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9. 작시, 즐거운 괴로움 - 2.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9. 작시, 즐거운 괴로움 - 2.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2:58
728x90
반응형

 2.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한 구절의 시구도 목숨처럼

 

고려 때 김황원(金黃元)이란 이가 평양 감사가 되어 부벽루(浮碧樓)에 올랐는데, 누각에 걸린 고금의 제영(題詠)이 성에 차는 것이 없는지라 시판(詩板)을 다 떼어 불사르게 하고는 하루 종일 난간에 기대 괴로이 읊조렸으나 다만 다음의 두 구절만 얻었다.

 

長城一面溶溶水 장성 한 면에는 넘실대는 강물이요
大野東頭點點山 넓은 벌 동편에는 점점이 산일래라.

 

그러고선 뜻이 고갈되어 마침내 통곡하고 돌아왔다는 일화가 역대 시화에 두루 전한다.

 

역시 고려 때 유명한 시인 강일용(康日用)은 백로를 가지고 시를 지으려고, 비만 오면 짧은 도롱이를 입고 성문 밖 천수사(天水寺) 남쪽 시내 위로 가서 황소 등에 걸터앉아 이를 관찰하였다. 날마다 수염을 꼬며 고심하기 백 일이 다 되어 문득 다음의 한 구절만 얻었다.

 

飛割碧山腰 푸른 산허리를 날며 가르네.

 

그리고 오늘에야 고인이 이르지 못한 것을 비로소 얻었다. 뒤에 마땅히 이를 잇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뒤에 이인로(李仁老)교목의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占巢喬木頂].”를 그 앞에 얹어 짝을 맞추었다. 파한집(破閑集)에 전한다.

 

飛割碧山腰 占巢喬木頂 푸른 산허리를 날며 가르다가 교목의 꼭대기에 둥지를 트네.

 

조선 중기의 시인 신광한(申光漢)은 일찍이 낮잠을 자다가 소나기가 연꽃 화분을 지나는 소리에 잠을 깨어 문득 다음과 같은 시구를 얻었다.

 

夢凉荷瀉雨 연잎에 쏟는 빗소리에 꿈이 서늘터니.

 

그 뒤 몇 해가 지나도록 그 대구를 얻지 못하여, 율시 한 수를 이루었으나 그 행만은 빈칸으로 비워두고 반드시 절묘한 대구를 얻어 채우려 하였다. 박란(朴蘭)이 이 말을 듣고, “옷이 젖자 돌에선 구름이 이네[衣濕石生雲].”가 어떠냐고 했으나, 신광한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죽을 때까지 이 구절의 대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상의 예화들은 선인들의 시 한 구절에 대한 애착과 노력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청강시화(淸江詩話)에 전한다.

 

夢凉荷瀉雨 衣濕石生雲 연잎에 쏟는 빗소리에 꿈이 서늘터니, 옷이 젖자 돌에선 구름이 이네.

 

 

 

시에 살고 시에 죽던 권필

 

권필은 조선 중기의 시인인데, 평생 벼슬길에 몸담지 않았다. 이를 안타까이 여겨 벼슬을 권하는 벗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고서(古書) 여러 권이 있어 홀로 즐기기에 족하고, 시는 비록 졸렬하지만 마음을 풀기에 족하며, 집이 비록 가난해도 또한 막걸리를 댈 만은 하니, 매양 술잔 잡고 시를 읊조릴 때면 유연히 스스로 얻어 장차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니, 저 이러쿵저러쿵 하는 자들이 내게 있어 무엇이리요?

 

 

그는 타고난 시인 기질을 어쩌지 못해, 불의는 결코 좌시하지 못했다. 부딪치는 일마다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형국을 빚었다. 다만 시를 지을 때만은 유연히 늙음이 장차 이르는 것조차 까맣게 몰랐으니, 그는 삶의 의미를 시 속에서 찾았던 생래의 시인이었다.

 

희제(戱題)라는 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詩能遣悶時拈筆 시는 고민 걷어가 때로 붓을 잡았고
酒爲澆胸屢擧觥 술은 가슴 적셔줘 자주 잔을 들었지.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지으며 타는 가슴 속의 번민을 토로했던 자신의 삶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뒷날 그는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풍자한 궁유시(宮柳詩)라는 시 한 수 때문에 왕의 노여움을 입어, 곤장을 맞고 귀양길에 올랐다가 장독(杖毒)을 추스리지 못해, 한창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야말로 시에 살고 시에 죽었던 시인이다.

