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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6부 표류하는 고려 - 1장 왕이 다스리지 않는 왕국, 하극상의 시대: 아랫물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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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6부 표류하는 고려 - 1장 왕이 다스리지 않는 왕국, 하극상의 시대: 아랫물③

건방진방랑자 2021. 6. 1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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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의 시대: 아랫물

 

 

1198년 늦봄에 노비인 만적(萬積, ?~1198)은 동료 노비들과 함께 개경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일장연설을 한다. “무신란 이후 천한 노비가 고관대작에 오르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장군과 재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까지 무신으로서 집권한 자들은 경대승과 최충헌을 제외하면 모두 근본 없는 천민 출신이었으니, 대단히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얼핏 시대를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슬로건 때문에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당시 대부분의 민란을 신분해방운동의 일환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런 관점에는 문제가 있다. 물론 천민들이 봉기한 데는 사회적 신분 차별에 대한 불만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당시의 정황에서 민란의 주동자들조차 실제로 자신의 슬로건을 액면 그대로 믿었을지는 극히 의심스럽다(김사미의 신라 부흥이나 만적의 연설을 과연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하필 그때 그런 구호를 외쳤는가 하는 점이다. 정중부의 난으로 국가 질서 자체가 무너진 시기가 아니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 동양보다 시민의 역사가 훨씬 앞서는 서구의 역사에서도 신분해방의 요구가 실제로 제기되는 시기는 16세기부터다. 따라서 민란의 주동자들은 그저 하극상의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해서 이득을 취하려 했을 뿐이다.

 

사회의 최하층 신분이 스스럼없이 최상층 신분을 넘볼 만큼 고려의 병은 깊다. 요즘 같으면 유동성이 흘러넘치는 바람직스런 사회라고 하겠지만, 자치와 자율의 역량을 갖춘 시민의 시대가 오기 훨씬 전이니 그건 명백한 사회 혼란이다. 만적의 생각은 쉽게 말해 남이 하는 일은 나도 할 수 있다는 것, 혼란을 틈타 신분 상승을 이뤄보자는 것뿐이다. 좋게 말해 몽상가,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자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생각을 굳게 믿을 만큼 배짱이 두둑한 인물이었던 듯하다. 내친 김에 그는 노비들에게 자신의 엄청난 음모를 밝힌다. 거사 일자를 정하고 그 날짜에 모두 함께 궁성으로 쳐들어가 같은 신분인 궁노들을 규합하자. 그리고 집권자인 최충헌을 죽인 다음 각자 자기 주인집으로 가서 주인들을 죽이고 천적(賤籍, 노비문서)을 불사르자.

 

계획대로 되었다 해도 성공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겠지만 그 음모는 실행에 옮겨지지도 못했다. 사실 만적의 허망한 꿈을 믿은 노비는 그 자신을 비롯해서 얼마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분위기에 취했을 따름이다. 그 나머지 중 하나가 자기 주인에게 음모를 고발하자 그 엄청난 거사는 불발로 끝나고 만다. 결국 아무 것도 실행되지 못하고, 나무하러 갔다가 애꿎게 끼여든 100여 명의 노비들만 몰살당한 셈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반란이 역사상 유명한 사건으로 남게 된 건 순전히 후대의 역사가들이 신분해방이라는 후대의 이념으로 과대포장한 덕분이다.

 

 

그림 출처 -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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