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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9. 작시, 즐거운 괴로움 - 4.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9. 작시, 즐거운 괴로움 - 4.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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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섭석림기(葉石林記)란 책에는 송나라 때 진사도(陳師道)의 일화가 실려 전한다. 그는 산수를 노닐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곧 돌아와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쓰고 침상에 누워 버린다.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면, 즉시 고양이나 개는 멀리 쫓고 애기는 안고 어린애는 데리고 가서 이웃집에 맡긴다. 그리고는 그가 시를 완성하기를 기다린다. 시가 완성된 뒤라야 감히 다시 애도 데려오고 고양이와 개도 불러올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사흘씩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시인이 고심참담한 결과만을 놓고 좋으니 나쁘니, 잘 되었네 못 되었네 말들 하지만, 정작 그 갈피 갈피에 서린 고초는 간과해 버리기 일쑤이다. 고인(古人)이 작시(作詩)의 괴로움을 읊은 시 몇 구를 살펴보자.

 

두보(杜甫)강상치수여해세료단술(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이란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爲人性僻耽佳句 내사 성벽이 가구(佳句)를 탐닉하여
語不驚人死不休 말이 남을 놀래키지 못하면 죽어도 그치잖으리.

 

이 시를 통해 만장의 기염을 토한 바 있다.

 

노연양(盧延讓)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吟安一箇字 撚斷幾莖髭 한 글자를 알맞게 읊조리려고 몇 개의 수염을 비벼 끊었던가.

 

그 작시에 골몰하느라 수염을 배배 꼬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절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방간(方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吟成五字句 用破一生心 다섯 자의 시구를 읊조리느라 일생의 심력을 다 바치었네.

 

글자 하나 구절 하나를 놓고 좌고우탁(左顧右度), 천사만려(千思萬慮)의 고심을 거듭하던 옛 사람들의 시작(詩作) 자세를 알 수 있다.

 

두목(杜牧)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欲識吟詩苦 秋霜若在心 시 읊조리는 괴로움 알고 싶은가 가슴 속에 가을 서리 서린 듯하네.

 

시로 태운 안타까운 가슴은 얼마나 뜨거울 것인가 마는, 그간의 고초를 생각하면 차라리 가슴 속에 차디찬 가을 서리를 품은 듯하다 했다. 그런데도 이 말이 전혀 엄살이나 과장으로 비치지 않는 것은 스스로에게 냉혹하리만치 준엄했던 옛 시인의 시정신 때문일 터이다.

 

이백(李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爲問如何太瘦生 묻노니 어찌하여 그다지 말랐더뇨
只爲從前作詩苦 다만 이제껏 시 짓는 괴로움 때문일 테지.

 

작시(作詩)에 골몰하느라 바싹 야위어버린 벗의 모습을 애상(哀傷)한 바 있다. 이 말이 있은 이후 시를 쓰다 야윈 것을 따로 시수(詩瘦)’라 일컫기도 한다. 고금의 시 가운데 창작의 괴로움을 토로한 것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고문위(顧文煒)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爲求一字穩 耐得半宵寒 한 글자의 온당함을 구하느라고 긴긴 밤의 추위를 참아 견뎠네.

 

두순학(杜荀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典盡客衣三尺雪 엄동설한 나그네 옷 죄다 잡히고
煉精詩句一頭霜 시구를 가다듬다 머리 다 셋네.

 

제기(齊己)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覓句如探虎 逢知似得仙 좋은 시구 찾기를 범 찾듯 했고 알아줌을 만나면 신선 만난듯 했지.

 

유소우(劉昭禹)풍설시(風雪詩)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句句夜深得 心從天外歸 구절마다 깊은 밤에 얻은 것이니 마음은 하늘 밖에서 돌아온다오.

 

밤마다 작시(作詩)에 골몰하느라 넋이 아득한 하늘 밖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즐거운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배설(裵說)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苦吟僧入定 得句始成功 입정(入定)에 든 스님처럼 괴로이 읊조리니 시구를 얻어야만 공을 이루리.

 

아예 시도(詩道) 삼매(三昧)를 선정(禪定)에 든 고승(高僧)의 삼매경(三昧境)에다 견주기까지 하였다. 이렇듯 미친 듯한 몰두 끝에 얻어진 시이고 보니, 그 시에 대한 애착 또한 유난스럽기 짝이 없다.

 

 

 

 

인용

목차

1. 예술(藝術)과 광기(狂氣)

2.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3.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4.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5.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

6. 개미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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