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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한글역주, 제73장 - 추수할 것은 엄청 많은데 일손이 모자란다 본문

고전/성경

도마복음한글역주, 제73장 - 추수할 것은 엄청 많은데 일손이 모자란다

건방진방랑자 2023. 3. 2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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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할 것은 엄청 많은데 일손이 모자란다

 

 

73

1예수께서 가라사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1Jesus said, “The harvest is large but the workers are few. So beg the master to send out workers to the harvest.”

 

 

본 장도 큐복음서에 병행한다(Q28).

 

 

(9:37~38)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주소서 하라하시니라.

 

(10: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큐복음서 자료로서 마태와 누가는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한 군데 어순의 차이만 있다). 그리고 마태-누가 자료와 도마자료도 거의 일치한다. 도마에는 추수하는 주인에게에서 추수하는이라는 수식적 표현이 없다. 마태-누가가 도마자료에다가 그런 수식구를 첨가했을 것이다. 큐복음서의 느낌으로 보면 이것은 예수운동을 하는 도반들을 지방으로 파송하면서 당부하는, 천국의 도래를 위하여 일하는 자들의 삶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the Mission Speech)의 첫머리에 해당된다. 예수운동 지침의 서장에 해당되는 멘트이다.

 

누가는 그 앞에 예수께서 두 명씩 짝지어 보내는 36, 그러니까 72명의 제자를 파송하면서 당부하신 말씀이라는 멘트만을 첨가하고 있다. 당시 12명의 제자 뿐만 아니고 많은 숫자의 제자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된다. 그리고 위험상황이 많으므로 두 명씩 짝지어 보냈다는, 매우 구체적인 실제정황을 전달하고 있다. 마태와 누가의 기술에 있어서 실제로 추수하는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칭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주석가들은 추수를 종말론적으로 해석하고 마지막 심판의 순간을 위하여 거두어 들여야 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으므로 더 많은 일꾼(제자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요청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에게 매달리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추수하는 주인은 마지막 심판의 주인인 하나님이다.

 

마태는 이 당부말씀을 의미있게 만드는 매우 구체적인 당시의 사회정황을 리얼하게 기술해놓고 있다.

 

 

(9:35~37)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또 목자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공동번역).

 

 

마태의 이러한 내러티브는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다. 도마의 본 장의 해석도 이런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수의 천국운동은 매우 성공적인 사회운동이었으며 엄청난 인파가 날로 몰려들고 있었다. 구원의 손길을 뻗치는 사람은 많은데 일손이 모자랐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끌어모은다는 종말론적 분위기의 전도사업적인 맥락은 여기 끼어들 자리가 별로 없다. 한때, 대우그룹이 왕성하게 활동할 때에 김우중 회장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문명의 전기에서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런 갈급한 심정이 서리게 될 것이다. 역사적 예수도 구체적으로 세파에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애처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는 각자(覺者)들의 사회적 공능의 요구도의 광범함에 대하여 다급한 심정이 있었을 것이다. 깨닫는 자가 너무도 적었기 때문이다. 본 장을 도마공동체나 영지주의 전도사업의 시급함으로 해석하는 주석도 있으나, 그것은 도마복음의 성격을 잘못 파악하는 사람들의 천견(淺見)이다. 본 장은 역사적 예수의 절박한 사회적 관심(social concern), 그리고 더 많은 각자(覺者)들의 가담을 요청하는 기원으로 해석해야 옳다. 예수의 방식으로 깨닫는 자들의 사회적 기여도의 진실됨과 그 파급력이 강렬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최종적인 또 하나의 해석의 가능성은 일체의 상징성을 배제한 채 역사적 예수가 갈릴리 농촌 현실에서 부닥친 사태에 대한 단순한 보도로서 해석하는 것이다. 추수하는 장면에서 일손이 모자라 애쓰는 일꾼들을 향해 주인에게 일손을 더 청하라고 권유하는 사건으로 해석해도, 그 단순한 사실 보도가 더 큰 상징적 함의를 지닐 수도 있는 것이다.

 

 

 괴레메 지역의 한 석굴교회인 샌달교회, 예수일생에 관한 다양한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동방박사, 세데, 나사로를 살리심, 변모산, 예루살렘 입성, 유다의 배반, 부활, ‘판토크라토르(Pantokrator, 만물의 지배자)’ 양식으로 그려진 예수 등등. 예수의 승천 장면에 예수가 샌달을 신고 있어서 샌달교회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괴레메 옆동네 우찌사르(Uçhisar) 전경, 저 높은 바위속이 터널과 창문으로 뚫려있으며 괴레메지역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거기서 보면 사방장관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1980년대 이전만해도 아무도 찾지 않는, 태고의 정적이 감도는 촌락이었다. 성ㆍ속이 혼재하며 인간의 삶이 전승되어온 살아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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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성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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