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만을 추구하는 제가에게 법고를 권하다
초정집서(楚亭集序)
박지원(朴趾源)
글은 옛 것을 본떠야 써야 하나? 새로운 것을 써야 하나?
爲文章如之何? 論者曰: ‘必法古.’ 世遂有儗摹倣像而不之耻者. 是王莽之周官, 足以制禮樂; 陽貨之貌類, 可爲萬世師耳. 法古寧可爲也.
然則刱新可乎? 世遂有恠誕淫僻而不知懼者. 是三丈之木, 賢於關石; 而延年之聲, 可登淸廟矣. 刱新寧可爲也. 夫然則如之何其可也? 吾將奈何無其已乎?
글은 옛 것에서 새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噫! 法古者, 病泥跡; 刱新者, 患不經. 苟能法古而知變, 刱新而能典, 今之文, 猶古之文也. 古之人有善讀書者, 公明宣是已; 古之人有善爲文者, 淮陰侯是已, 何者? 公明宣學於曾子, 三年不讀書. 曾子問之, 對曰: “宣見夫子之居庭, 見夫子之應賓客, 見夫子之居朝廷也, 學而未能, 宣安敢不學而處夫子之門乎?” 背水置陣, 不見於法, 諸將之不服固也. 乃淮陰侯則曰: “此在兵法, 顧諸君不察, 兵法不曰: ‘置之死地而後生’乎?” 故不學以爲善學, 魯男子之獨居也; 增竈述於减竈, 虞升卿之知變也.
옛 글 속에서 새로운 글이 나온다
由是觀之, 天地雖久, 不斷生生; 日月雖久, 光輝日新; 載籍雖博, 旨意各殊. 故飛潛走躍, 或未著名; 山川草木, 必有秘靈. 朽壤蒸芝, 腐草化螢. 禮有訟, 樂有議. 書不盡言, 圖不盡意. 仁者見之謂之仁, 智者見之謂之智. 故俟百世聖人而不惑者, 前聖志也; 舜禹復起, 不易吾言者, 後賢述也. 禹ㆍ稷ㆍ顔回其揆一也. 隘與不恭, 君子不由也.
제가야 옛 글을 더욱 더 배워 글로 녹여내렴
朴氏子齊雲年二十三, 能文章, 號曰楚亭, 從余學有年矣. 其爲文慕先秦, 兩漢之作, 而不泥於跡. 然陳言之務祛則或失于無稽, 立論之過高則或近乎不經. 此有明諸家於法古刱新, 互相訾謷而俱不得其正, 同之並墮于季世之瑣屑, 無裨乎翼道而徒歸于病俗而傷化也, 吾是之懼焉. 與其刱新而巧也, 無寧法古而陋也.
吾今讀其『楚亭集』, 而並論公明宣ㆍ魯男子之篤學, 以見夫淮陰ㆍ虞詡之出奇, 無不學古之法而善變者也. 夜與楚亭言如此, 遂書其卷首而勉之. 『燕巖集』 卷之一
▲ 공자는 양호와 비슷하게 생겼단 이유로 오해를 받아 광땅에서 포위 당했다.
해석
글은 옛 것을 본떠야 써야 하나? 새로운 것을 써야 하나?
爲文章如之何?
문장을 지을 적엔 어찌해야 하는가?
論者曰: ‘必法古.’
의론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옛 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世遂有儗摹倣像而不之耻者.
그래서 세상이 마침내 틀을 본뜨고, 형상을 따라하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是王莽之周官, 足以制禮樂;
이것은 왕망이 주나라의 제도를 본떠서 만든 제도【왕망(王莽)은 전한(前漢)의 평제 때 재상을 지냈던 인물로, 훗날 평제를 시해하고 평제의 아들을 황제로 세운 뒤 섭정을 하다가 결국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여 국호를 ‘신(新)’으로 바꾸었다. 왕망은 고대의 이상적인 국가를 재현한다는 명목 아래 『주관(周官)』이라는 책에 의거해 신나라의 관제(官制)를 제정하였다. 하지만 신나라는 허울만 그러할 뿐 그 내부 모순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주관(周官)』은 『주례(周禮)』라고도 불리는데, 천(天)ㆍ지(地)ㆍ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의 여섯 부문으로 나눠 관제를 편성하고 관직 이름을 정해 놓은 책이다. 주나라의 주공(周公)이 저술한 책이라고 전하나 근대의 학자들은 후대 유학자의 저작으로 본다. 왕망은 재위 15년 만에 살해되고 광무제(光武帝)가 다시 한(漢)나라를 중흥하게 된다. 이것이 곧 후한(後漢)이다. -『연암을 읽는다』, 323~324쪽】가 예약으로 제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고,
陽貨之貌類, 可爲萬世師耳.
양화의 생김새가 공자와 비슷하다하여 만세의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고 하는 것일 뿐이다.
