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의 형질 변경②
또한 그 무렵에는 문자, 종교와 더불어 오리엔트가 유럽에 준 마지막 선물인 화폐가 그리스에 전해졌다. 오리엔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화폐를 사용해왔는데, 이것이 리디아를 통해 그리스에 전해진 것이다. 오리엔트에서는 일찍부터 세금과 공납을 화폐로 받는 제도가 있었으나 화폐가 제 구실을 하게 된 것은 오리엔트보다 그리스에서였다. 넓은 지중해 세계에 걸친 무역 활동을 위해서는 화폐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이런 경제적 변화는 그리스의 폴리스 체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선 그리스 내의 산업 구조가 크게 변했다. 예전에는 주로 소비를 위한 것이었던 농업과 수공업의 생산이 이제 ‘시장을 위한 생산’으로 바뀌었다. ‘수출 입국’ 정책에 힘입어 그리스의 주요 농산물이었던 포도와 올리브도 수출용 생산 시스템으로 재편되었다. 대규모 과수 재배를 통해 포도와 올리브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포도주와 올리브유로 가공해 해외로 수출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 특산품인 도자기와 무기도 수출을 겨냥해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아테네의 어느 방패 제조업자는 수백 명의 일꾼과 노예를 투입해 전문적 생산을 했다고한다. 이렇듯 농업과 수공업을 비롯한 산업 생산 시스템이 재편됨에 따라 조선업과 직물업, 금속 세공업 등의 연관 산업들도 크게 발달했다.
만약 당시에 ‘자본주의 정신’이 존재했더라면 자본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20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폴리스는 예전과 같은 체제로는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들이 떵떵거리던 시절은 지났다. 기원전 7세기의 그리스에는 2000년 뒤에나 봄직한 ‘자본주의’의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자본주의’는 중국, 인도, 바빌론, 그리고 (유럽의 경우에도) 고대와 중세에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에는 근대 자본주의에서와 같은 독특한 에토스가 결여되어 있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의 에토스, 즉 자본주의적 합리성도 역시 역사의 산물이므로 고대 그리스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곧 폴리스의 형질 변경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한 세력은 바로 평민들이었다.
▲ 지중해 경제권 화폐는 문자, 종교와 더불어 문명의 씨앗(오리엔트)이 뿌리(그리스)에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사진은 지중해의 그리스 식민시들이 만들어 사용한 화폐들이다. 당시 화폐의 도안은 주로 앞면에는 지배자의 얼굴을 새겼고, 뒷면에는 화폐의 가치를 동물의 수로 나타냈다.
인용
연표: 선사~삼국시대
연표: 남북국 ~ 고려
연표: 조선 건국~임진왜란
연표: 임진왜란~조선 말기
연표: 대한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