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17. 구경론(九經論)②
‘래백공(來百工), 유원인(遊遠人), 회제후(懷諸侯)’의 의미를 알려면 그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이 ‘구경론(九經論)’ 문장을 꼼꼼히 따져 봐도 중용(中庸)은 전국(戰國) 말기나 제국(帝國) 초기에 성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국(戰國) 말기에 부국강병이라는 과제를 놓고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영토의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이라는 데는 워낙 땅덩어리가 큰데다가 인구가 지금처럼 많지 않고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영토싸움이 중요한 문제일 수 없었어요. 『맹자(孟子)』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개간·경작의 문제였죠. 거기서 곡식이 산출되어야 내 땅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내 땅이라고 선언하고 주장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거든요. 미간지를 농지로 개간하고 그 밭에서 경작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인구가 필요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문제는 영토의 넓이가 아니라 인구의 크기였던 것이죠. 지금처럼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그 당시에 전개되었다면 참 행복한 일이었을 겁니다. 동양고전의 세계에서 산아제한이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당시에는 무조건 많이 낳으면 좋은 일이었어요.
다첩제도(多妾制度)란 것이 옛날에는 당연한 겁니다. 여자는 한평생 난자가 400-500개 정도밖에 생기지 않지만, 남자는 하루에도 수억의 정자가 생기기 때문에 신체구조상으로 볼 때 한 남자가 많은 여자를 거느려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여자는 그 생산의 가능성을 놓치지 말고 유감없이 발휘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여자에게 멘시스(Menses, 달거리)가 없어야 했어요. 멘스할 찬스도 없이 계속 아이를 배고 낳고 하면서 한 스무명 쯤 애를 낳으면, 평생 멘스 없이 사는 것이죠. 생리대 자체가 현대문명의 소산입니다. 여자는 멘스가 없는 동물이 되어야 했었는데,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애를 한 둘만 낳게 되면서 여성에게 멘스가 일상적인 일이 되었고 항상 생리대를 휴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큰어머니만 해도 13명의 자녀를 생산하셨는데 그래도 끄덕 없어요. 옛날에는 보통 10명씩은 쑥쑥 낳고도 건강하게 잘만 살았거든요. 쌩쌩하다고! 이런 면에서 요새 여자는 너무 허약해요.
그러나 옛날에는 제아무리 생식능력이 왕성하고 부지런하다고 해도 자연적인 생식만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인구확보를 위한 전쟁을 벌여야 했던 것입니다. 옛날에 전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파괴와 정복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구확보에 있었던 것이예요. 그 당시 시대 상황 속에서 부국강병의 실제적인 의미를 캐들어가야 합니다. 사람을 확보하는 문제에 있어서 산아장려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사람이란 병아리처럼 단시일에 대량으로 부화되고 또 빨리빨리 자라는 동물이 아니고, 쓸모 있을 만큼 성장하려면 2·30년씩 걸리기 때문에 왕의 재임기간 동안에 이런 자연생식만으로는 인구확보의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고, 따라서 인구확보를 위한 전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노동력에 대신하는 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전쟁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인구확보를 하여 노동력을 갖추는 것 이외에 달리 부국강병의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이 없으니까 전쟁을 해서 사람을 뺏어오는 것이죠.
맹자(孟子)의 말은, 우리가 확보하려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무력으로 땅을 뺐고 그러지 말고 정치를 잘해서 사람들이 스스로 몰려들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맹자(孟子)의 논리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민논리다! ‘패도(覇道)’와 ‘왕도(王道)’라는 맹자(孟子)의 동양정치사상이 나오게 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빈 땅들을 놓고서 하는 이야기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토 확장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니까 인정(仁政)을 베풀어서 사람들이 탐내는 나라, 가서 살고 싶은 나라가 되면 이웃 나라에서 사람들이 이주해 올 것이고, 그러면 전쟁을 하지 않아도 부국강병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맹자(孟子)의 논리였던 겁니다.
‘래백공(來百工)’ 서민들을 자식같이 여긴다는 것은 인정(仁政)을 베푼다는 말인데, 그러면 백가지의 공인들, 기술자들이 몰려든다는 것입니다. 부국강병의 실제적인 사업을 하려면 일꾼들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백공은 이런 개간·경작 등에 몸소 힘쓸 일꾼, 즉 문명을 건설하는 실제적인 일꾼들인 셈입니다. 서민들을 자식처럼 여기면, 목수, 토목공사 하는 사람들 등 여러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딴 나라에서 온다는 중용(中庸)시대의 사회적 요청은 지금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미국은 히틀러가 유럽의 위대한 과학자란 과학자는 전부 내쫓아서 미국으로 몰아다준 덕분에 이룩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故爲淵敺魚者, 獺也; 爲叢敺爵者, 鸇也; 爲湯武敺民者, 桀與紂也. -『孟子』 「離婁」]. 미국문명이 지금처럼 대단해지고 미국의 대학이 그렇게 위대한 대학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부 히틀러 시대에 유럽의 지성들이 대거 미국으로 쫓겨 와서 정착했기 때문이라 그 말이요. 유럽 사람들이 얼마나 콧대가 쎈 사람들인데 2차 세계대전이란 전화(戰禍) 속에서 빚어진 핍박과 추방이 아니었던들 뭐가 아쉬워서 그 엄청난 지식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건너가서 교편을 잡았겠어요? 그런데 히틀러 덕분에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미국은 히틀러의 광분에 따른 ‘래백공(來百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인데, 미국으로서는 앉아서 거저로 먹은 것이나 다름이 없죠.
우리나라가 인력을 빼앗기는 것도 같은 문제예요. 미국은 아직도 땅이 넓기 때문에 이민 정책을 쓰고 있고, 우수한 인력들을 확보하려는 데 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미국사회가 워낙 꽉 짜여져 있기 때문에 동양인들이 뚫기가 어렵긴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동남아시아 각국 출신의 근로자들을 대하는 요즘의 행태는 참으로 안 될 일이고 나쁜 짓입니다.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유원인(柔遠人)’ 예를 들어서, 저 멀리 네팔사람일지라도 부드럽게 대해 줘라, 멀리 있는 사람일지라도 회유하라, 부드럽게 대해 줘라! 그렇게 되면 ‘회제후(懷諸侯)’ 제후를 다 거느릴 수 있다 이겁니다. 지금으로서는 미국이 ‘회제후(懷諸侯)’하고 있습니다. 나쁜 짓도 많이 하지만 미국은 그래도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어요. 이것은 ‘국(國)’의 문제가 아니라 ‘천하(天下)’의 문제입니다. 스케일이 커요. 따라서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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