法古寧可爲也.
그러니 옛 것을 본받는 것을 어찌 할 만하랴.
然則刱新可乎?
그러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괜찮을까?
世遂有恠誕淫僻而不知懼者.
세상이 괴이하고 허탄하며 음탕하고 치우쳐 있는 데도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是三丈之木,
이것은 상앙이 법을 지키도록 만들기 위해 삼장의 나무를 옮기게 한 변법이
賢於關石;
관석에 새겨진 헌법보다 낫다고 하는 것이고,
而延年之聲, 可登淸廟矣.
최신 가요인 이연년【한나라 때 노래를 잘 불러 황제의 총애를 받았음】의 소리가 듣기 좋다하여 청나라 제례악으로 등극시키자는 꼴이다.
刱新寧可爲也.
그러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어찌 할 만하랴.
夫然則如之何其可也?
그러하다면 어떻게 해야 괜찮을까?
吾將奈何無其已乎?
나는 장차 어찌하여도 그만 둘 수 없는 걸까?
▲ 상앙은 진나라를 법치국가로 만들기 위해 나무를 옮기는 자에게 상을 준다는 법을 만들고 실행하게 했다.
글은 옛 것에서 새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噫! 法古者, 病泥跡;
아! 옛 것을 본받은 것은 옛 것을 무작정 따름이 문제가 되고,
刱新者, 患不經.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근거할 게 없는 게 문제가 된다.
苟能法古而知變, 刱新而能典,
그렇기 때문에 옛 것을 본받되 변화시킬 줄 알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되 전고로 삼을 게 있다면
今之文, 猶古之文也.
지금의 글은 옛날의 글과 같은 것이다.
古之人有善讀書者, 公明宣是已;
옛 사람으로 잘 글을 읽은 사람은 공명선이 바로 이 사람이다.
古之人有善爲文者, 淮陰侯是已, 何者?
옛 사람으로 잘 글을 지은 사람은 회음후가 바로 이 사람이다. 어째서인가?
公明宣學於曾子, 三年不讀書.
공명선이 증자께 배웠는데, 3년 동안 책을 읽질 않았다.
曾子問之, 對曰: “宣見夫子之居庭,
그러자 증자께서 물으니, 공명선이 대답했다. “제가 부자께서 정원에 있는 모습을 보았고,
見夫子之應賓客, 見夫子之居朝廷也,
부자께서 손님을 응대하는 것을 보았으며, 부자께서 조정에서 활동하시는 것을 보았으니,
學而未能, 宣安敢不學而處夫子之門乎?”
배워 잘 실천하질 못했던 것이지, 제가 어찌 감히 배우지 않고 부자의 문하에 있었겠습니까?”
背水置陣, 不見於法, 諸將之不服固也.
강물을 등지고 진을 치는 것이 병법에 보이지 않으니 여러 장수들이 복종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乃淮陰侯則曰: “此在兵法, 顧諸君不察,
회음후가 말했다. “이것은 병법에 있으나, 제군들이 돌이켜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니,
兵法不曰: ‘置之死地而後生’乎?”
병법서에서 ‘사지에 몰린 다음에야 산다’고 하지 않던가?”
故不學以爲善學,
그렇기 때문에 배우지 않음으로 잘 배웠다고 하는 것은
노남자가 유하혜와는 달리 이웃에서 찾아온 여자를 집에 들이지 않고 혼자 잠을 잔 것【『시경』 「小雅」에 나온다. 밤중에 이웃에 홀로 사는 과부가 비에 집이 무너지자 찾아와 재워주길 원했다. 그런데 재워주지 않자, 유하혜는 이런 경우에 재워줬는데 왜 안 되냐고 화를 내자, 유하혜는 이미 학문이 높은 군자로 평판이 났기에 그런 상황에도 문제가 될 게 없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기에 하지 않음으로 절개를 지키겠다는 얘기다】이 이것이고,
增竈述於减竈,
부뚜막을 후퇴할수록 줄여 방연을 죽인 손빈의 전략에서 부뚜막을 늘리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후퇴한 전략을 구사한 것은
虞升卿之知變也.
우승경의 변화할 줄을 안다는 것【우승경(虞升卿)은 후한(後漢) 안제(安帝, 재위 107~125) 때 여러 차례 무공을 세운 우후(虞詡)의 자다. 우후의 군대가 무도(武都, 감숙성의 현縣 이름)를 침입한 강족(羌族, 중국 서쪽의 감숙성 일대에 살던 종족)에게 쫓기게 되었을 때 우후는 군사들이 밥을 해 먹은 아궁이 수를 실제보다 더 많이 만든 다음 이동함으로써 구원병이 이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속임수 전술을 구사한 적이 있다. 이 고사는 『후한서』 「우부개장 열전(虞傅蓋臧列傳)」에 보인다. 이는 전국시대의 손빈(孫臏)이 병력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도록 아궁이 수를 줄이며 이동하여 적을 방심하게 만든 뒤 대승을 거둔 전술을 역이용한 것이다】이 이것이다.
