저히 자사의 작()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26에 보면 천지(天地)를 얘기하면서 재화악이부중(載華嶽而不重)’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스케일이 엄청난 말이지요. ()나라의 촌놈들이 서역에 있는 화악(華嶽)’을 알았을 리가 없습니다. 자사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공간적으로도 어색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이 가능하려면 전 세계에 대한 인식, 즉 대륙 통일이라는 사건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중용의 천지 코스몰로지

 

그리고 26천지지도가일언이진야(天地之道可一言而盡也)’라고 시작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많은 고증학자들이 치밀한 분석을 해도, 서복관(徐復觀) 선생이고 누구이고 간에 이 천지(天地)’라는 글자를 분석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내가 최초로 천지론(天地論)’적 텍스트 크리티시즘을 한 것입니다.

 

논어(論語)에는 천()과 지()가 따로 나오기는 하지만 천지(天地)’라는 말은 없고 맹자(孟子)와 같은 거대한 책에도 天地라는 말이 딱 두 번밖에 안 나옵니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에 보면 유명한 호연지기(浩然之氣)’ 장이 있는데 색우천지지간(塞于天地之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其爲氣也 至大至剛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 그런데 이 색우천지지간(塞于天地之間)’이라는 말은 그냥 천지지간(天地之間)’이라는 구절(Phrase)를 빌린 것일 뿐이지 천지 자체에 대한 설명은 아니지요. 단지 주어인 대장부의 기가 천지(天地)에 가득 찬다는 얘기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천지(天地)라는 말에는 반드시 후대에 확립된 음양(陰陽)이라는 인식구조가 깔려 있어요. 음양론적 철학의 인식이 없이 천지(天地)라는 말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논어(論語)맹자(孟子)에 천지(天地)라는 말이 안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중용(中庸)이라는 책을 보면 천지(天地)라는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점은, ‘중용(中庸)이 성립할 시기에 사상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을 반영하는 인식방법이 생겼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장에 보면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천지(天地)라는 개념을 정확히 말하는 경우는 아닙니다. ()이라는 말이 있었고 지()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천지(天地)라는 말이 있었을 법은 하지만 천지(天地)라는 것이 하나의 사상체계로서 독립된 개념으로 모든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바탕이 되는 패러다임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맹자(孟子)진심(盡心)에 보면 상하여천지동류(上下與天地同流)’라는 말이 나오지만 이것은 단순한 언급일 뿐 어떤 우주론적 체계 안에서의 발설일 수 없습니다. 맹자(孟子)에 나타나 있는 천지(天地)에 대한 언급은 이게 전부에요.

 

더 말할 게 없습니다. 나는 단적으로 말합니다. 맹자(孟子)라는 서물(書物)에는 천지(天地)코스몰로지가 없다! 맹자(孟子)에는 인간의 덕목에 대한 아규먼트(argument)는 있어도 그 아규먼트가 전혀 천지론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텍스트 크리티시즘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용(中庸) 30의 제일 처음에 仲尼祖述堯舜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도 맹자(孟子) 계열에서 나올 법한 얘기입니다. 그 다음에 헌장문무(憲章文武)’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무는 문왕, 무왕을 말하는데 주나라를 세운 사람들로서 유교의 정통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공자는 나는 동주(東周)를 세우겠다[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고 했죠. 다시 말해서 공자는 하((() 중에서 주나라를 나의 패러다임의 본질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을 잘 보세요. 공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중용(中庸)30의 말이 상율천시 하습수토(上律天時, 下襲水土)’입니다. , 공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천지코스몰로지를 가지고 정리해 버린 것이죠. 그런데 이것은 사실 공자사상에 대한 이만저만한 왜곡이 아닌, 참으로 웃기는 얘기입니다. 공자는 전혀 천지사상과 관련이 없거든요. 이런 중용(中庸)의 성격은 공자나 자사로부터 아주 후대에 이른 뒤의 저작임을 분명히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중용(中庸)이라는 책의 탄생은 천지코스몰로지가 보편화된 이후의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이 천지코스몰로지가 텍스트 크리티시즘에 명료한 기준을 제공한다고 봐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천지(天地)라는 말을 가지고 텍스트에 서열을 정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천지론에 관해서 논문을 쓸 때에는 김용옥의 학설로 반드시 인용하고 써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 장사의 밑천이므로 심각한 얘기입니다.(齋生大笑). 시간이 없어서 아직 책으로 발표를 안 했을 뿐, 강의에서 말한 것도 책과 동일한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것을 마치 자기 얘기인 양 훔쳐다 막 쓰지만 외국책들을 보면 그러한 출전에 대한 인식은 문헌이 되었든 말이 되었든 정확합니다. 내 사상을 활용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도둑질은 하지 마세요.

