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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通變論) - 7.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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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通變論) - 7.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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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동문(同門)인 위() 나라 방연(龐涓)의 책략에 말려 앉은뱅이 병신이 된 손빈(孫臏)은 제() 나라로 달아나 군사(軍師)가 되었다. 이때 위()가 한()을 치자 합종(合從)의 약속에 따라 제()가 위()를 쳐 한() 나라를 도왔다. 방연(龐涓)이 이를 듣고 한() 나라에 들어갔던 군사를 돌려 제() 나라 군대를 쫓았다. 손빈은 첫날 주둔지에 밥 짓는 아궁이 자국을 10만 개를 만들었다. 다음날에는 5만개, 그 다음 날에는 2만 개로 줄였다. 사흘을 뒤쫓던 방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위나라에 들어온 지 사흘도 못 되어 제나라 군사 5분의 4가 겁먹고 달아난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에 방심하여 기병만을 거느려 손빈을 뒤쫓은 방연은 마릉(馬陵)에서 매복해 있던 손빈의 군대에 걸려 몰살당하고 말았다.

 

후한(後漢) 때 우승경(虞升卿)이 강족(羌族)의 반란를 진압하러 갔을 때도 그는 손빈의 부뚜막 작전을 써서 이겼다. 손빈의 전법을 쓰기는 썼는데, 그대로 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했다. 첫 날의 부뚜막 숫자를 다음 날엔 배로 늘리고, 그 다음날엔 다시 배로 늘였다. 강인(羌人)은 이를 보고 후방에서 속속 지원군이 도착하고 있는 줄로 알았다. 겁을 먹고 잔뜩 위축된 그들을 우승경은 적은 군대로 대패시켰다. 옛 것을 본받아라. 그러나 그 정신을 그 원리를 본받아야지, 형식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원리란 무엇인가? 부뚜막의 숫자를 조작하여 적을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형식이란 무엇인가? 부뚜막 숫자를 늘이거나 줄이는 것이다. 손빈은 부뚜막 숫자를 줄여서 이겼지만, 우승경은 반대로 늘여 이겼다. 방법은 반대인데 이긴 것은 같다.

 

한신은 배수진(背水陣)을 쳐서 이겼는데,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신립(申砬)은 배수진을 쳐서 참패당했다.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왜병을 막고자 조정에서는 북변(北邊)의 명장 신립을 보내 문경새재에 최후의 저지선을 구축코자 하였다. 무엇이 눈에 씌었던가. 그는 난데없이 새재 방어선을 포기하고 4km를 물려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용감히 싸웠지만 일인(日人)의 조총은 유효사거리가 100보였고, 아군의 화살은 고작해야 50보였다. 군대는 몰살당하고, 신립은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임금은 황황히 밤중에 도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같은 배수진이었건만 한신은 이겼고 신립은 졌다. 왜 그랬을까? 통변(通變)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의 흉내나 내는 시는 결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다. 독자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문학사는 여기에 침을 뱉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여라. 옛 길을 따르지 말라.

 

김택영(金澤榮)은 그의 잡언(雜言)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충무공(李忠武公)이 거북선으로 일본을 깨뜨렸다는 것은 세상에서 늘상 하는 말이다. 그러나, 충무공이 일본과 백 번 싸워 백 번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적을 제압하여 이기는 계책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여 계책을 내면 낼수록 더욱 기이했던 때문이지, 어찌 거북선이 한 것이겠는가? 만약 거북선 때문에 이겼다고 한다면 일본 사람들의 정교함으로 어찌 아침에 패배하고는 저녁에 본떠 만들지 않았겠는가?

李忠武公用龜船破日本, 此世之恒言也. 然忠武公之於日本, 所以能百戰而百勝者, 乃其制勝之計策, 千變萬化, 愈出愈奇之所爲, 豈龜船之爲哉? 如果龜船之爲也, 則以日本人之精巧, 豈不朝受敗, 夕倣製乎.

 

 

과연 지당한 말이 아닌가. 원균이 이끌던 수군이 부산 앞바다에 고스란히 가라앉은 뒤에도 충무공은 거북선 한 척 없이 단 12척의 배로 승승장구 하던 일본 배 130척을 물리쳤다. 세계 해전사에 그 유례를 달리 찾을 길 없는 기적 같은 승리였다. 설사 우리 수군에게 거북선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충무공이 버티고 있는 한 왜병은 해상권을 결코 장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거북선이 아니다. 그것을 운용하는 장수의 용병술이다. 아무리 해박한 이론의 무장이 있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통변(通變)의 정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시를 쓰는데 이론은 오히려 장애가 될 때가 더 많다. 우리 해군의 승리는 결코 거북선 때문이 아니다. 해마다 충무공 호국얼을 선양한다는 단체의 주관으로 벚꽃 축제가 성대하게 벌어지는 해괴한 이 현실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것은 바다속에 묻힌 거북선이 아니라, 충무공의 그 거룩한 정신일 터이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2. 거미가 줄을 치듯

3. 거미가 줄을 치듯

4. 그때의 지금인 옛날

5. 그때의 지금인 옛날

6.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7.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8. 도로 눈을 감아라

9. 도로 눈을 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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