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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화암노승전(梨花庵老僧傳) - 1화: 병자호란으로 겪은 새옹지마 본문

한문놀이터/인물

이화암노승전(梨花庵老僧傳) - 1화: 병자호란으로 겪은 새옹지마

건방진방랑자 2019. 7. 18.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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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자호란으로 겪은 새옹지마

 

정범조(丁範祖)

 

 

병자호란으로 심양에 잡혀가다

歡州, 世爲州掾吏

仁祖丙子, 胡薄京城, 進圍南漢, 縱兵四掠, 俘虜男女老弱. 僧年十七, 被虜赴, 隷卒伍, 胡中, 皆虜奴遇也.

 

군대에서 두각을 나타내 인정받다

一日胡酋下令軍中, 試角觝戱. 有三胡最勇壯, 善角觝, 莫有敵者. 僧與之戱連踣三胡, 胡酋喜賜善馬騎之. 嘗大雪, 醫巫閭, 有猛虎騰赴, 人莫敢近. 僧躍馬射一發而殪. 胡酋爲氣奪, 立超爲隊長, 日益親幸.

 

잘 살게 됐지만, 좋질 않네

於是中富胡嫁以女, 僧蓄貲産自豪. 日馳騁射獵寧塔狼山間甚適居 久之. 淸順治帝入據燕京, 我人之被虜留, 咸得贖金遣還, 僧感念故國, 棄孥帑東還.

 

 

포로로 잡혀가는 조선인의 모습.(영화 [최종병기 활]의 장면)

 

 

 

 

해석

 

병자호란으로 심양에 잡혀가다

 

歡州, 世爲州掾吏

스님은 환주천안시·천안군의 고려 초기 이름 사람으로 대대로 주()의 아전을 맡았다.

 

仁祖丙子, 胡薄京城,

인조 병자(1636)년에 청나라 오랑캐들이 한양에 가까이 왔고

 

進圍南漢, 縱兵四掠,

가까워지자 남한산성 성곽을 에워싸 병사들을 보내 사방으로 약탈하여

 

俘虜男女老弱.

남녀노소할 것 없이 포로로 만들었다.

 

僧年十七, 被虜赴,

스님의 나이 17살에 포로로 잡혀 심양으로 갔고,

 

隷卒伍,

군대에 예속되었다.

 

胡中, 皆虜奴遇也.

군중에선 모두 포로와 노비로 대우를 받았다.

 

 

 

군대에서 두각을 나타내 인정받다

 

一日胡酋下令軍中, 試角觝戱.

하루는 오랑캐의 지휘관이 군대 내에서 각저角力, 角觝, 角戱, 相撲: 중국에서 했던 씨름의 이름. 시합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有三胡最勇壯, 善角觝, 莫有敵者.

세 명의 오랑캐가 가장 용맹하고 씩씩했고 각저를 잘하여 적수가 없었다.

 

僧與之戱連踣三胡,

스님은 그와 함께 시합을 했는데 연달아 세 명을 쓰러뜨렸고,

 

胡酋喜賜善馬騎之.

오랑캐의 지휘관은 기뻐하며 좋은 말을 하사해 그가 타도록 했다.

 

嘗大雪, 醫巫,

일찍 큰 눈이 내린 날에 의무려산에서 사냥하는데

 

有猛虎騰赴, 人莫敢近.

사나운 범이 달려드니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가질 못했다.

 

僧躍馬射一發而殪.

스님은 달리는 말에서 화살 한 발을 쏴서 쓰러뜨리니,

 

胡酋爲氣奪, 立超爲隊長,

오랑캐의 지휘관은 기가 빨려 곧바로 승진시켜 부대장을 삼았고,

 

日益親幸.

날로 더욱 지휘관과 가까워졌다.

 

 

 

잘 살게 됐지만, 좋질 않네

 

於是中富胡嫁以女,

이에 심양에서 부잣집 딸과 결혼했고

 

僧蓄貲産自豪,

스님의 재산이 더 불어나 절로 부자가 됐으며,

 

日馳騁射獵寧塔狼山間甚適居, 久之.

날마다 말달려 영탑과 낭산 사이에서 산 지 오래였다.

 

淸順治帝入據燕京,

청나라 순치제에 들어와 연경을 점거하니,

 

我人之被虜留, 咸得贖金遣還.

우리 포로들로 심양에 머물던 사람들은 모두 돈으로 속죄하여 돌아갈 수 있었다.

 

僧感念故國, 棄孥帑東還.

스님도 고국이 그리워 처자식을 놔두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인용

전문

초역본

1: 병자호란으로 겪은 새옹지마

2: 조선에서 아전이 되었다가 스님이 된 사연

3: 전을 짓게 된 이유와 스님에 대한 평가

梨花庵老僧行

몽롱춘추

17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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