 

 

 

좋은 시구를 얻어 기쁜 나머지

 

당나라 때 주박(周樸)이란 이는 경물과 만나면 괴로이 시구를 찾으며 읊조렸다. 산에서 해가 지는데 돌아오기를 잊은 적도 있었다. 만약 좋은 시구를 얻게 되면 더욱 신이 나서 즐거워했다. 한 번은 들판에서 등에 나무를 지고 오는 나무꾼을 만났는데, 그를 꽉 잡으며 소리 지르기를, “잡았다!”고 하였다. 나무꾼은 너무 놀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그만 나무를 진 채로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때 마침 순찰 돌던 나졸이 그 광경을 보고 나무꾼을 도적인 줄 알고 붙잡아 신문하였다. 주박(周樸)이 급히 달려와 말하기를, “내가 저 나무꾼을 보자마자 갑작스레 기막힌 영감이 떠올라 좋은 시구를 얻었소.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를 붙잡았던 것이오.”라 하고는, 지은 시를 읊조렸으니 다음과 같다.

 

子孫何處閑爲客 자손들은 어디메서 한가롭길래
松柏被人代着薪 솔잣나무 대신해서 땔감 되었나.

 

이 이야기가 우무(尤袤)전당시화(全唐詩話)에 보인다.

 

 

 

백옥루를 완공하러 떠난 이하

 

당나라의 천재 시인 이하(李賀)는 매일 아침 파리한 나귀를 타고 집을 나서는데, 나귀 등에는 낡아 해진 비단 주머니가 하나 매달려 있었다. 길을 가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메모하여 주머니 속에 넣곤 하였다.

 

저물어 돌아오면, 그 어머니가 계집종을 시켜 주머니를 꺼내보게 하였다. 써 놓은 것이 많으면 문득 말하기를, “이 얘가 심장을 다 토해내어야만 그만 두겠구나.”하며 한숨 쉬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이하(李賀)는 그 메모지를 가져다가 먹을 정성스레 갈아 원고지에 또박또박 써서는 다른 주머니 속에 보관하였다. 술에 크게 취하거나 초상이 있는 날이 아니면 언제나 이같이 했고, 이미 지난 원고는 다시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렇듯 작시(作詩)에 지나치게 골몰한 나머지 건강을 해친 그는 27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죽기 전에 한 비단 옷 입은 사람이 나무 판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그에게 말하기를, “옥황상제께서 백옥루가 완공되어 그대를 불러 상량문을 짓게 하고자 하신다.”하였는데, 과연 얼마 뒤에 죽었다. 이 뒤로 세상에서 아까운 인재가 요절하면, 천상에 또 백옥루가 완공된 모양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시에 대한 집착이 낳은 비극

 

당나라 때 유희이(劉希夷)가 일찍이 백두음(白頭吟)을 지었는데, 그 한 연은 다음과 같다.

 

今年花落顔色改 올해 꽃 지자 낯빛도 시어지니
明年花開復誰在 내년 꽃 피면 다시 누가 있으리오.

 

짓고 나서 생각하니, 시의 내용이 매우 불길한지라 이를 지워버리고 다시 읊조렸다.

 

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해마다 꽃은 비슷하건만
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같질 않네.

 

그래도 시상(詩想)이 역시 펴지질 않자, “사생(死生)은 운수가 있는 것이다. 어찌 이까짓 빈 소리에 연연하랴!”하고는 앞서 지웠던 것까지 모두 남겨 두었다.

 

그의 장인 송지문(宋之問)이 사위가 지은 위 구절을 너무 아낀 나머지, 자기에게 줄 것을 간절히 청하였다. 유희이(劉希夷)는 장인에게 짐짓 그러마고는 했으나 끝내 주지는 않았다. 이에 자기를 속였다 하여 격분한 송지문은 하인을 시켜 흙주머니로 눌러 사위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의 나이 서른도 못 된 때의 일이다. 시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낳은 패륜의 살인극이다. 당재자전(唐才子傳)에 전한다. 사실 여부야 차치하고라도, 과연 시에 대한 이같은 집착과 애착이 있고서야 진정으로 시를 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창작의 고통

 

주흥사(周興嗣)가 하루 저녁 사이에 천자문(千字文)을 만들어 올렸는데 수염과 머리털이 다 세어 버렸다. 돌아와서는 두 눈을 한꺼번에 실명하고, 죽을 때에는 마음이 단전(丹田)을 떠난 것 같았다 한다. 사령운(謝靈運)은 반일 동안에 시 백 편을 짓고서 갑자기 이가 열두 개나 빠졌으며, 맹호연(孟浩然)은 눈썹이 모두 떨어졌다고도 한다. 위상(魏裳)초사(楚史)76권을 저술하고는 심혈이 모두 닳아서 죽고 말았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실려 있다. 창작한다는 것은 이같이 피를 말리는 일이다.

 

이정(李禎), 의송망안도(倚松望雁圖), 17세기, 19.1X23.5cm, 국립중앙박물관.

지팡이 든 노인이 소나무 등걸에 기대 북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고 있다. 끝이 갈리진 몽당붓으로 썩썩 몇 번 붓질만 더해 아득한 의경을 만들어냈다.

 

 

 

인용

목차

1. 예술(藝術)과 광기(狂氣)

2.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3.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4.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5.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技癢)

6. 개미와 이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