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30.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 - 4.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30.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 - 4.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10:29
728x90
반응형

 4.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어떤 지금도 옛 것의 구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옛 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 것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그 껍질을 배우지 말고 그 정신을 배울 일이다. 당대(唐代) 고문(古文) 운동을 제창한 한유(韓愈)에게 한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글을 지을 때 무엇을 본받아야 합니까?” “마땅히 옛 성현을 본받아야지.” 그가 갸우뚱하며 다시 묻는다. “옛 성현이 지은 글이 다 남아 있지만 그 말은 모두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느 것을 본받아야 할지요?” “그 정신을 본받아야지, 그 말을 흉내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의 정신이다. 답유정부서(答劉正夫書)에 보인다. 또 그는 옛 사람의 정신을 본받되, ‘사필기출(詞必己出)’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학은 자기 만의 개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진언지무거(陳言之務去)’를 말한다. 진부한 표현에서 벗어나, 아류(亞流)의 길을 버려 새 길을 열라는 주문이다.

 

그 정신을 본받고 그 표현을 본받지는 말라니, 그럼 어찌하란 말인가? 다시 연암의 처방에 귀를 기울여 보자.

 

 

옛 사람에 독서 잘한 이가 있으니 공명선(公明宣)이 그 사람이다. 옛 사람에 글 잘 지은 이가 있으니 희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이 그 사람이다. 왜 그런가?

공명선(公明宣)은 증자(曾子)에게서 배운지 삼년이 되도록 글을 읽지 않았다. 증자가 까닭을 묻자 대답하기를, “제가 선생님께서 집에 거처하시는 것을 보았고, 손님 접대하시는 것을 보았고, 조정에 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웠지만 아직 능히 하지 못합니다. 제가 어찌 감히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문하에 있겠습니까?”

물을 등져 진을 치는 것은 병법에도 보지 못한 것이어서 여러 장수가 따르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이에 회음후가 말하기를, “이것이 병법에 있지만 진실로 그대들이 살피지 못한 것일 뿐이다. 병법에 죽을 땅에 둔 뒤에 산다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배우지 않음을 잘 배움으로 한 것은 노남자(魯男子)의 독거(獨居), 부뚜막 늘인 것을 부뚜막 줄인 것에서 본뜬 것은 우승경(虞升卿)의 지변(知變)이다.

古之人有善讀書者, 公明宣是已; 古之人有善爲文者, 淮陰侯是已, 何者?

公明宣學於曾子, 三年不讀書. 曾子問之, 對曰: “宣見夫子之居庭, 見夫子之應賓客, 見夫子之居朝廷也, 學而未能, 宣安敢不學而處夫子之門乎?”

背水置陣, 不見於法, 諸將之不服固也. 乃淮陰侯則曰: “此在兵法, 顧諸君不察, 兵法不曰: ‘置之死地而後生?”

故不學以爲善學, 魯男子之獨居也; 增竈述於减竈, 虞升卿之知變也.

 

 

그의 초정집서(楚亭集序)의 한 단락이다. 글 한 줄 안 읽은 공명선(公明宣)이야말로 스승이란 책을 옳게 읽어낸 뛰어난 독서가이다. 다른 제자들이 옛 경전에 눈이 팔려 있을 때, 그는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 그와 같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장님하고 귀머거리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장님이 이긴다. 눈에 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물에 빠져 죽으나, 칼에 찔려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인지라, 배수진을 친 한신의 군대는 죽기 살기로 조() 나라 군대에 대항하여 싸웠다. 제식훈련 한 번 제대로 받지 않은 오합지졸들을 부릴 줄 알았던 한신의 용병술은 병법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겼다. 왜 그랬을까? 통변(通變)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신이야말로 정말 멋진 문장가가 아닌가. 시도 이런 정신으로 써야 한다.

 

혼자 사는 노총각 옆집에 살던 과부가 그에게 은근히 마음이 있었다. 어느 날 밤비에 그녀 집 담장이 무너졌다. 갈 곳이 없게 된 그녀가 그에게 하룻밤 재워 주기를 청했다. 노총각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밤을 아무 일 없이 새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과부가 원망을 퍼부었다. 유하혜(柳下惠)라면 자신을 기꺼이 재워 주었을 것이라고. 노총각은 자신이 현인(賢人) 유하혜(柳下惠)의 초연한 경지에 미칠 수 없음을 잘 알았기에 일시의 원망을 들으며 자신의 몸을 깨끗이 지켰다. 때로 배우지 않고 거꾸로 하는 것이 제대로 배우는 것이 될 때가 있다. 표현은 달라도 알맹이는 같다.