▲ 방연에게 부뚜막을 줄여가는 전략으로 마릉에서 화려하게 복수를 했던 손빈.
옛 글 속에서 새로운 글이 나온다
由是觀之, 天地雖久, 不斷生生;
이로 말미암아 그것을 보면 천지가 비록 오래되었지만 새로이 탄생함에 빈틈이 없으며,
日月雖久, 光輝日新;
해와 달리 비록 낡았지만 빛은 날마다 새롭고,
載籍雖博, 旨意各殊.
문서가 비록 방대하지만 책의 뜻은 각기 다름이 있다.
故飛潛走躍, 或未著名;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날고 물에 잠기며 달리고 뛰는 것 중에 혹은 드러나지 않은 이름이 있으며,
山川草木, 必有秘靈.
산천초목에 반드시 신비로운 영물이 있다.
朽壤蒸芝, 腐草化螢.
그리고 썩은 흙에서 지초가 솟아나고, 썩은 풀에서 반딧불이가 태어난다.
禮有訟, 樂有議.
예는 오래도록 지켜왔음에도 송사가 있고, 음악은 긴 시간동안 누려왔음에도 의론이 있다.
書不盡言, 圖不盡意.
글로는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림으로는 뜻을 다하지 못한다.
仁者見之謂之仁, 智者見之謂之智.
그래서 인자가 그것을 보면 ‘인(仁)’이라 말하고, 지자가 그것을 보면 ‘지(智)’라고 말한다.
故俟百世聖人而不惑者, 前聖志也;
그래서 100대 이후의 성인을 기다려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은 앞선 성인인 자사의 말이고,
舜禹復起, 不易吾言者, 後賢述也.
순임금과 우임금이 다시 살아나셔도 나의 말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은 뒤에 난 성인인 맹자의 말이다.
우임금과 후직과 안회는 처지가 달랐지만, 서로의 생각은 같았다.
隘與不恭, 君子不由也.
옛 것을 익히되 생각이 협소해진 것과 새 것을 쓰되 공손치 않은 것은 군자가 하지 않는다.
제가야 옛 글을 더욱 더 배워 글로 녹여내렴
朴氏子齊雲年二十三, 能文章,
박씨의 아들인 제운은 23살로 문장을 잘하여
號曰楚亭, 從余學有年矣.
‘초정’이라 호를 지었고 나를 따라 배운 지 여러 해가 되었다.
其爲文慕先秦, 兩漢之作,
문장을 지을 때 선진과 양한을 사모하나
而不泥於跡.
옛 글의 자취만을 답습하지 않았다.
然陳言之務祛則或失于無稽,
그러나 진부한 말을 힘써 제거하다보면 간혹 상고할 게 없는 데에서 잃고
立論之過高則或近乎不經.
논의를 세울 때에 과하게 높아져 간혹 근거함이 없음에 가까워진다.
此有明諸家於法古刱新,
이것은 명나라의 옛 것을 본받고 새로운 것을 짓는 여러 작가들이
互相訾謷而俱不得其正, 同之並墮于季世之瑣屑,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으며 서로 바름을 얻지 못해 함께 말세의 자질구레함에 빠져,
無裨乎翼道而徒歸于病俗而傷化也,
도를 드날림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풍속을 병들게 하고 교화를 상하게 하는 곳으로 돌아가니,
吾是之懼焉.
나는 이게 두려운 것이다.
與其刱新而巧也, 無寧法古而陋也.
그래서 새로운 것을 지어 공교로워지기보단 차라리 옛 것을 본받아 비루해지리라.
吾今讀其『楚亭集』, 而並論公明宣ㆍ魯男子之篤學,
나는 지금 『초정집』을 읽으며 아울러 공명선과 노남자의 도타운 배움을 이야기함으로
以見夫淮陰ㆍ虞詡之出奇,
회음후와 우허의 특출한 기이함을 보인 이유는
無不學古之法而善變者也.
옛 법을 배워 잘 변하지 않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夜與楚亭言如此,
밤에 초정과 이와 같은 말을 했고
遂書其卷首而勉之. 『燕巖集』 卷之一
마침내 이 책의 첫머리에 글을 써서 그를 권면하노라.
▲ 연암과 초정은 13살 차이가 나지만 지기처럼 지냈다. 그런데 너무 과한 주장을 하는 게 걸렸나 보다. 하긴 중국어를 공용어로 쓰잔 말도 했으니.
인용
2. 새 것을 만든다는 건 기이한 걸 만드는 게 아니다
3.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하라
8. 연암은 고문가일까?
9.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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