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 10. 고전학을 공부하는 이유
해 아래 새 것은 파워가 없다
완전히 쌩으로 새 것이 나온다고 하면, 불가능할 거야 없지만 힘들고 또 누가 알아주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고전은 어떤 의미에서 업보예요. 왜냐하면, 글을 쓸 때에도 『중용(中庸)』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하면 근사하게 생각하고, 쌩으로 김용옥 얘기다 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을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고전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해요. 더 센 게 있으면 해도 됩니다. 그렇지만 서태지 정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서태지는 아주 센세이셔널(sensational)하고 자기 메시지도 있고 텍스트도 있으며 매체도 있습니다. 랩송은 아주 새로운 것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나도 ‘전혀 새로운 것으로 히트 칠 것 없나’하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 묘안이 없어요. 그럴 바에야 “썩은 것이지만 이것을 재해석하자”하고 고전학에 덤벼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덤벼들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고전학이란 것은 다른 사람의 것과는 다릅니다. 서태지도 새것이지만 그것 가지고는 문명의 운영이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고전 속에 파묻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왜 이런 고전을 봐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없이 그저 고전이라니까 고전학을 하는데 이제 우리는 고전학을 하는 그 이유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 주희는 기존에 있던 것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완전히 뜯어고쳤다. 이건 그냥 편집일까, 창작일까?
적당히가 아닌 제대로
나도 내 인생을 한 번 생각해 보았는데 요새는 조금 철이 든 것 같아요. 사람은 철이 안 들었을 때는 역시 화려하고 유명해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제 나는 유명해지는 것도 싫고 대단하게 무엇을 만드는 것도 싫습니다. 그저 앉아서 진실되게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거기서 묵묵히 무엇을 모색하는 그런 것을 하려고 합니다.
한국 지성계를 괴롭히는 가장 거대한 문제는 바로 무지(無知)입니다. 학자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배우는 사람인데 도무지 배울 생각들을 안 합니다. 지금 내 나이가 벌써 50인데, 나는 50살 돼서야 겨우 요정도 지식체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서원에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개가 한창 젊은 사람들인데요, 나는 지금 이 나이가 들도록 한의학이고 뭐고 간에 모두 쌩으로 다시 하는 정말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정말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서 뭔가 해내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요새 젊은이들은 컴퓨터를 현란하게 두들거리거나 마이클 조던의 멋진 덩크슛이 있는 농구처럼 하기 좋은 것만 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참으로 어려운 것, 고전을 하나 독파해서 제대로 안다든가, 의문이 드는 것을 철저히 따져서 확실하게 안다든가 해야지 어정쩡하고 애매한 자세로 남들이 얘기해주는 것이나 주워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제대로 알 때까지 파고드는 자세
오늘 내가 말한 십삼경(十三經)에 관한 얘기들은 대학교에 가면 경학한다는 사람들이 쉽게 강의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내 강의를 들으면 아주 쉬운 것 같으면서도 전혀 새로울 거예요. 왜냐 하면 그 사람들은 지가 모르는 남의 얘기들을 가져다가 지껄이는 것이고 나는 내가 경학사를 보다가 내가 깨달은 것만 여러분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쉽고 재미있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제대로 알고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한국문명이 나아갈 길이 없어요. 젊었을 때 야망을 가지고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사실 중요한 도전인데 고전에 대한 도전이 없는 지식은 공중누각입니다. 한국문명을 전공하든 무엇을 하든 고전에 대한 뿌리와 이해가 없이 문명을 논하는 허구성에는, 내가 보기에 감당하지 못할 천박함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올서원에 온 것은 대단한 일이며 엄청난 고전의 세계의 맛을 보려하고 있는 것이에요.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주기 바랍니다. 비록 한 달 동안이지만 상당히 집약적인 시간이 될 테니 열심히 공부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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