 

맹자(孟子)에는 천하(天下, Under the Heaven=Human World=Society)라는 말이 부지기수(71)로 나옵니다. 맹자(孟子) 사상은 전부 천하(天下), 즉 현실적인 인간사회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에 비해 천지는 우주적 코스몰로지죠. , 천지는 인문과학이고 천하는 사회과학이에요. 맹자(孟子)는 어떤 의미에서 인문과학자가 아니고 사회의 제 문제들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들의 덕목에 대해서 연구하고 주장한 사회과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진심(盡心)이나 고자(告子)편에는 인간의 성()에 대한 깊은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맹자(孟子)는 사회학자예요. 천하에 대한 관심은 천지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빠릅니다.

 

 

 

 

 

저자 6. 주역과 중용의 공통점

 

 

 

학문의 기본은 정확한 이해와 비판력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에겐 이런 기본적인 텍스트 크리티시즘이 없어요. ‘못난 놈이나 고증학을 하는 것이지 우리는 사상만 가르친다.’라고 하는데, 사실 텍스트 크리티시즘이야말로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지 않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고전학자 중에서 텍스트 크리티시즘을 할 필로로기(Philology, 문헌학)의 능력을 갖춘 놈들이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시시한고증학은 안 한다는 풍조 속에서 텍스트 크리티시즘에 대한 논문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나라 학문의 유치함입니다. 그러면서 일본학자들 보고 그놈들은 맨날 요렇게 조렇게 텍스트가지고 떠든다고 비판을 일삼죠. 그러나 텍스트 크리티시즘이 없는 학문은 학문이 아닙니다.

 

내가 한의과대학 다니면서 강의를 들어주기 가장 괴로운 문제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어요. 교수님들이 황제내경(皇帝內經)을 비롯한 고문헌을 중심으로 한 논의를 많이 하는데 이게 그냥 말일뿐 누가, 언제, 어디서, 왜 그렇게 얘기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도대체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책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라고만 하지요. 그것은 전도사가 교회에서 자기 멋대로 설교하는 수준이지 학자의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는데 불트만이나 독일의 신학대학의 교수 수준하고 우리나라 전도사 수준을 같이 비교해서 얘기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한의과대학 교수님들께 이런 문제까지를 요구할 수는 없겠죠. 전공의 성격이 그런 문제를 깊게 다루실 여유까진 없으실 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학문방법의 전통이 서있질 않았고. 그런데 우리나라 일반대학의 교수님들의 한문 텍스트를 읽는 수준도 우리나라 전도사 수준도 안 됩니다. 전도사는 그래도 성경을 돌돌 외우기는 하잖아요?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철학하는 사람은 틀린 학설을 내놓아도, 그거야 어쨌든 관념의 유희니까 해는 없죠. 그런데 한의과 교수님들이 잘못할 경우에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은 한번 생각해 볼만해요.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한의대 교수님들도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계신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시죠.

