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거미가 줄을 치듯
22일, 국옹(麯翁)과 함께 걸어 담헌(湛軒)에게 갔다. 풍무風舞도 밤에 왔다. 담헌(湛軒)이 슬(瑟)을 타자, 풍무(風舞)는 금(琴)으로 화답하고, 국옹(麯翁)은 갓을 벗고 노래한다. 밤 깊어 구름이 사방에서 몰려들자 더운 기운이 잠시 가시고, 현(絃)의 소리가 더욱 맑아진다. 좌우에 있는 사람은 모두 고요히 묵묵하다. 마치 내단(內丹) 수련 하는 이가 내관장신(內觀臟神)하는 것 같고, 입정에 든 스님이 돈오전생(頓悟前生)하는 듯하다. 대저 스스로 돌아보아 곧으매 삼군(三軍)이 막아선다 해도 반드시 나아갈 기세다. 국옹(麯翁)이 노래할 때를 보면 해의방박(解衣磅礴), 옷을 죄 벗어붙이고 곁에 사람이 없는 듯 방약무인하다. 매탕(梅宕)이 한 번은 처마 사이서 늙은 거미가 거미줄 치는 것을 보다가 기뻐 내게 말하였다.
“묘하구나! 느릿느릿 의심하듯 할 때는 생각에 잠긴 것만 같고, 잽싸게 낚아채듯 할 때는 득의함이 있는 듯하다. 발뒤꿈치로 질끈 밟아 보리 모종하는 것도 같고, 거문고 줄을 고르는 손가락 같기도 하구나.”
이제 담헌(湛軒)과 풍무(風舞)가 서로 화답함을 보며 나도 늙은 거미의 줄 치던 느낌을 얻게 되었다. 지난 해 여름, 내가 담헌에게 갔더니 담헌은 마침 악사(樂師) 연(延)과 더불어 거문고를 논하고 있었다. 그때 하늘은 비를 잔뜩 머금어, 동녘 하늘가엔 구름장이 먹빛이었다. 우레가 한 번 치기만 하면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잠시 후 긴 우레가 하늘로 지나갔다. 담헌이 연(延)에게 말하였다.
“이 우레 소리는 무슨 소리에 속할까?”
그리고는 마침내 거문고를 당겨 소리를 맞춰보는 것이었다. 나도 「천뢰조(天雷操)」를 지었다.
二十二日, 與麯翁步至湛軒. 風舞夜至. 湛軒爲瑟, 風舞琴而和之, 麯翁不冠而歌. 夜深, 流雲四綴, 暑氣乍退, 絃聲益淸. 左右靜黙, 如丹家之內觀臟神, 定僧之頓悟前生. 夫自反而直, 三軍必往. 麯翁當其歌時, 解衣磅礴, 旁若無人者. 梅宕嘗見簷間, 老蛛布網, 喜而謂余曰:
“妙哉! 有時遲疑, 若其思也; 有時揮霍, 若有得也; 如蒔麥之踵, 如按琴之指.”
今湛軒與風舞相和也, 吾得老蛛之解矣. 去年夏, 余嘗至湛軒, 湛軒方與師延論琴. 時天欲雨, 東方天際, 雲色如墨. 一雷則可以龍矣. 旣而長雷去天, 湛軒謂延曰: “此屬何聲?” 遂援琴而諧之. 余遂作天雷操. 『燕巖集』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하야연기(夏夜讌記)」라는 소품 산문이다. 삽화를 곁들여 한 여름 밤의 광경을 꿈결같이 소묘하였다. 거문고에 가야금이 어우러지고, 웃통을 벗어 제친 목청이 가세한다. 막아서는 삼군(三軍) 앞에 일기단창(一騎單槍)으로 돌격할 듯한 호탕한 기세다. 곁에 앉은 사람에게선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수련 삼매에 든 내단가(內丹家) 같고, 입정에 든 스님 같다. 거미줄 위를 미끄러지듯 가볍게 움직이는 거미의 동작을 보고 현 위로 미끄러지는 연주자의 손가락을 떠올리는 매탕(梅宕)의 관찰은 얼마나 참신한가. 먹이를 기다리느라 잔뜩 움츠리고 있는 모양에서 보리 모종을 하고 뒤꿈치로 지그시 돌려 밟는 모습을 떠올리는 연상은 얼마나 미학적인가. 먹장구름을 뚫고 떨어진 우레 소리를 거문고의 음계로 맞춰내자 시인은 그 곁에서 이를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천지자연의 조화가 음악과 하나로 만나고, 유동하는 천기(天機) 속에 시가 한데 어우러졌다.
