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방연과 손빈의 악연 그리고 위나라의 쇠퇴
魏伐韓, 韓請救於齊. 齊使田忌爲將以救韓.
魏將龐涓, 嘗與孫臏同學兵法. 涓爲魏將軍, 自以所能不及, 以法斷其兩足而黥之. 齊使至魏, 竊載以歸.
至是臏爲齊軍師, 直走魏都, 涓去韓而歸.
臏使齊軍入魏地者爲十萬竈, 明日爲五萬竈, 又明日爲二萬竈. 涓大喜曰: “我固知齊軍怯. 入吾地三日, 士卒亡者過半矣.”
乃倍日幷行逐之. 臏度其行, 暮當至馬陵. 道狹而旁多阻, 可伏兵. 乃斫大樹, 白而書曰:‘龐涓死此樹下.’ 令齊師善射者, 萬弩夾道而伏, 期暮見火擧而發.
涓果夜至斫木下, 見白書, 以火燭之, 萬弩俱發, 魏師大亂相失. 涓自剄曰: “遂成豎子之名.” 齊大斫魏師, 虜太子申.
해석
魏伐韓, 韓請救於齊.
조나라가 한나라를 정벌하려 하니, 한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齊使田忌爲將以救韓.
그러자 제나라는 전기(田忌)를 총지휘관으로 임명하여 한나라를 구원하도록 하였다.
魏將龐涓, 嘗與孫臏同學兵法.
위나라 장수 방연은 일찍이 손빈과 함께 병법을 배운 사이다.
涓爲魏將軍, 自以所能不及,
방연은 위나라 장군이 되어, 자기가 (손빈의 능력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
以法斷其兩足而黥之.
법에 따라 (손빈의) 양 발꿈치를 잘라내고 그의 얼굴엔 범죄자란 표식을 새겼다.
齊使至魏, 竊載以歸.
제나라 사신이 위나라에 도착했을 때, 몰래 (손빈을 수레에) 태우고 돌아갔다.
至是臏爲齊軍師, 直走魏都,
이때에 이르러 손빈은 제나라의 군사가 되어 곧바로 위나라 도읍으로 쳐들어갔으니,
涓去韓而歸.
방연은 한나라를 공격하던 걸 그만두고 되돌아와야 했다.
臏使齊軍入魏地者爲十萬竈,
손빈은 제나라 군사로 위나라에 들어간 사람에게 10만의 부뚜막을 만들고,
明日爲五萬竈, 又明日爲二萬竈.
그 다음날은 5만의 부뚜막을 만들고, 그 다다음날은 2만의 부뚜막을 만들도록 했다.
涓大喜曰:
이에 방연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我固知齊軍怯.
“나는 원래부터 제나라 군사들이 겁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入吾地三日, 士卒亡者過半矣.”
우리 땅에 들어온 지 3일 만에 병사 중에 도망친 놈들이 과반이라니. 쯧~”
乃倍日幷行逐之.
이에 이틀 걸을 양을 하루에 걸으며 쫓았다.
臏度其行, 暮當至馬陵.
손빈은 위나라 군사들의 걸음을 헤아려, 저녁이면 마땅히 마릉에 이를 거라 생각했다.
道狹而旁多阻, 可伏兵. 乃斫大樹,
마릉은 길이 좁고 곁이 매우 험해 병사를 매복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白而書曰:‘龐涓死此樹下.’
그래서 큰 나무를 쪼개 흰 부분에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는다【이것은 너무나 유명한 병가의 일화지만 실로 그것은 방연의 죽음일 뿐 아니라, 위나라의 몰락이자, 양혜왕 개인의 패업과 카리스마가 사라지는 역사적 에포크(신기원)를 의미했다. -김용옥 『맹자, 사람의 길』 1권, 93쪽】’라고 썼다.
令齊師善射者, 萬弩夾道而伏,
(그리고) 제나라의 군사 중 활을 잘 쏘는 사람에게 만노(萬弩)를 길에서 끼고 숨었다가
期暮見火擧而發.
밤을 기다려 횃불이 켜지는 걸 보면 쏘라고 했다.
涓果夜至斫木下, 見白書, 以火燭之,
방연은 과연 밤에 쪼개진 나무 아래에 도착했고, 백서를 보기 위해 횃불을 켜니,
萬弩俱發, 魏師大亂相失.
만노가 일제히 발사되어 위나라 군대는 큰 혼란에 빠져 자중지란이 되었다.
涓自剄曰: “遂成豎子之名.”
방연은 스스로를 베며 “마침내 애송이의 이름이 완성되었구나”라고 말했다.
齊大斫魏師, 虜太子申.
제나라는 위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고, 위나라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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