 

 

 

 

 

 

주역(周易)과 텍스트 크리티시즘

 

주역(周易)이라는 문헌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역(周易)’하면 태극기 생각나시죠? 네 가지 괘()가 다 주역(周易)과 관계가 있는 심볼들입니다. 주역(周易)은 모두 64 ()이고 일괘(一卦)는 육효(六爻)로 되어 있는데, ()는 제일 밑에 것부터 1,2,3,4,5,6효가 되고 세 효씩 묶어서 상괘(上卦)ㆍ하괘(下卦)로 나뉩니다.

 

주역(周易)의 제일 처음에는 건괘(乾卦)가 나오고 그 다음에는 곤괘(坤卦)가 나옵니다. 이번 우리 통나무에서 과학사상 연구회의 과학과 철학이라는 무크지를 냈는데 이번호(5, 199412)에서는 주역(周易)’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주역(周易)에 관한 것 외에도 인제대학의 조용현 교수가 인류학적 관점에서 쓴 도구·의식·언어라는 글도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발달과정을 비교하면서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는지를 상당히 의학적이고 인류학적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주역(周易)에 관한 논문들을 보면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들이 공들여 쓰신 글의 경우에조차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역(周易)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역(周易)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요? 주역(周易)은 상당히 복잡한 텍스트입니다. 흔히 문왕(文王)이 만들었다고 하는 괘들은 일종의 심볼이며 그리고 각 효에는 효사(爻辭)가 있습니다. 효사란 별게 아니고 새점을 칠 때 새가 입으로 물고 나오는 쪽지에 동쪽으로 가면 재수가 없을 것이다라는 말과 같은 거예요. 효사는 한 효에 한 개씩 붙어 있는데 64개의 괘에 각각 효가 여섯 개이니까 총 384개의 쪽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역(周易)은 그 쪽지에 이런 작대기 같은 심볼을 해당시켰는데, 이 심볼과 각 효사를 합친 것만을 역경(易經)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경이라고 할 때 기본적인 텍스트(Cardinal Text)이것밖에 없습니다. 효사들을 동질적인 프레그먼트로 본다면 최소한 이 효사는 내가 보기에 상당히 오래된 것 같습니다. 심볼과 효사만 작게 쓰면 A4용지에 다 쓸 수 있을 정도인데 현대의 주역(周易)을 보면 분량이 방대합니다. 그것은 역경(易經)의 경()에 대해서 전()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지요. ()은 후대의 사람이 경()에 대해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것인데 명백하게 후대의 작품입니다. 이 전()이 바로 공자가 썼다고 전해지지만 사실은 전한 시대에 성립되었다고 추정되는 십익(十翼)을 가리킬 뿐이에요. 이 십익에 관한 논의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단전(彖傳상전(象傳문언전(文言傳계사전(繫辭傳설괘전(說卦傳서괘전(序卦傳잡괘전(雜卦傳)의 일곱 개를 말합니다. 그런데 단전(彖傳상전(象傳계사전(繫辭傳)을 상하로 나누어 전부 열개가 되는 것입니다. 주역(周易)도 첫 번째 건괘(乾卦, 重天乾)부터 서른 번째 리괘(離卦, 重火離)까지는 상경(上經)으로, 서른한 번째 함괘(咸卦, 澤山咸)로부터 예순네 번째 화수미제괘(火水未濟卦)까지를 하경(下經)으로 해서 둘로 나눕니다. ()을 몸이라고 한다면 익()은 날개 즉, 주석이나 부연을 말하죠.

 

