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의 본산: 프랑스③
루이 7세의 아들이 바로 ‘존엄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필리프 2세(Philippe II, 1165~1223, 재위 1180~1223)다. 그는 2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3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때의 동료가 헨리 2세의 아들로 영국 왕이 된 리처드 1세였다. 프랑스 내의 영토를 놓고 반목이 심하던 그들이었으니 원정 도상에서부터 서로 심하게 다툰 것은 당연했다. 필리프가 원정을 중지하고 되돌아온 이유도 사실은 리처드가 없는 틈을 타 노르망디를 차지하려 했기 때문이다(귀족들의 반대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리처드는 ’사자심왕‘이라는 별명처럼 당대에 으뜸가는 무예를 자랑하는 전사였으니 필리프로서는 맞상대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 패배와 발전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에게 패하고 도망치는 영국 왕 존의 모습이다. 왼쪽에 말에서 떨어진 인물은 필리프인데, 영국에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되었을 것이다. 전쟁에서 대한 것은 존에게 큰 불행이었으나 영국 전체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귀족들이 패배한 존을 압박해 마그나카르타를 성립시켰기 때문이다.
뛰어난 전사라고 해서 반드시 유능한 왕이 되는 건 아니다. 리처드는 인품도 훌륭했고 정치적 자질도 탁월한 인물이었으나 불과 10년밖에 재위하지 못한 데다 대부분 국외에 있었던 탓에 별다른 치적을 남기지 못했다(동생 존의 폭정으로 로빈 후드가 의적이 된 것은 의도치 않은 결과다), 그의 동생으로 왕위를 계승한 존은 형의 영웅적 자질을 전혀 닮지 못한 인물이었으나 책략에는 형보다 한 수 위였다. 1200년 그는 앙주 부근 푸아투의 한 지방인 앙굴렘을 소유하기 위해 그 상속녀인 이사벨라와 결혼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그녀의 약혼자였던 드 뤼지냥에게 아무런 보상도 지불하지 않은 게 빌미가 되었다. 드 뤼지냥은 즉각 프랑스의 왕 필리프 2세에게 탄원했다.
필리프로서는 없는 구실도 만들어야 할 판에 호박이 넝쿨째 굴러든 격이다. 그는 상급 군주의 자격으로 존을 프랑스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갈 바보는 없다. 존이 이를 거부하자 필리프는 2단계 조치로 넘어간다. 존이 왕명을 받들지 않았으니 봉건적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왕은 영국 왕보다 지위상 상급 군주였으므로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필리프의 이런 태도는 어디까지나 구실이었을 뿐이다. 이 구실을 이용해 필리프는 앙주를 몰수한다고 선언한다. 격분한 존은 조카인 독일 황제 오토 4세와 연합해 프랑스를 공격하나 패하고 만다.
앙주가 프랑스 영토가 됨으로써 노르망디도 자연히 프랑스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제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는 아키텐 일대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 엄청난 손실에 영국의 봉건 귀족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1215년에 존은 결국 그들의 힘 앞에 무릎을 꿇고 ‘귀족의 요구 사항’을 수락했는데, 이것이 바로 마그나카르타 Magna Carta(대헌장)【마그나카르타는 전문(前文)과 63개조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본적인 그 내용은 국왕이 귀족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세금을 징수할 수 없도록 하고, 모든 자유인은 국왕이 아닌 법의 지배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국왕보다 법이 우위에 있다고 밝힌 점 때문에 마그나카르타는 서구 의회민주주의의 출범을 알리는 중요한 문헌으로 간주되지만, 여기에는 조금 과장이 있다. 영국의 귀족들이 마그나카르타를 성립시킨 것은 민주주의를 의도했다기보다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그나카르타는 오히려 봉건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노력의 표출이다. 당시 영국의 상황은 봉건제가 지나쳐서 생기는 폐단보다는 봉건제도가 모자란 데 따르는 폐해가 더 컸던 것이다】다. 이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13세기 말에는 드디어 유럽 최초의 의회가 영국에서 탄생하게 된다. 마그나카르타로 영국의 왕은 강력했던 왕권을 잃었지만 거꾸로 영국인들은 서유럽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도약할 계기를 얻은 것이다.
▲ 의회의 먼 기원 로빈 후드에게 농락당한 영국 왕 존이 귀족들에게도 농락당한 결과로 맺은 마그나 카르타다. 이것을 기원으로 수십 년 뒤 영국에는 세계 최초의 의회가 성립하지만(그래서 오늘날 영국인들은 ‘700년 의회의 역사’를 자랑한다), 실은 대륙의 봉건제가 인위적으로 이식된 영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용
연표: 선사~삼국시대
연표: 남북국~고려
연표: 조선 건국~임란
연표: 임란~조선 말기
연표: 대한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