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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서양사와 동양사는 뿌리부터 달랐다고 볼 수 있다. 발생만이 아니라 서양사와 동양사는 전개 과정도 사뭇 다르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문명의 중심에서 드러난다. 쉽게 말하면 서양사는 중심이 이동한 역사이고, 동양사는 중심이 고정된 역사다. 두 역사가 형성되고 전개되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아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서양사는 오리엔트에서 발생하고 성장하다가 소아시아로 이동했다(오리엔트에서 문명이 소멸하고 다른 데로 옮겨갔다는 뜻이 아니라 중심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소아시아의 서쪽은 에게 해와 그리스다. 소아시아의 문명은 먼저 크레타 섬으로 전해져 미노스 문명을 이룬다. 한편 그리스에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아리아인이 발칸을 거쳐 펠로폰네소스 반도까지 남하해 토착 원주민들과 섞였다. 이들은 크레타의 미노스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 미케네 문명을 발달 시켰다.
이후 그리스는 도리스인의 침략으로 수백 년간 암흑기를 겪은 뒤 폴리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는데, 이것이 서양사의 공식적인 시작이다. 하지만 그리스도 문명이 만개할 만한 공간은 되지 못했다. 이후 서양 문명은 다시 서쪽의 이탈리아로 옮겨가 로마를 중심으로 지중해 시대의 문을 열었다. 5세기에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서양사의 중심은 게르만족이 있던 중부 유럽으로 북상한다. 최종 계승자는 중세 이후 서양 문명의 적통을 이루는 서유럽이다.
이렇게 민족이동과 중심 이동이 활발했던 서양사에 비해 동양사는 내내 지역적 중심이 고정되어 있었다. 중국 역사의 중심은 처음부터 황허 문명이 발생한 중원 지역이었으며, 20세기 초 제국시대가 끝날 때까지도 중심이 변하지 않았다(지금까지도 중국의 수도는 베이징이다).
민족의 변천과 이동 역시 마찬가지다. 하ㆍ은ㆍ주의 삼대는 모두 중원 중심의 소국이었다. 주나라는 제법 세력을 떨쳤으나 영토를 확장해 큰 나라로 성장하는 대신 주변에 제후국들이 들어서는 체제를 이루었다. 이 제후국들이 발전하면서 500여 년의 분열기(춘추전국시대)를 거치게 되지만, 그 시기에도 중심은 변하지 않았고, 기원전 221년 진시황(秦始皇)이 최초의 대륙 통일을 이루었을 때 다시 중원 중심의 제국이 들어섰다.
진시황이 세운 최초의 제국은 영토도 방대했지만, 그보다 더 큰 역사적 의미는 ‘한족’이라는 민족과 ‘중화’라는 문명의 경계선이 확정된 것이다. 이후 중화에서 제외된 사방의 이민족들은 전부 ‘오랑캐’로 규정되었다. 이때부터 중원 북쪽의 몽골 초원과 만주를 터전으로 삼은 흉노, 돌궐, 몽골, 여진 등 북방의 이민족들은 늘 중원 정복을 꿈꾸었다. 그것이 실패하면 서쪽으로 쫓겨났고(흉노와 돌궐), 성공하면 중원을 지배했다. 전자의 경우에는 서양사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서로마와 동로마 모두 중국에서 시작한 민족이동 때문에 멸망했다), 후자의 경우에는 한족 제국을 대체했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