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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야기를 듣고 구묘역으로 향했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오월묘역을 거닐고 있으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 시간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축복에 대해, 그리고 저물어가는 자연의 경이를 맛볼 수 있다는 행복에 대해 말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결코 우연하게 주워진 게 아님을 알기 때문에, 그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길을 해설사님을 따라 걷는다. 우린 구묘역으로 간다.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오월묘지에서 10분 정도를 걸으면 구오월묘지에 갈 수 있다. 가는 길에 본 오월항쟁 당시의 기자의 글은 최초의 언론노조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 위해’라는 문구에서 연상시키며 마음을 흔들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
5.18민주묘지 입구에 도착하니, 예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2000년에 찾아왔을 땐, 흐린 날씨 탓인지, 의도가 불순한 탓인지 이렇게 잘 꾸며진 묘역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12년 만에 다시 찾은 묘역은 잘 꾸며져 있었다. 역시 한 번 가본 곳이라 해서 다시 찾아갈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기억의 속성이 그러하듯, 어느 환경, 어느 시기, 어떤 사람과 함께 했느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도 만나면 만날수록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장소 또한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본 곳이니, 다시 갈 필욘 없어요.”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 번 본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 국립묘지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 길을 지나면 저 ..
81년에 태어난 나에게 80년의 이야기는 아득한 ‘고조선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큼 현실이 아닌, ‘역사’라는 학문적인 이미지로 먼저 다가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다닌 대학교엔 광주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광주민중항쟁의 이야기가 아닌 ‘신산한 바람이 가득 부는’ 현실적인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관한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광주항쟁이 끝난 후 태어난 세대, 그래서 광주항쟁과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세대, 하지만 그럼에도 광주항쟁의 부채를 껴안고 태어난 세대, 그게 바로 ‘80년 이후 세대’다. ▲ 518을 찾아 이곳에 왔다. 사랑 찾아 떠난 광주에서 역사를 만나다 내가 광주에 처음 간 것은 대학교 동아리인 ‘말뚝이’라는 민중놀이패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