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묘지 입구에 도착하니, 예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2000년에 찾아왔을 땐, 흐린 날씨 탓인지, 의도가 불순한 탓인지 이렇게 잘 꾸며진 묘역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12년 만에 다시 찾은 묘역은 잘 꾸며져 있었다.
역시 한 번 가본 곳이라 해서 다시 찾아갈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기억의 속성이 그러하듯, 어느 환경, 어느 시기, 어떤 사람과 함께 했느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도 만나면 만날수록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장소 또한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본 곳이니, 다시 갈 필욘 없어요.”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 번 본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 국립묘지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 길을 지나면 저 멀리 상징탑이 보인다.
오월묘지 상징탑에 의미 새기기
버스에서 내리니, 길옆에 있던 나뭇가지엔 천에 적어놓은 글들이 매달려 있더라. 그 글을 읽으며 가다보니, 어느새 오월묘지 입구가 도착했다.
▲ 국립묘지로 가는 길엔 추모의 글들과 국화를 파는 곳이 있었다.
가는 길엔 참배객들을 위해 국화와 생수를 제공하고 있다. 그걸 받고 방명록에 이름을 기입하고 오월묘지를 둘러봤다. 상징탑을 보고선 한참 설왕설래가 있었다. ‘저 높은 곳에 둥근 모양의 알을 올려놓은 이유가 뭘까?’하는 의문 때문이다.
뭔가 위태로워 보인다. 알은 당연히 탄생에 대한 상징이기 때문에,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데에는 의견이 모아졌다.
▲ 사람들이 많이 와더라. 광주 외곽에 있지만 이런 날 잊지 않고 찾는 발길들.
하지만 문제는 왜 저렇게 위태롭게 만들어놨냐는 것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데 왜 그랬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위태로운 민주주의 상징이 아닐까?”라는 말을 했다. 한시도 긴장을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박살나고 말리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란 것.
물론 이런 해석이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을 알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 상징물을 보고 영화팀 친구들은 어떤 스토리를 써갔을지 궁금하다.
▲ 상징탑이 우리에겐 여러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
신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
민주묘지의 상징물인 높이 40m의 추모탑은 크게 탑신, 난형환조, 부조로 구성돼 있다. 사각기둥 모습인 탑신의 골격은 우리나라 전통석조물인 당간지주 형태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형상화한 것이다. 난형환조는 탑신의 중앙부분 감싸 쥔 손 모양의 내부에 설치된 난형의 조형물로 부활을 상징한다. -뉴시스 2012년 4월 30일 기사 중
그렇다면 실제 상징물의 의미는 무얼까? 우리는 기둥을 ‘알을 높게 배치하기 위한 구조물’ 정도로만 봤는데, 실제 그건 ‘알을 감싸 쥔 손 모양’을 나타냄과 동시에 당간지주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40m 높이로 된 당간지주는 오월묘지가 신성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당간지주 이야기를 할 때면 당연히 삼한시대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신성한 공간인 소도蘇塗가 떠오른다. 중학생 때 배울 땐 죄인이 들어와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이미지 때문에 소도를 알게 되었는데, 그건 꼭 610혁명 당시의 명동성당과 같은 느낌이었다.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에 공권력이 함부로 진입할 수 없어 철거민이나 시위대들의 피난처였으니 말이다.
소도는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큰 소나무를 세우고 신악기神樂器구실을 하는 방울과 북을 달았다고 한다. 그와 같이 당간지주도 신역神域과 인역人域을 나누는 구분선이라는 말이다. 즉, 상징탑을 기준으로 입구 쪽은 인간의 영역인데 반해, 묘지 쪽은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월묘지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주문이 가능하다.
“여기에 들어가려는 자, 신과 같은 마음을 회복할 지어다.”
▲ 현대판 소도인 명동성당과 518공원의 기념팝
사연이 묻힌 오월묘지
묘지를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찾지 못했다. 당연하다. 어느 묘지나 그 모양은 같으며 공원묘지에 가도 이런 광경은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 곳에 묻힌 사람들의 사연을 알고 있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5.18을 곱씹어야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해설사는 몇 군데 묘지를 둘러보며 해설을 해주셨다.
어떤 아리따운 신부님의 사진이 놓인 묘지였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신 8개월째라 육안으로 보아도 임신 상태인 걸 알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공수부대는 대검을 착검한 총으로 배를 사정없이 찔러 죽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묘지에는 엄마와 함께 핏덩이까지 함께 묻혀 있단다.
그리고 18살의 여학생도 떠오른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피를 주는 것밖에 없다며, 헌혈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헌혈을 하고 나오는 여학생이 공수부대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 자국민을 대상으로 살륙전을 펼쳤다.
감수성, 소통의 기본 조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던 어떤 분은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 한 학생은 “저 분은 되게 감성적이신 분인가 봐요”라고 했다. 그 상황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니, 왜 통곡하듯이 울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울 수 있다는 것은 감수성이 있다는 게 아닐까. 너나 나나 그런 감수성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우린 잘 살아야 한다는 것, 성공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남을 짓밟고 이기기 위해 당연히 지니고 있던 그런 감수성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아플 때 아파하고 기쁠 때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인데 말이다.
▲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걸어 다니며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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