원래 주역(周易)이라는 텍스트는 한 가지 괘를 놓고 거기에 효사(爻辭)를 붙인 것이고, 단전(彖傳)이라는 것은 이러한 것에 관해서 육십사괘 각각에 대한 언급한 독립된 텍스트였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괘에 대한 상전, 단전 등의 내용을 뽑아서 원래의 괘속에 나누어 편집을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의 주역(周易)을 가지고 옛날의 주역(周易)의 체계를 생각하지만, 요즘의 주역(周易)은 원래 주역(周易)과 많이 다른 것입니다. (상전(象傳단전(彖傳계사(繫辭) 등이 모두 독립된 책들이었던 것입니다. 옛날 텍스트를 다시 만들려면 64개의 단전만 다 뽑아서 한 책으로 묶으면 단전(彖傳)이라는 책이 나오게 됩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같은 건괘 안에 있는 글이라고 해도 그것은 거기에 대해서 한 사람이 쭉 설명한 것이 아니고 완전히 시대와 사상을 달리하는 언급이기 때문이예요. 단전은 단전대로 유니크하게 시대와 사상이 달라요. 고고학적 발굴을 할 때 시대가 다른 여러 지층이 있는 것과 같이 주역(周易)에서도 수많은 지층이 발견됩니다. 그러니까 텍스트 크리티시즘이라는 것은 고고학자가 고고학적 유물을 발굴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다만 고전학자는 문자를 통해서 의식의 도구를 가지고 파고 들어가는 것이죠.

 

 

 

 

   

중용주역의 관계

 

그런데 지금 주역(周易)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중용(中庸)이라는 책과 주역(周易)이 매우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장의 마지막에는 치중화천지위언만물육언(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바로 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주역(周易)을 전제하지 않고는 있을 수가 없는 말이기 때문에 중용(中庸)주역(周易)과의 관련성을 따지는 거예요. ‘주역(周易)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위()에 있느냐?’하는 문제인데 하늘과 땅이 위치를 정한다[天地位焉 萬物育焉]는 것이 무엇일까요? 건괘(乾卦)와 곤괘(坤卦)가 위치를 정하고 그 사이에서 만물이 자라난다는 것인데, 이 만물은 64괘에서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를 뺀 62괘를 말합니다. 주역(周易)1장에는 이미 이러한 구조의 사상이 들어가 있어요. 중용(中庸)은 위와 같은 분석을 하지 않고서는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주역(周易)의 괘의 하괘(下卦)와 상괘(上卦)에서 가장 중요한 효는 두 번째와 다섯 번째입니다. 주역(周易)의 괘에서 제왕의 자리는 제 5효인데, 4효는 5효에 비하면 불급(不及)이고 6효는 5효에 비해서 과()입니다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둑 7급이 바둑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바둑 1급은 비슷한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중간은 그물코처럼 앞뒤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고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신영복, 강의, 103. 그리고 범인들의 세계에서 제일 좋은 자리는 제 2효입니다. 1효와 3효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역(周易)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중간(, Centricity)의 개념입니다. 건괘의 단전(彖傳)을 보면 대재(大哉)라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시(資始)하나니 내통천(乃統天)이로다 운행우시(雲行雨施)하야 품물(品物)이 류형(流形)하나니라 대명종시(大明終始)하면 육위시성(六位時成)하나니 시승육룡(時乘六龍)하야 이어천(以御天)하나니라 건도변화(乾道變化)에 각정성명(各正性命)하나니 보합대화(保合大和)하야 내리정(乃利貞)하니라 수출서물(首出庶物)에 만국(萬國)이 함령(咸寧)하나니라라고 끝납니다. 참 기막힌 문장인데 지금 내가 해석할 수는 없고 주역(周易)을 찾아보십시오.

 

()이라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지요? ()을 상징하며, ()은 유()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결국 중용(中庸)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강유(剛柔)의 중()이란 말입니다. 또한 중용(中庸)의 성()과 관련해서 주역(周易)건괘의 문언전(文言傳)에 보면 유명한 한사존기성(閑邪存其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여튼 주역(周易)을 보면 계사(繫辭)라든라 문언(文言설괘(設卦) 이런 것들이 조금의 선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동일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들의 사상을 분석해 보면 중용(中庸)하편의 구조와 여기에 있는 프레그먼트들이 거의 동일해요.

