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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2부 자람 - 5장 분열이 자연스러운 인도, 고대 인도의 르네상스: 가장 인도적인 제국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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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2부 자람 - 5장 분열이 자연스러운 인도, 고대 인도의 르네상스: 가장 인도적인 제국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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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도적인 제국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종교 분야에서 볼 수 있다. 아소카 시절 이후 불교는 인도의 지배적인 종교로 발달해왔다. 하지만 그런 불교가 인도에 널리 퍼지지 못한 이유는 바로 브라만교, 즉 힌두교 때문이었다(자이나교도 있으나 상인들을 중심으로 신도를 유지했을 뿐 교세가 불교와 힌두교에 필적하지는 못했다), 역대 제왕들은 대개 불교를 장려하고 포교에 힘썼으나 수천 년에 걸쳐 일반 백성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힌두교를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었다.

 

불교의 보급에 앞장선 바르다나의 하르샤 치세에는 북인도 동부의 파트나에 세워진 날란다(Nalanda) 사원이 불교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날란다는 불교 사원인 것만이 아니라 교육 시설과 기숙사 등을 갖춘 일종의 국립대학이었다. 특히 이 시기 날란다에는 해외의 구법승들이 많이 찾아와서 불법을 배우고 토론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저술한 당의 고승 현장(玄奘)도 날란다에 유학했으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으로 유명한 신라의 혜초(慧超)는 날란다에서 이미 전에 다녀갔던 한반도 승려들의 이름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불교가 성행한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굽타 시대는 모든 분야에서 인도 고유의 전통이 부활하는 시기였다. 이 흐름을 타고 전통의 힌두교가 널리 퍼지면서 신흥 종교인 불교는 차츰 위축되었다. 그렇잖아도 불교는 대승불교로 발전하면서 힌두교와 상당 부분 비슷해졌으므로 초기의 참신성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게다가 신의 모습을 조각으로 형상화할 수 있게 되자 불교보다 다신교인 힌두교가 포교에 더욱 유리해졌다. 힌두교의 3신인 브라마, 비슈누, 시바를 비롯한 수많은 신이 신상으로 만들어져 일반에 널리 퍼진 것이다.

 

이에 따라 불교는 점차 인도 내에서 세력을 잃고 동쪽의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로 옮겨갔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된 것은 후한 시대의 일이지만, 인도의 굽타 시대에 해당하는 남북조시대에 중국에서 불교가 크게 성행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반도와 일본에도 바로 그 무렵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불경을 짊어진 현장 날란다의 유학생 현장은 이렇게 불경을 잔뜩 짊어지고 당으로 돌아왔다. 그는 당 태종의 명을 받고 자신이 겪은 여정을 대당서역기로 펴냈다. 이 책은 당시 중앙아시아와 비단길 주변에 있는 138개국에 관한 사실을 전하고 있어 귀중한 문헌으로 꼽힌다.

 

 

인용

목차

연표

십팔사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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