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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종횡무진 서양사, 3부 뿌리② - 2장 지중해로 뻗어나가는 로마, 예상 밖의 승리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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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서양사, 3부 뿌리② - 2장 지중해로 뻗어나가는 로마, 예상 밖의 승리②

건방진방랑자 2022. 1. 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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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승리

 

 

20여 년간 시칠리아를 무대로 전개된 1차전(기원전 264~기원전 241)에서 로마는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기원전 260년 시칠리아 북부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로마가 승리한 것은 전혀 뜻밖의 성과였다. 강력한 해군 국가 카르타고를 해전에서 물리친 경험은 로마의 정복 전쟁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비록 4년 뒤에 로마는 카르타고 본토를 공략하다가 대패했지만, 이후 시칠리아에서 재개된 연장전에서는 골든골을 넣으면서 1차전을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 물론 당시에는 누구나 그것을 결승전으로 여겼고 1차전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로마의 전과는 막대한 배상금 이외에도 두 가지가 더 있었다. 하나는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코르시카를 정복했다는 것이다(시라쿠사는 개전 초기에 로마 측으로 돌아섰다). 이로써 로마는 최초로 해외 속주(provincia)반도를 통일하기까지 로마는 반도 내의 도시들을 사실상 지배했으나 형식상으로는 동맹시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1차 포에니 전쟁으로 해외 식민지가 생기게 되자 로마는 정책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속주 체제다. 사실 속주의 모델을 제공한 것은 카르타고였다. 시칠리아 서부를 지배하던 카르타고는 지배 지역으로부터 정기적으로 공납을 받는 제도를 시행했다. 로마는 원래 이탈리아 동맹시들에서 군대를 지원받았을 뿐 공납을 받지는 않았다(경제적 관계보다 정치적 관계가 더 강했던 탓이다), 카르타고의 예를 좇아 로마는 시칠리아, 사르데냐, 코르시카를 속주로 삼고 공납을 받기로 했다. 여기서 재미를 본 로마는 이후 해외 식민지들을 획득할 때마다 속주로 만들어 제국으로 향하는 경제적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속주를 뜻하는 프로빈키아라는 말에서 오늘날 영어의 province(지방)가 나왔고, 프랑스 남부의 고유한 명칭(프로방스)도 나왔다를 거느리게 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시작된 속주 체제는 이후 로마의 기본적 식민지 경영 체제가 된다. 다른 하나는 해군과 함대를 육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해군력은 뒤이어 벌어지는 2차전(사실상의 결승전)에서 로마가 대역전승을 거두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사실 1차전에서 로마가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카르타고의 내부에도 있었다. 로마의 본토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시칠리아에서 본국으로 급히 송환된 카르타고의 용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전투력은 뛰어나지만 충성심은 아무래도 부족한 게 용병의 한계다.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전쟁에서는 졌다. 카르타고의 총사령관인 하밀카르 바르카(Hamilcar Barca, 기원전 270년경~기원전 228)는 그런 사태만 없었더라면 이길 수 있는 전쟁이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로마와 억지로 맺은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조약은 폐기되어야 한다. 조약을 폐기하려면 다시 전쟁을 벌이는 것밖에 없다. 하밀카르는 전쟁 준비의 일환으로 에스파냐를 쥐어짰다. 에스파냐는 카르타고의 거대한 시장이자, 광산들이 곳곳에 있는 부유한 속주이자, 질 좋은 용병들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군사 지역이었다(그래서 에스파냐는 카르타고노바’, 즉 새로운 카르타고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때마침 로마는 전쟁의 승리를 발판으로 삼아 강력한 팽창정책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로마는 지중해 세계의 일부를 얻은 데 만족하지 않고 알프스를 넘어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기원전 225년에는 다시 150여 년 전처럼 갈리아인들이 대규모로 침입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로마가 아니었다. 막강한 로마 군단은 오히려 그 기회를 이용해 갈리아의 켈트 전사들을 북쪽 멀리 쫓아버리고, 그 일대에 여러 식민시를 건설했다. 이러한 로마의 팽창은 카르타고에 더욱 큰 위협이 되었다. 만약 로마군이 카르타고 최대의 식민지인 에스파냐 쪽으로 기수를 돌린다면? 당시 에스파냐의 총독이자 사실상의 왕이던 하밀카르는 카르타고의 생존을 위해 다시 칼을 뽑아들기로 결심했다. 2차 전의 전운이 무르익었다.

 

 

2차전의 시작 현재 에스파냐 북동부에 있는 사군툼의 유적이다. 사군툼은 로마의 주요한 식민지였는데,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 이곳을 점령해 에스파냐 전 지역을 손에 넣었다. 이 사건에 대해 로마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된다. 이 유적은 카르타고군에 의해 파괴된 도시를 후대에 로마인들이 재건한 것이다.

 

 

인용

목차

동양사

한국사

연표: 선사~삼국시대

연표: 남북국 ~ 고려

연표: 조선 건국~임진왜란

연표: 임진왜란~조선 말기

연표: 대한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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