 

따라서 중용(中庸)주역(周易)은 동일시대의 동일한 의식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나는 이것을 전한대(前漢代)라고 생각합니다. 이 판단은 분명한 이유가 있고 정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역(周易)을 중국의 고문헌으로 생각하는데 주역(周易)은 전혀 고문헌이 아니예요. 64괘조차도 너무나 치밀하게 수학적입니다. 이것은 도저히 문왕의 작품일 수가 없어요. 이런 수학적 치밀성은 그렇게 고대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음양론이 성립한 이후에 나타난 장난임에 틀림이 없다고 나는 봅니다. 많은 중국의 학자들이 도기(陶器)에서 주역(周易)심볼의 원형을 찾는 짓거리들을 하는데 그것은 다 쓸데없는 일이예요. 주역(周易)의 성립 시기는 절대로 그러한 방법에 의해서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반드시 중용(中庸)이라는 텍스트를 주역(周易)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지금 더 자세히 설명하려고 해도 여러분들이 주역(周易)에 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계속할 수가 없군요. 그러나 쉽게 얘기하자면, 중용(中庸)주역(周易)계사(繫辭)와 동시대의 작품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결론입니다. 이러한 텍스트의 이해는 고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방법론입니다.

 

 

 

 

 

 

저자설(2011)

 

 

중용의 저자 1. 자사, 공자의 사상을 흡수하다

 

 

공자의 아들과, 손자

 

伯魚, 子思, 年六十二. 嘗困於. 子思中庸

 

 

해석

伯魚,

백어는 급을 낳았으니,

 

子思, 年六十二,

급의 자는 자사이며 나이 62세까지 살았고

 

嘗困於.

일찍이 송나라에서 곤액(困厄)을 당했다.

 

子思中庸

자사는 중용을 지었다.

 

 

1. 공자(孔子)19살 때 송()병관씨(幷官氏)개관씨(开官氏)라는 설도 있으나 청()때 고증됨와 결혼해 20살 때 백어(伯魚, BC 532~483)를 낳았음.

2. 논어(論語) 계씨(季氏)논어(論語) 양화(陽貨)을 통해 공자는 백어를 사랑하고 극진한 가르침을 줬다는 걸 알 수 있음.

3. 공자가 BC 484년에 귀노(歸魯)한 지 얼마 되지 않아 50세의 백어는 죽고 아들에게 곽()도 만들어주지 못하는 초라한 장례를 지내줌.

 

 

 

손자 자사의 생몰연대 구성

 

子思之母死於, 赴於子思. 子思哭於廟, 門人至曰: “氏之母死, 何爲哭於氏之廟乎?” 子思: “吾過矣, 吾過矣.” 遂哭於他室. - 檀弓

 

 

해석

子思之母死於, 赴於子思.

자사의 어머니가 위나라에서 죽자 그 소식이 자사에게 전달되었다.

 

子思哭於廟, 門人至曰:

자사가 사당에서 곡을 하자 문인들이 말했다.

 

氏之母死,

서씨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何爲哭於氏之廟乎?”

어찌하여 공씨의 사당에서 곡을 하십니까?”

 

子思: “吾過矣, 吾過矣.”

그러자 자사는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다!”라고 하고선

 

遂哭於他室. - 檀弓

마침내 다른 방으로 옮겨가 이어 곡을 했다.

 

 

1. 공자(孔子)ㆍ백어(伯魚)ㆍ자사(子思) 3대 모두가 이혼한 사람이란 기사가 실려 있음.

2. 공자의 ()’이나 자사의 ()’엔 인간사의 비합리적 극한상황의 체험이 내면에서 형성된 심오한 합리주의일 수도 있음.

3. 공자가 귀노(歸魯)했을 때 자사(BC 492~431)9살이었음. 귀노(歸魯) 1년 전인 BC 485년에 이혼한 부인 병관씨가 죽었고, 백어가 죽었을 때 이미 자사의 엄마는 위나라 서()씨와 재혼한 상태였음.

4. 그래서 서씨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자사도 그리운 마음에 곡을 했다가 문인들에 지적을 당했고 딴 방으로 옮겨 구슬피 울었던 것임.