또 말거간꾼의 이야기를 적은 「마장전(馬駔傳)」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아침에 쪽박을 두드리며 동냥을 다니다가 포목전엘 들어가지 않았겠나. 마침 다락에 올라와 베를 사려는 자가 있더군. 베를 골라 혀로 핥아도 보고 허공에 비춰 살펴보더니, 값은 말하지 않고 먼저 값을 불러보라고 주인에게 말하는 게야. 그러더니 둘 다 베 팔 일은 까맣게 잊은 듯이, 주인은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저기 구름이 피어나는 것 좀 보라고 하고, 살 사람은 뒷짐 지고 서성대면서 벽 위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지 뭔가.
吾朝日鼓瓢行丐, 入于布廛. 有登樓而貿布者. 擇布而舐之, 暎空而視之, 價則在口, 讓其先呼. 旣而兩相忘布, 布人忽然望遠山, 謠其出雲, 其人負手逍遙, 壁上觀畵.
물건 값을 놓고 흥정하는 장사치들의 노회한 심리전을 묘사한 대목인데, 내 보기에 이것은 시를 쓰고 읽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미묘한 법문으로만 여겨진다.
독서를 정밀하고 부지런히 하기로는 포희씨(庖犧氏) 만한 이가 없다. 그 정신과 의태(意態)는 천지만물을 포괄 망라하고 만물에 흩어져 있으니, 이것은 다만 글자로 쓰이지 않고 글로 되지 않은 글일 뿐이다. 후세에 독서를 부지런히 한다고 하는 자들은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마른 먹과 썩어 문드러진 종이 사이에 눈을 부비며 그 좀 오줌과 쥐똥을 엮어 토론하니, 이는 이른바 술지게미와 묽은 술을 배불리 먹고 취해 죽겠다는 꼴이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저 허공 속을 울며 나는 것은 얼마나 생의(生意)로운가? 그런데 이를 적막하게 ‘조(鳥)’란 한 글자로 말살시켜 버리니, 빛깔도 볼 수 없고 그 모습과 소리도 찾을 수 없다. 이 어찌 마을 제사에 나아가는 시골 늙은이의 지팡이 위에 새겨진 새와 다르랴! 어떤 이는 그것이 너무 평범하니 가볍고 맑게 바꾼다 하여 ‘금(禽)’자로 고친다. 이것은 책 읽고 글 짓는 자의 잘못이다.
讀書精勤, 孰與庖犧? 其神精意態, 佈羅六合, 散在萬物, 是特不字不書之文耳. 後世號勤讀書者, 以麁心淺識. 蒿目於枯墨爛楮之間, 討掇其蟫溺鼠渤. 是所謂哺糟醨而醉欲死. 豈不哀哉! 彼空裡飛鳴, 何等生意? 而寂寞以一‘鳥’字, 抹摋沒郤彩色, 遺落容聲. 奚异乎赴社邨翁杖頭之物耶? 或復嫌其道常, 思變輕淸, 換箇禽字, 此讀書作文者之過也.
「답경지(答京之) 2」의 한 대목이다. 포희씨는 처음으로 팔괘를 만들었다는 전설의 인물이다. 이 팔괘로 우주 삼라만상의 운행을 읽고, 인간의 요수길흉(夭壽吉凶)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으니, 포희씨의 팔괘는 천지만물이라는 책을 근사하게 읽어낸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주역(周易)』 팔괘의 정신은 문자로 고정되지 않고 오늘까지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오늘날의 독서는 어떠한가. 천박한 식견으로 이미 용도폐기된 낡은 지식을 금과옥조인양 떠받든다. 저 혼자 보기 아깝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한다. 취해 죽으려면 독주를 들이켜야지, 왜 술지게미만 배 터지게 먹는가? 세계와 가슴으로 만나려거든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 일이지 왜 좀 먹고 쥐 오줌에 지린 옛 책에 코를 박고 있는가? 왜 푸드득거리며 날아가는 새를 시골 노인의 지팡이 위 조각품으로 만들어 버리는가? ‘조(鳥)’가 진부하니 ‘금(禽)’으로 바꾼다 하여, 지팡이 위 새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갈 이치가 있는가? 우리의 지식이란 이렇듯 살아있는 사물, 가슴 뛰고 피 흐르는 우주를 사변의 틀 속에, 언어의 무덤 속에 가두어 죽이는 것은 아니었던가?
인용
2. 거미가 줄을 치듯
3. 그때의 지금인 옛날
4. 사기의 불사기사
5. 도로 눈을 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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