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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피서록 - 22. 이화암노승행(梨花庵老僧行)을 통해 본 조선 유자들의 맹목성에 대해 본문

문집/열하일기

피서록 - 22. 이화암노승행(梨花庵老僧行)을 통해 본 조선 유자들의 맹목성에 대해

건방진방랑자 2019. 7. 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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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梨花庵老僧行을 통해 본 조선 유자들의 맹목성에 대해

 

 

崔杜機成大, 梨花菴老僧歌: “吳王看戱泣椎結, 錢叟爲僧托麟筆.”

我東先輩每於中州事, 率因風聞而不詳實蹟. 所謂吳王者, 吳三桂, 錢叟者, 錢謙益. 謙益三桂, 俱以降虜, 白頭无聊, 一則雖托義擧而號先僭, 一則寓意著書而大節已虧. 雖欲巧逃後世之誅貶, 人孰信之.

吾東諺, 凡事物之䵝昧者, 稱矇矓春秋. 東人喜談春秋而矇矓, 若是類者多, 豈不爲滿人之所笑也. -燕巖集卷之十四 /熱河日記』 「避暑錄

 

 

 

 

해석

崔杜機成大, 梨花菴老僧歌: “吳王看戱泣椎結, 錢叟爲僧托麟筆.”

두기 최성대의 이화암노승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吳王看戱泣椎結

오왕은 연극을 보다가 상투에 울었고

錢叟爲僧托麟筆

전수는 스님이 되어 史筆[각주:1]에 의탁했다.

 

我東先輩每於中州事, 率因風聞而不詳實蹟.

우리 조선의 선배들은 중원의 일에 대해서는 경솔히 풍문에 따를 뿐 실체가 상세히 하진 않았다.

 

所謂吳王者, 吳三桂[각주:2], 錢叟者, 錢謙益[각주:3].

소위 오왕이란 오삼계이고 전수란 전겸익이다.

 

謙益三桂, 俱以降虜, 白頭无聊,

겸익과 삼계는 함께 항복한 포로로 늙도록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내다가,

 

一則雖托義擧而號先僭,

한 사람은 비록 의거에 의탁했지만 구호가 먼저 참람되었고,

 

一則寓意著書而大節已虧.

한 사람은 뜻을 붙여 역사서를 지었지만 큰 절개는 이미 그르쳤다.

 

雖欲巧逃後世之誅貶, 人孰信之.

비록 후세의 비판을 교묘하게 벗어나려 해도 사람들이 누가 그것을 믿겠는가.

 

吾東諺, 凡事物之䵝昧者, 稱矇矓春秋.

우리 동방의 속담에 보통 물정에 어두운 것을 몽롱춘추라고 말들 한다.

 

東人喜談春秋而矇矓, 若是類者多,

조선 사람들은 춘추를 말하기 좋아하지만 몽롱하여 이와 같은 부류가 많으니,

 

豈不爲滿人之所笑也. -燕巖集卷之十四

어찌 만주족에게 비웃음 당하지 않겠는가.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문제

梨花庵老僧行

梨花庵老僧傳

 

 

정민의 세설신어 중에서

  1. 麟筆: 史筆을 말함. 공자가 ‘기린을 얻은 데에서 붓을 놓았다[絶筆於獲麟].’한 데서 나온 말이다. [본문으로]
  2. 吳三桂: 요동 사람으로 崇禎 연간에 武人으로 등용되어 總兵을 거쳐 平西伯에 봉해지고 山海關을 진수했다. 李自成이 明京을 함락시키고 그의 애첩 陣圓圓을 잡아가자 오삼계도 淸兵을 거느리고 산해관으로 들어가 이자성을 격파하여 平西王을 봉받고 雲南을 진수했다. 강희 황제가 藩屛을 철폐하려 하자 반기를 들고 天下都招討兵馬大元帥라 자칭하고 雲南ㆍ貴州ㆍ四川ㆍ湖南ㆍ廣西 등 광범한 지역을 차지하고 그에 호응하는 자도 나와 周의 황제를 자칭하고 백관을 두는 둥 청실과 맞서온 형국을 조성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손자 吳世璠의 대에 와서 淸에 멸망되었다. 자는 長白이다. [본문으로]
  3. 錢謙益: 明末ㆍ淸初의 文人. 명 나라가 망하자 청 나라에 벼슬하여 『明史』편찬에 참여하였다. 詩文에 뛰어났으며, 『初學集』ㆍ『有學集』 등의 저서가 있다. -『淸史』 卷483 「錢謙益列傳」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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