 

 

 

 

 

자사, 공자 철학의 정수를 흡입하다

 

子思之母死於. 柳若子思: “子聖人之後也, 四方於子乎觀禮, 子蓋愼諸.” 子思: “吾何愼哉! 吾聞之, 有其禮, 無其財, 君子弗行也. 有其禮, 有其財, 無其時, 君子弗行也. 吾何愼哉!” - 檀弓

 

 

해석

子思之母死於.

자사의 어머니가 위나라에서 죽었다.

 

柳若子思: “子聖人之後也,

유약이 자사에게 말했다. “자네는 성인의 후예다.

 

四方於子乎觀禮, 子蓋愼諸.”

사방에서 자네가 예를 행하는 것을 보리니, 자네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子思: “吾何愼哉!

이에 자사는 말했다. “내가 어찌 신중히 하리오.

 

吾聞之, 有其禮,

내가 들으니, 예를 행할 수 있다 해도

 

無其財, 君子弗行也.

재물이 없으면, 군자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有其禮, 有其財,

그리고 예를 행할 수 있고, 재물까지 있지만

 

無其時, 君子弗行也.

시기가 적절하지 않으면 군자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吾何愼哉!” 檀弓

그러니 내가 어찌 신중히 하겠으리오!”

 

 

1. 자사의 복상(服喪) 문제는 당시엔 정칙이 없었지만, 당대 위나라와 노나라 등 여러 나라의 관심의 대상이었음.

2. 그에 대해 자사는 의례(儀禮)적 대응을 하지 않고 시중(時中)’의 논리와 시례야(是禮也)’의 관점으로 대응함.

3. 10살 때부터 공자가 세상을 뜬 14살까지 4년 동안 자사는 공자의 사상을 충분히 흡수했던 것임.

4. 공자가 세상을 뜬 이후 증자가 학단을 지키고 있었고 자공은 6년의 시묘살이를 했으니, 자사는 직전제자들에게 충분히 배울 수 있었음.

5. 중용에 공자의 핵심그룹인 안회와 자로가 인용되고 있다는 것은, 자사가 공자학단의 내부자 중에 핵심 내부자임을 입증함.

 

 

 

 

 

 

 

중용의 저자 2. 사상가 자사의 모습을 통해 본 중용저작의 가능성

 

 

노목공과의 대화에 드러난 중용의 핵심 철학

 

魯穆公問於子思: “何如而可謂忠臣?” 子思: “恒稱其君之惡者, 可謂忠臣矣.” 公不悅, 揖而退之.

成孫弋, 公曰: “向者吾問忠臣於子思, 子思: ‘恒稱其君之惡者, 可謂忠臣矣.’ 寡人惑焉, 而未之得也.”

成孫弋: “, 善哉, 言乎! 夫爲其君之故殺其身者, 嘗有之矣. 恒稱其君之惡者, 未之有也. 夫爲其君之故殺其身者, 效祿爵者也. 恒稱其君之惡者, 遠祿爵者也. 爲義而遠祿爵, 子思, 吾惡聞之矣.”- 곽점1호초묘, 魯穆公問於子思

 

 

해석

魯穆公問於子思: “何如而可謂忠臣?”

노목공이 자사에게 어떻게 해야 충신이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子思: “恒稱其君之惡者,

자사가 말씀드렸다. “항상 그 임금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이

 

可謂忠臣矣.”

충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公不悅, 揖而退之.

노목공이 그 얘기를 듣고 유쾌하지 않았고 자사는 읍하며 물러났다.

 

成孫弋, 公曰:

성손익이 노목공을 뵈니, 노목공이 물었다.

 

向者吾問忠臣於子思,

접때에 내가 자사에게 충신에 대해 물었더니,

 

子思: ‘恒稱其君之惡者, 可謂忠臣矣.’

자사께서 항상 그 임금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이 충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寡人惑焉, 而未之得也.”

내가 황당하여 그 뜻을 묻질 못했다.”

