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겨자씨와 백향목
겨자는 풀, 그것이 어떻게 백향목 같이 거대한 나무가 될까?
❝예수의 비유는 자세히 조사해보면 인과적으로 허점투성이다. 겨자씨의 비유는 마태 마가ㆍ누가에 모두 나온다. 그것보다 더 원형인 도마텍스트의 출현으로 보다 명료하게 그 상징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제20장
1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가로되, “하늘 나라가 어떠한지 우리에게 말하여주소서.” 2그께서 그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그것은 한 알의 겨자씨와 같도다. 3겨자씨는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로되, 4그것이 잘 갈아놓은 땅에 떨어지면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식물을 내니, 하늘의 새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되나니라.”
1The followers said to Jesus, “Tell us wha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2He said to them, “It is like a mustard seed. 3It is the smallest of all seeds, 4but when it falls on tilled soil, it produces a great plant and becomes a shelter for birds of heaven.”
목사님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겨자씨의 비유를 도마복음에서 접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행운이며 감격이다. 그리고 신약성서라는 기존 텍스트에 관한 새로운 정보와 시각을 얻게 된다. 겨자씨의 비유는 3개의 공관복음서에 다 나오고 있는데, 도마복음서의 텍스트가 3복음서의 텍스트보다 더 오리지날한 원형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사계의 정론이다.
물론 추론자에 따라서는 도마복음의 텍스트가 3복음서를 보고 그것을 단순화시켜 축약해놓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도마복음의 초기연구자들은 도마복음의 성립연대에 관하여 전체적 그림을 그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편협한 주장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크로쌍(J. D. Crossan)을 위시한 최근의 연구자들은 도마의 텍스트가 가장 초기의 것이며 가장 가필(加筆)이나 조작이 없는 프로토텍스트라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In Parables 44~51).
▲ 왼쪽이 복음서에 나오는 갈릴리 지역 여자의 씨주머니(seedpods) 인데, 하나의 씨방에 8개 정도의 까만씨가 들어있다. 그 꽃은 꼭 제주도의 평원에 만발하는 유채꽃처럼 노랗다. 지중해연안의 겨자는 흑겨자이며 학명이 브라씨카 니그라(Brassica nigra)이다. 희랍 로마 문헌에 자주 언급되며 히포크라테스도 이것을 의학적으로 사용하였다. 동방에서 쓰인 겨자는 백개자(Sinapis alba, Semen sinapis)인데 『예기』 「의례」 속에 개장(芥醬)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십자화과의 일년생 혹은 월년생 초본이다. 오른쪽은 레바논의 백향목(Cedrus libani), 전술하였다.
우선 ‘겨자씨의 비유’는 마태와 누가에 공통되는 큐복음서 자료에 속한다.(Q61).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비유가 마가에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마가ㆍ마태ㆍ누가에 공통되는 공관자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겨자씨의 비유가 마가에 나옴에도 불구하고 큐자료에 속한다는 사실은, 마태ㆍ누가의 전승과 마가의 전승이 별개의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마태ㆍ누가의 공통텍스트가 마가에서 유래(由來)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태ㆍ누가에 비해 마가는 더 장문(長文)이며 마태·누가는 개인의 채마밭에 겨자씨를 심는 경작(horticulture)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마가는 겨자씨 한 알이 그냥 땅에 떨어진 상황, 즉 야생의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Ⅰ. 마태 13:31~32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II. 누가 13:18~19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Ⅲ. 마가 4:30~32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고?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이 세 개의 문장을 잘 비교해보면 누가가 가장 담박하며 오리지날하다는 느낌을 확실히 던져준다. 마가에서 유래하지 않은 큐복음자료의 경우, 항상 마태보다는 누가가 더 큐복음의 원형에 가깝다는 것은 정설이다. 이 경우, 누가에는 마가에 있는 최상급적 표현이 없다.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the smallest of all the seeds on earth)’으로부터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the greatest of all shrubs)’라는 표현, 즉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의 ‘가장 큰 것’으로의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이 누가에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의 ‘자기 채전(his garden)’이 마태에는 ‘자기 밭(his field)’으로 되어 있으며, 누가에 없는 ‘나물(shrub)’이라는 중간 단계가 마태에는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마태 저자가 큐원형인 누가자료에다가 마가자료를 첨가하여 마태자료를 구성하였다는 매우 명백한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마가에는 ‘땅에 심겨짐 → 자람 → 나물 → 큰 가지’라고 표현됨으로써, 트랜스 포메이션의 과정이 상세히 적혀있다. 여기 중간 단계인 ‘나물’은 시금치 무침과 같은 나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뿌리에서 분명한 주간(主幹)이 없이 여러가지가 다발로 나는 관목(灌木)을 의미한다. 그런데 관목도 어디까지나 목본(木本)이며 초본(草本)이 아니다. 즉 풀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겨자는 일년생 혹은 이년생의 초본이다. 아주 연약한 풀이며, 보통 1m정도, 아무리 높게 자라봤자 1.5m 정도에서 성장이 그치는 풀이다. 더구나 겨자씨가, 과연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일까? 겨자씨는 보통 2~3mm 정도 되는 것으로서 풀씨 치고는 씨에 속한다. 민들레라 불리는 포공영(蒲公英, Herba taraxaci)의 씨나, 질경이의 씨인 차전자(車前子, Semen plantaginis)에 비하면 턱 없이 커다란 씨이다. 그런데 더구나 겨자씨의 성장이 초본에서 관목으로, 그리고 관목에서 큰 가지가 달린, 소나무ㆍ전나무와 같은 교목(喬木)으로 변화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당시 예수의 비유를 듣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농부출신이었을 텐데, 이런 비상식적 이야기가 그들의 상식체계 속에 수용되었을까?
초본 → 관목 → 교목으로의 트랜스포메이션을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구약에 나타나고 있는 유대인의 전통적 관념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다니엘이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몽하는 장면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왕의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열매는 많아서 만민(萬民)의 식물(食物)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 거하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더라 하시오니,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昌大)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단 4:20~22)
에스겔(Ezekiel)에게 나타난 야훼의 예언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나 주 야훼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몸소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지라. (겔 17:22~23)
결국 겨자씨의 트랜스포메이션이 지향하는 종국은 레바논의 백향목의 이미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겨자씨의 비유가 왜 갑자기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둔갑되었을까?
▲ 헤르몬산 설원에서 녹아내리는 물이 갈릴리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요단강, 요단강은 폭이 넓은 강이 아니다. 가버나움 북쪽지역의 이 요단강 주변으로 겨자풀이 깔려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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