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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 시안론: 일자사 이야기 - 5. 시안과 티눈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시안론: 일자사 이야기 - 5. 시안과 티눈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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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시안(詩眼)과 티눈

 

 

시안(詩眼)과 일자사(一字師) 이야기는 고인(古人)이 한편 시를 창작함에 있어 한 글자가 바뀌면서 발생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까지 십분 고려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언어 형식을 묘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술성의 추구일 뿐, 문자의 유희와는 구분된다. 문자의 유희와 시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이수광(李晬光)대체로 글을 일러 조화라고 말한다.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문장은 반드시 예술적이지만 손끝으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예술적이지 못하다고 한 것은 까닭이 있는 말이다.

 

최자(崔滋)보한집(補閑集)에서 다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를 탁련(琢鍊)함은 두보(杜甫)와 같이 한다면 묘하기는 묘하다. 그러나 저 솜씨가 생경한 자는 조탁하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졸렬하고 껄끄럽기가 더 심하여져 공연히 애만 태울 뿐이니, 어찌 각기 타고난 재주에 따라 자연 그대로를 토해내어 갈고 깎은 흔적이 없는 것만 같겠는가?

凡詩琢鍊如工部, 妙則妙矣, 彼手生者, 欲琢彌苦, 而拙澀愈甚, 虛雕肝賢而已; 豈若各隨才局, 吐出天然, 無礱錯之痕?

 

 

앞서 시안(詩眼)의 위치를 말했지만, 시안(詩眼)은 꼭 한 글자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 유희재(劉熙載)시개(詩槪)에서 자구(字句)의 단련은 활처(活處)의 단련이라야지 사처(死處)의 단련은 의미 없다고 보고, 활처(活處)를 포착하는 관건은 시안(詩眼)을 찾아내는데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시안(詩眼)에는 시집 전체의 눈도 있고, 한편의 눈도 있으며, 몇 구절의 눈도 있고, 한 구절의 눈도 있다. 몇 구절로 시안(詩眼)을 삼는 경우도 있고, 한 구절로 시안(詩眼)을 삼는 경우도 있으며, 한두 글자로 시안(詩眼)을 삼는 경우도 있다

 

 

아예 시안(詩眼)의 의미 범주를 확장시켜 놓았다. 자칫 시안론(詩眼論)은 시인으로 하여금 수사적 기교에 탐닉케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므로 유희재(劉熙載)의 위 지적은 시안(詩眼)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통쾌함이 있다.

 

또 청()의 오대수(吳大受)시벌(詩筏)에서, “지금 사람은 시를 논하면서 다만 한 두 글자에 천착하여 이를 가리켜 옛 사람의 시안(詩眼)이라 하니, 이것은 사안(死眼)이지 활안(活眼)은 아니다라 하여 시에 있어 정채가 서려 얽힌 영롱한 지점을 찾을 때라야 만이 살아있는 눈, 즉 활안(活眼)을 포착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작 시안(詩眼)이 없다고 해서 하등의 시라 말할 수도 없다. ()의 호응린(胡應麟)시수(詩藪)에서 시()에 시안(詩眼)이 있는 것은 돌에 티눈이 있는 것과 같다는 이른바 티눈론을 주장하였다.

 

 

성당시(盛唐詩)의 구법(句法)은 혼함(渾涵)하여 마치 양한(兩漢)의 시와 같아 한 글자에서 구할 수 없다. 두보(杜甫) 이후부터 시구 가운데 기이한 글자가 있으면 시안(詩眼)으로 삼았는데, 이러한 구법(句法)이 있고 나서 혼함(渾涵)함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옛 사람은 돌에 티눈이 박혀 있으면 벼루의 한 흠으로 여겼다. 나는 또한 말한다. 시구 가운데 눈이 있으면 시의 한 흠집이 된다.

 

 

그는 계속해서 두보(杜甫)효망(曉望)56구는 다음과 같다.

 

地坼江帆隱 天淸木葉聞 땅은 갈라져서 강 배를 감추었고 하늘이 맑게 개니 잎 지는 소리 들려오네.

 

위 시에서는 ()’자의 시안(詩眼) 있다고 했고,

 

두보(杜甫)견흥(遣興)56구는 다음과 같다.

 

地卑荒野大 天遠暮江遲 지대가 낮고 보니 황야는 드넓고 하늘은 멀어서 저문 강은 더디도다.

 

위 시에서는 시안(詩眼) 없음만 같지 못하다고 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시가(詩家) 최고의 삼매(三昧)의 경지이니 안목 있는 자만이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시안(詩眼)을 연마함에 있어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시안(詩眼)은 시안(詩眼)을 드러나지 않게 감추는 장안(藏眼)’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 통찰(洞察)과 혜안(慧眼) 없이 그저 남의 눈을 놀래키는 수사적 기교에 탐닉하는 시인들은 귀담아 들어둘 말이다.

 

 

 

 

인용

목차

1. 한 글자를 찾아서

2. 뼈대와 힘줄

3. 한 글자의 스승

4.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

5. 시안(詩眼)과 티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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