 

成孫弋: “, 善哉, 言乎!

성손익이 말했다. “, 참 좋습니다. 그 말씀이여!

 

夫爲其君之故殺其身者, 嘗有之矣.

임금의 어려움을 위해 몸을 죽인 자들은 일찍이 있었습니다.

 

恒稱其君之惡者, 未之有也.

그러나 항상 그 임금의 잘못을 말하는 이들은 있지 않았습니다.

 

夫爲其君之故殺其身者, 效祿爵者也.

대저 임금의 어려움을 위해 몸을 죽인 자들은 결국 녹봉과 작위를 얻게 됩니다.

 

恒稱其君之惡者, 遠祿爵者也.

그러나 항상 그 임금의 잘못을 말하는 이들은 녹봉과 작위와는 거리가 멉니다.

 

爲義而遠祿爵,

의를 위하여 녹봉과 작위를 멀리하는 것을

 

子思, 吾惡聞之矣.”- 곽점1호초묘, 魯穆公問於子思

자사가 아니라면, 제가 어찌 그것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1. 간결명료하게 선진유가사상의 소중한 일면을 독창적으로 보여줌.

2. 도덕을 결과에 좌우되지 않는 순결한 의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함.

3. 임금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시적 행동이 아닌, 일상적으로 끊임없는 과정이라는 중용의 핵심 주제가 드러남.

 

 

 

자사에게 드러나는 공자의 정수

 

魯穆公問於子思: “爲舊君反服, 古歟?” 子思: “古之君子, 進人以禮, 退人以禮, 故有舊君反服之禮也. 今之君子, 進人若將加諸膝, 退人若將墜諸淵. 毋爲戎首, 不亦善乎! 又何反服之禮之有!”

 

 

해석

魯穆公問於子思:

노목공이 자사에게 물었다.

 

爲舊君反服, 古歟?”

옛 임금을 위해 고국에 돌아와 반복하는 것이 옛날의 예입니까?”

 

子思: “古之君子, 進人以禮,

자사가 말씀드렸다. “옛날의 임금은 등용할 때는 그에 맞는 예로 했고,

 

退人以禮,

물러나게 할 때에도 그에 맞는 예로 했습니다.

 

故有舊君反服之禮也.

그렇기 때문에 옛 임금에게는 반복의 예가 있었던 것입니다.

 

今之君子,

그러나 지금의 임금은

 

進人若將加諸膝,

사람을 등용할 때에 마치 장차 무릎 위에 올려놓는 것처럼 친근하게 하고,

 

退人若將墜諸淵.

물러나게 할 때에는 마치 장차 연못에 밀어버리듯 합니다.

 

毋爲戎首, 不亦善乎!

그러니 그런 사람이 침략군의 괴수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또한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又何反服之禮之有!”

이런 상황인데 또한 어찌 반복의 예가 있겠습니까?”

 

 

1. 법치에 대하여 예치(禮治)를 강조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유가의 정통을 나타냄.

2. ()라는 것이 인간의 주관적 감정의 호오(好惡)를 규제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사문제를 합리적으로 원만하게 이루는 것을 정치의 핵심으로 봄.

3. 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먼저 비판의 재판소를 차려야 한다는 정신이 드러남.

4. 공자의 귀노(歸魯) 후엔 노나라에 흉년과 기근, 메뚜기 재해로 도둑이 들끓었을 때, 대책을 묻는 계강자의 말에 진실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지 않으신다면이라 일갈했던 장면이 떠오름.

 

 

 

 

 

 

 

중용의 저자 3. 중용의 저자는 자사다

 

 

중용의 구조

 

總論 1    
中庸論 2~20장 중반 가장 오리지널한 로기온 자료 자사
誠論 20장 후반~ 우주론적으로 심화시킨 논술 자사? or 자사학파?

 

 

 

자사가 지었다는 중용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가? 다른가?

 

1. ‘()’이란 개념은 선진문헌에 등장하지 않으며, 맹자(孟子)순자(荀子)등 전국후반 문헌에 등장함.

