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바쁜 지금, 지금은 나를 돌아볼 때
어떻게 5월 한 달이 갔는지도 모르게 가고 말았다. 시작과 함께 전주영화제로 전주에 있었고 10일엔 서울환경영화제에 참여하느라 용산에 갔으며 중간엔 518 전야제를 보러 광주에 갔고, 유홍준 특강을 들으러 강동어린이 회관에 갔으며, 일요일마다 진행된 동섭쌤의 강의에 가야했고, 마지막 날엔 엑스포에 참석하느라 여수에 갔었다.
정처 없이 시간에 휩쓸려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하지만 그 속에서 생각해야 하는 건, ‘어떻게 이 시간이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까?’ 하는 걸 거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까지 생각하며 살았냐 하면,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게 사실이다.
▲ 여행 안내.
욕은 단어 너머의 감정 속에 있다
어젠 64호 민들레 읽기 모임이 있었다. 핵심적으로 다룬 내용은 ‘욕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단재학교에서도 욕에 대한 화두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단순히 ‘욕을 섞어 말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지만, 보란 듯이 바로 이의 제기가 들어왔다. 대환이는 “욕을 어떻게 정의할 건데요? 단순히 욕설만 섞어 쓰지 않으면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욕 한 마디 쓰지 않고 남을 상처 입히는 말을 하는 건 괜찮다는 건가요? 또한 욕을 썼지만 애정 어린 말이라 할지라도 하지 말라는 건가요?”라고 말했다.
▲ 여수 엑스포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빅오쑈다.
핵심을 꿰뚫은 말이라, 한참이나 할 말을 잃고 욕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맞다, 욕이 들어 있고 안 들어 있고의 문제는 아니었다. 같은 ‘개새X’라는 말을 할지라도, 친구 사이에 환하게 웃는 얼굴로 할 땐, 격의 없이 친하다는 표현일 뿐이지만, 인상을 팍팍 찌푸리며 악감정을 실어서 한다면 그건 한 인격체를 무시하는 표현이니 말이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보면, 어떤 단어를 썼느냐의 문제보다 어떤 감정에서 그 말을 했느냐가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감정은 언어 이면의 어떤 것인데, 그건 민감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핵심 내용을 대환이가 이야기한 것이니, 참 대단한 녀석임에 분명하다.
어쨌든 어제 민들레 읽기 모임에선 이런 얘기들이 활발하게 오고 갔다. 다들 내공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욕이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허용한다는 분위기였다. 그건 한 개체의 문제만으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니, 왜 이런 사회가 되었나 생각해보겠다는 것이다.
▲ 여수에 왔으니 게장맛집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사람이 많이 서있지만 여긴 무한 리필이라 다들 맘이 편하다.
욕을 허용해줬다는 자의식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과연 욕을 허용하며, 우린 허용했다는 그 마음마저 내려놓을 수 있을까? 즉, 어른의 특권을 포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얌마! 내가 이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 욕 하는 것까지 허용해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하며 따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허용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배려라고 인식되어 한 개인을 옥죄는 구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대에 있을 때 내가 그랬다. 한 분대를 통솔해야 하는 분대장이 되었을 때, 후임병들의 불만을 자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의 의식 속에 ‘기회를 줬다’는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후임병들이 맘에 안 드는 일을 할 땐, “내가 너희들 생각해서 이렇게까지 풀어줬는데, 어찌 이렇게 개판일 수 있냐?”하는 푸념이 절로 나왔던 거다. 내가 무언가 큰 것을 해줬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하나만 잘못해도 엄청 잘못한 것인 양 몰아 부친 것이다. 그러니 후임병 입장에선, ‘내가 그렇게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뭐 이딴 인간이 다 있노?’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과연 어제 민들레에 모인 분들이 이런 것까지 생각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어른의 특권’, 이건 언제고 우리 안으로 파고들려 하는 나쁜 습성이다. 그런 습성에 젖어 들수록, 학생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나이 어린 사람과 벽이 쌓일 수밖에 없다.
▲ 여수 EXPO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관람하는 우리들.
선택과 집중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이제 조금 정신을 차려 본다. 틈틈이 찍었던 사진을 올리며 정신없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 특성일 수도 있지만,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무수히 많은 자극에 노출되면 오히려 방향을 잡지 못하고 표류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다익선은 자본의 논리에선 좋은 말일진 모르지만, 나 같이 많은 것을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체질에게 있어서는 나쁜 말이다. 식물도감을 보면 식물을 표현하기 위해선 세밀화를 그린다. 사진으론 식물의 자세한 모습을 표현할 수 없다. 이미 사진 안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에, 핵심이 되는 내용이 묻힌다. 선택과 집중, 그게 요즘 나의 화두다.
▲ 여수 EXPO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아쿠아리움. 마지막 날엔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결국 들어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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