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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종횡무진 서양사, 3부 뿌리② - 3장 제국의 탄생, 팽창하는 영토, 제정으로 가는 과도기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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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서양사, 3부 뿌리② - 3장 제국의 탄생, 팽창하는 영토, 제정으로 가는 과도기②

건방진방랑자 2022. 1. 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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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으로 가는 과도기

 

 

폼페이우스가 로마에 있었더라면 당연히 원로원은 그에게 진압을 맡겼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그는 에스파냐에서 세르토리우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초기 진압은 크라수스의 몫이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강력한 군대가 있어야 하지만, 크라수스에게는 군대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돈이 있었다. 돈으로 군대를 사면 된다. 크라수스는 대규모 용병대를 구성해 반란의 진압에 나섰다. 때마침 에스파냐에서 전공을 세우고 돌아온 폼페이우스도 스파르타쿠스의 잔당을 토벌했다. 당시 사로잡힌 노예군 전사 6000명은 아피아 가도를 따라 십자가에 묶여 처형되었다.

 

이 전공으로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는 기원전 70년 함께 집정관에 올랐다. 그러나 문제는 두 사람 다 여전히 자격 미달이라는 점이다. 민중파의 지지를 바탕으로 집정관에 선출되었으나 폼페이우스는 아직도 자신의 기반이 취약하다고 여겼다. 크라수스는 돈이 많으니 어떻게든 자격을 얻어내겠지만 폼페이우스는 처지가 달랐다. 그래서 그는 크라수스가 그랬듯이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더 큰 전공을 세우는 것이다. 없는 전쟁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에 폼페이우스의 눈에 아직 로마에 저항하고 있는 미트리다테스와 아직 로마가 정복하지 않은 시리아가 들어왔다. 게다가 로마가 잠시 관리를 소홀히 한 틈을 타서 지중해에는 해적들이 들끓었다.

 

다시 칼을 뽑아든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67년 해적 소탕에 나섰고, 이듬해에는 미트리다테스를 완전히 굴복시켰다(풍운아 미트리다테스는 로마의 포로가 되는 대신 부하의 손을 빌려 자살했다). 곧이어 기원전 64년에는 예루살렘을 정복해 셀레우코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시리아를 로마의 속주로 만들었다. 불과 3년 만에 로마의 골칫거리를 모조리 제거한 것이다.

 

이처럼 빛나는 업적에도 폼페이우스의 불운은 끝나지 않았다. 로마로 개선한 그는 자신의 충직한 군대마저 해산하고 원로원에 충성할 뜻을 보였으나 반대파는 좀처럼 그를 승인하려 들지 않았다. 하긴, 아무리 호랑이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호랑이를 자기 집에 들일 사람은 없으리라.

 

폼페이우스의 좌절을 절대적인 호기로 삼은 사람은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기원전 100~기원전 44)였다. 우직한 폼페이우스와 달리 판단력이 뛰어나고 영민한 카이사르는 사실상의 실력자이면서도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끌어들여 3두 정치 시대를 열었다(3두 정치라는 말은 원래 그들의 정적들이 그들을 머리가 셋 달린 괴물이라는 뜻으로 부른 데서 나온 경멸적인 명칭이다).

 

 

죽음의 결투 로마인들은 신체가 건장한 노예들을 뽑아 검투사로 양성했다. 물론 로마 군단의 병사로 쓰려는 것은 아니었다. 검투사들은 경기장에서 맹수들과 싸우거나 자기들끼리 목숨을 건 대결을 벌여 로마 시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역할이었다. 이들이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일으켰을 때 로마인들은 마치 사자들이 우리를 뛰쳐나온 것처럼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인용

목차

동양사

한국사

연표: 선사~삼국시대

연표: 남북국 ~ 고려

연표: 조선 건국~임진왜란

연표: 임진왜란~조선 말기

연표: 대한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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