 

 

동문(同門)인 위() 나라 방연(龐涓)의 책략에 말려 앉은뱅이 병신이 된 손빈(孫臏)은 제() 나라로 달아나 군사(軍師)가 되었다. 이때 위()가 한()을 치자 합종(合從)의 약속에 따라 제()가 위()를 쳐 한() 나라를 도왔다. 방연(龐涓)이 이를 듣고 한() 나라에 들어갔던 군사를 돌려 제() 나라 군대를 쫓았다. 손빈은 첫날 주둔지에 밥 짓는 아궁이 자국을 10만 개를 만들었다. 다음날에는 5만개, 그 다음 날에는 2만 개로 줄였다. 사흘을 뒤쫓던 방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위나라에 들어온 지 사흘도 못 되어 제나라 군사 5분의 4가 겁먹고 달아난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에 방심하여 기병만을 거느려 손빈을 뒤쫓은 방연은 마릉(馬陵)에서 매복해 있던 손빈의 군대에 걸려 몰살당하고 말았다.

 

후한(後漢) 때 우승경(虞升卿)이 강족(羌族)의 반란를 진압하러 갔을 때도 그는 손빈의 부뚜막 작전을 써서 이겼다. 손빈의 전법을 쓰기는 썼는데, 그대로 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했다. 첫 날의 부뚜막 숫자를 다음 날엔 배로 늘리고, 그 다음날엔 다시 배로 늘였다. 강인(羌人)은 이를 보고 후방에서 속속 지원군이 도착하고 있는 줄로 알았다. 겁을 먹고 잔뜩 위축된 그들을 우승경은 적은 군대로 대패시켰다. 옛 것을 본받아라. 그러나 그 정신을 그 원리를 본받아야지, 형식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원리란 무엇인가? 부뚜막의 숫자를 조작하여 적을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형식이란 무엇인가? 부뚜막 숫자를 늘이거나 줄이는 것이다. 손빈은 부뚜막 숫자를 줄여서 이겼지만, 우승경은 반대로 늘여 이겼다. 방법은 반대인데 이긴 것은 같다.

 

한신은 배수진(背水陣)을 쳐서 이겼는데,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신립(申砬)은 배수진을 쳐서 참패당했다.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왜병을 막고자 조정에서는 북변(北邊)의 명장 신립을 보내 문경새재에 최후의 저지선을 구축코자 하였다. 무엇이 눈에 씌었던가. 그는 난데없이 새재 방어선을 포기하고 4km를 물려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용감히 싸웠지만 일인(日人)의 조총은 유효사거리가 100보였고, 아군의 화살은 고작해야 50보였다. 군대는 몰살당하고, 신립은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임금은 황황히 밤중에 도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같은 배수진이었건만 한신은 이겼고 신립은 졌다. 왜 그랬을까? 통변(通變)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의 흉내나 내는 시는 결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다. 독자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문학사는 여기에 침을 뱉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여라. 옛 길을 따르지 말라.

 

김택영(金澤榮)은 그의 잡언(雜言)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충무공(李忠武公)이 거북선으로 일본을 깨뜨렸다는 것은 세상에서 늘상 하는 말이다. 그러나, 충무공이 일본과 백 번 싸워 백 번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적을 제압하여 이기는 계책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여 계책을 내면 낼수록 더욱 기이했던 때문이지, 어찌 거북선이 한 것이겠는가? 만약 거북선 때문에 이겼다고 한다면 일본 사람들의 정교함으로 어찌 아침에 패배하고는 저녁에 본떠 만들지 않았겠는가?

李忠武公用龜船破日本, 此世之恒言也. 然忠武公之於日本, 所以能百戰而百勝者, 乃其制勝之計策, 千變萬化, 愈出愈奇之所爲, 豈龜船之爲哉? 如果龜船之爲也, 則以日本人之精巧, 豈不朝受敗, 夕倣製乎.

 

 

과연 지당한 말이 아닌가. 원균이 이끌던 수군이 부산 앞바다에 고스란히 가라앉은 뒤에도 충무공은 거북선 한 척 없이 단 12척의 배로 승승장구 하던 일본 배 130척을 물리쳤다. 세계 해전사에 그 유례를 달리 찾을 길 없는 기적 같은 승리였다. 설사 우리 수군에게 거북선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충무공이 버티고 있는 한 왜병은 해상권을 결코 장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거북선이 아니다. 그것을 운용하는 장수의 용병술이다. 아무리 해박한 이론의 무장이 있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통변(通變)의 정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시를 쓰는데 이론은 오히려 장애가 될 때가 더 많다. 우리 해군의 승리는 결코 거북선 때문이 아니다. 해마다 충무공 호국얼을 선양한다는 단체의 주관으로 벚꽃 축제가 성대하게 벌어지는 해괴한 이 현실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것은 바다속에 묻힌 거북선이 아니라, 충무공의 그 거룩한 정신일 터이다.

 

 

 

 

인용

목차

1.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2. 거미가 줄을 치듯

3. 그때의 지금인 옛날

4. 사기의 불사기사

5. 도로 눈을 감아라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