2. 중용(中庸)의 성론(誠論)이야말로 가장 완미, 완비, 완숙한 논의이기에, 다음의 두 가지 가능성으로 나누어짐.

 

자사나 자사학파의 탁월한 사상가 공자의 말을 통합하여 ()’을 개발 → 『맹자(孟子)순자(荀子)의 성론(誠論)이 나옴. 춘추시대에 성립
WHO? 맹자(孟子)순자(荀子)의 성론(誠論) 출현 이 논리가 성숙하여 중용등장. 진한교체기 or 한대 성립

 

 

3. 주희가 무척 길고 내용도 분절되는 20을 통째로 놔둔 것은 공자가어(孔子家語)』 「애공문정(哀公問政)편에 들어 있기 때문임.

4. 이런 논의로 볼 때 공자가어(孔子家語)중용(中庸)은 동일계열의 텍스트, 맹자(孟子)는 거기서 갈라져 나온 파편임.

5. 중용(中庸)맹자(孟子)보다 선행 텍스트임을 밝힌 서복관(徐復觀) 선생의 주장.

1) 중용(中庸)에선 군신(君臣)’, 맹자(孟子)에선 부자(父子)’가 중요하다고 여김. 대체로 정치관계가 가정관계보다 더 긴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현실정치가 개인에게 비치는 영향이 맹자시대보다 큼.

2) 논어(論語)에선 ()’()’가 대칭적으로 나타나며 중용(中庸)도 마찬가지임. 그리고 지인용(智仁勇)’도 나와 같은 패러다임을 말해주나, 맹자(孟子)엔 아예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나옴.

3) ()논어(論語)에선 내면적 자기향상으로 맹자(孟子)에선 애인(愛人)’의 사회적 맥락으로 푸는데, 중용논어에 가까움.

4) 논어(論語)묵식(黙識)’내성(內省)’중용(中庸)신독(愼獨)’의 바탕이 되었는데, 맹자(孟子)에선 구방심(求放心)존심(存心)양기(養氣)’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오행(五行)을 통해 보면 중용의 작자를 짐작할 수 있다

 

五行仁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行.

義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行.

禮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行.

智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行.

聖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德之行.

 

 

해석

五行仁形於內, 謂之德之行;

인이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어 축적된 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덕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不形於內, 謂之行.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은 그냥 물리적 행동일 뿐이다.

 

義形於內, 謂之德之行;

의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어 축적된 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덕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不形於內, 謂之行.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은 그냥 물리적 행동일 뿐이다.

 

禮形於內, 謂之德之行;

예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어 축적된 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덕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不形於內, 謂之行.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은 그냥 물리적 행동일 뿐이다.

 

智形於內, 謂之德之行;

지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어 축적된 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덕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不形於內, 謂之行.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은 그냥 물리적 행동일 뿐이다.

 

聖形於內, 謂之德之行;

성이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어 축적된 것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 그것을 덕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不形於內, 謂之德之行.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행동도 덕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인ㆍ의ㆍ예ㆍ지의 경우는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적 구분이 존재하지만 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러한 구분이 근원적으로 초월된다는 것이다. 성은 인간존재의 안과 밖의 구분이 사라지는 근원적 행()이다. 인ㆍ의ㆍ예ㆍ지는 상대에 속하지만 성()은 절대에 속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ㆍ의ㆍ예ㆍ지의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ㆍ의ㆍ예ㆍ지의 덕성을 내면에 축적하는 과정을 통하여 성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한다. 이때 성()을 성()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바로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가 되는 것이다.

-중용한글역주, 2011, 통나무, 147.

 

 

1. 곽점초간의 오행이 자사의 작으로 굳어지고 있으며 이 안에 이미 성()에 대한 논의가 있고 그게 성론(誠論)’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2. 그러하기에 도 자사가 쓴 것이고, 중용전체가 자사가 지은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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