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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싯달타의 체취를 간직한 아쇼카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싯달타의 체취를 간직한 아쇼카

건방진방랑자 2022. 3. 1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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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달타의 체취를 간직한 아쇼카

 

 

나를 감동시킨 것은 4대성지 그 자체가 아니라 우뚝 우뚝 서 있는 아쇼카석주였다. 그것은 너무도 리얼했다. 그것은 너무도 생동하는 역사의 증인이었다. 그런데 또 경악할 만한 사실은 이 생동하는 역사의 증인조차 확실치가 않다는 것이다. 이건 또 뭔 소린가?

 

우리가 붓다의 생애의 연대를 고증할 때 현재 쓰고 있는 자료가 모두 아쇼카를 기준으로 해서 역산하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역사서인 디파왕사(Dīpavaṃsa)와 마하왕사(Mahāvaṃsa)에 의하면, 붓다는 아쇼카왕의 대관식해보다 298년 먼저 태어났고 218년 먼저 서거했다는 것이다. 아쇼카왕의 대관식해는 326 BC로 되어 있으므로 붓다의 생몰은 624~544 BC가 된다. 그런데 희랍측의 자료에 의하면 아쇼카왕의 대관식은 268이나 267 BC의 사건이 된다. 이 자료에 근거하여 역산하면 붓다의 생몰은 566~486 BC가 된다. 유럽의 학자들은 모두 이 연대를 신빙성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인도자료와 그 번역서인 중국ㆍ티벹 자료에 의하면 붓다의 출생은 아쇼카 대관식보다 180년 빠르며, 죽음은 100년 빠르다고 한다. 희랍 측의 아쇼카대관식 연대를 전제로 하여 계산하게 되면 붓다의 생몰은 448~368 BC가 된다. 일본학자들과 독일학자 하인츠 베케르트(Heinz Bechert)는 이 설을 신봉한다. 그리고 혹설은 463~383 BC를 주장한다. 현재 고타마 싯달타의 생몰연대는 이렇게 다양하다.

 

남방전승 624 ~ 544 BC
희랍전승 566 ~ 486 BC
인도ㆍ중국ㆍ티벹ㆍ일본 463 ~ 383 BC
448 ~ 368 BC

 

 

한 인간의 생몰에 대한 추정이 아직도 200년 이상의 불확정성 영역을 헤매고 있다면 과연 그 역사성을 우리는 어디까지 신빙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도 유명한 왕, 너무도 고고학적으로 정확한 사실이 입증되는 그러한 인도 최고의 통치자의 연대도 아직까지 1세기의 불확정영역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이 사실이 역사의 기록을 생명같이 여겨온 황하문명권에서 본다면 하나의 기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인도의 역사는 대충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꼬치꼬치 캐물으면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싯달타는 나에게 예수보다는 더 리얼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나자렛에서 예수가 목수노릇했던 목공소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싯달타의 유적지에서는 그러한 냄새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 주변의 산하의 모습이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삶의 모습이 아직도 그 당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도는 고조선의 푸른 이끼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문명이다. 그러한 인간 싯달타의 체취를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바로 아쇼카인 것이다. 싯달타와 아쇼카의 생몰연대가 다 같이 유동적이든 말든지 간에 이 두 사람의 상대적 관계는 너무도 확실한 것이다. 아쇼카가 발견하려고 했던 역사적 붓다는 불과 그의 현실적 삶으로부터 200년이라는 시간 밖에는 떨어져 있질 않았다. 아쇼카는 분명 역사적 붓다의 체취를 몸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석주를 박아놓았던 것이다. 이 석주가 없으면 모든 것은 망각의 잿더미로 흘러가버렸을 것이다. 아쇼카 만세!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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