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오리엔트=헬레니즘②
그러나 오리엔트적 요소만 두드러졌다면 굳이 헬레니즘 시대라는 말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오리엔트식 전제군주의 의례를 도입했을 뿐 아니라 페르시아 귀족들을 친위대로 임명하고 휘하 병사 1만 명을 페르시아 여성과 결혼하게 하는 등 그리스적 요소와 오리엔트적 요소를 통합하려 애썼다. ‘땅끝’까지 가본 그로서는 자신의 제국이 곧 전 세계였으므로 영토적 통합만이 아니라 문물과 제도의 통합도 이루고 싶었을 것이다. 오늘날 남유럽과 아라비아권 민족들의 외모가 비슷해진 데는 그런 통합의 영향이 크다. 뿐만 아니라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그리스어가 공용어【헬레니즘 시대의 고대 그리스어를 코이네(Koine)라고 부르는데, 공용어라는 뜻이다. 원래 그리스에서는 폴리스마다 방언의 차이가 심했으므로 그리스를 정복한 마케도니아는 아티카 방언과 이오니아 방언을 합쳐 표준어로 정했다. 이렇게 형성된 코이네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으로 페르시아와 이집트는 물론 인도 서부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당시 ‘전 세계’가 사용한 언어였으니 만국 공용어의 자격이 충분하다 하겠다】로 사용되었으며, 그리스식 폴리스들이 곳곳에 세워졌다.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로는 그대로 동서양의 교통로가 되었다. 특히 마케도니아군이 인도에서 퇴각할 때 개척한 인더스 강에서 페르시아 만까지의 해로는 이후 로마 시대에 인도와 지중해 세계를 잇는 중요한 무역로가 된다.
더 중요한 통합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다. 그리스와 오리엔트는 학문과 예술 등 문화의 모든 면에서도 한 몸이 되었다. 그리스 철학은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키니코스학파(견유학파), 키레네학파 등으로 확대 발전되면서 헬레니즘 철학의 문을 열었다(스토아학파를 정립한 제논이 키프로스의 셈족 출신이고, 견유학파를 연 디오게네스가 흑해 연안 출신이라는 점은 당시 학문의 국제화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과학에서도 수학은 그리스의 것이 확산되었는가 하면 천문학은 바빌로니아의 것이 널리 채택되었다.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올 때까지 서구 천문학을 지배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19세기에 비유클리드기하학이 성립할 때까지 불변의 진리였던 유클리드의 기하학, 그리고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부력의 원리를 발명한 아르키메데스 등이 모두 헬레니즘 시대의 산물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은 하나의 역사를 닫고 다른 하나의 역사를 연 중요한 계기였다. 그는 그리스의 폴리스 체제와 오리엔트의 전제군주 체제를 멸망시킨 대신 두 문명을 한데 아울러 세계 문명으로 일구어냈다. 이렇게 해서 열린 또 다른 역사의 문은 로마로 이어졌다. 헬레니즘으로 하나가 된 그리스와 오리엔트, 여기에 서부 지중해 세계(로마)가 편입되면서 서양의 고대는 완성된다.
▲ 그리스의 세계화 헬레니즘 문화가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도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덕분에 그리스 문화는 서아시아와 인도는 물론 멀리 신라의 불상에까지 자취를 남겼다.
인용
연표: 선사~삼국시대
연표: 남북국 ~ 고려
연표: 조선 건국~임진왜란
연표: 임진왜란~조선 말기
연표: 대한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