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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스님! 무엇을 봅니까? - 3. 분명히 있지만 없는 것 본문

책/한문(漢文)

스님! 무엇을 봅니까? - 3. 분명히 있지만 없는 것

건방진방랑자 2020. 4. 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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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분명히 있지만 없는 것

 

 

동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옛날에 스승님께서 제 정수리를 문지르시며 제게 다섯 가지 계율을 내리시고 제게 법명法名을 주셨습니다. 이제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름은 내가 아니요, 나는 곧 공이라 하십니다. 은 형체가 없는 것이니 이름은 장차 어데다 베푼답니까? 청컨대 그 이름을 돌려드리렵니다.”

대사가 말하였다.

너는 순순히 받아서 이를 보내도록 해라. 내가 예순 해 동안 세상을 살펴보았으되, 사물은 한 자리에 머무는 법 없이 도도히 모두 가버리는 것이더구나. 해와 달도 흘러가 잠시도 쉬지 않느니, 내일의 해는 오늘이 아닌 것이다. 그럴진대 맞이한다는 것은 거스르는 것이요, 끌어당기는 것은 애만 쓰는 것이니라. 보내는 것을 순리대로 하면, 너는 마음에 머무는 것도 없게 되고, 기운이 막히는 것도 없게 되겠지. 에 따라 순응하여 명으로써 아를 보고, 로써 떠나보내 이로써 물을 보면, 흐르는 물이 손가락에 있고 흰 구름이 피어날 것이니라.”

童子涕泣漣如, : “昔者夫子摩我頂, 律我五戒, 施我法名. 今夫子言之, 名則非我, 我則是空, 空則無形, 名將焉施? 請還其名.” 師曰: “汝順受而遣之. 我觀世六十年, 物無留者, 滔滔皆往. 日月其逝, 不停其輪. 明日之日, 非今日也. 故迎者逆也, 挽者勉也. 遣者順也, 汝無心留, 汝無氣滯. 順之以命, 命以觀我, 遣之以理, 理以觀物. 流水在指, 白雲起矣.”

스님! 그럼 저더러 어찌하란 말씀이신가요? 예전 제게 법명法名을 내리시며, 살생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고 망령된 언동을 하지 말며,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을 주셨지요. 그래 놓고 이제 와서 향이 곧 재이고 연기는 곧 공이라 하시며, 이름은 내가 아니요 나는 곧 공이요 무일 뿐이라고 하십니다 그려. 제자는 심히 의혹하나이다. 그렇다면 제게 이름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제게 주신 그 이름 다시 돌려드리렵니다. 스님!

제자야! 너는 아직도 이름에 집착하고 있구나. 집착을 끊겠다고 이름마저 버린다면 너는 과연 누구냐? 또 이름을 버릴진대 과연 집착도 끊어지게 되는 것일까? 이름만 버려서 집착을 끊을 수 있다면 무에 어려울 것이 있겠느냐? 향을 사르면 연기가 피어오르고, 연기는 허공에 사라져 버린다. 타고 남은 재에는 향기가 없고 사라진 연기는 찾을 길이 없으니, 그 향기와 연기는 분명히 있었으되 어디에도 없는 것을.

내 육십 평생을 살다보니 만물의 소장消長하는 이치가 꼭 이와 같더구나. 사물은 어느 것 하나 그 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 소멸하는 것일 뿐이니라. 우리네 인생도 저와 같아서 무엇을 이룬다 함도 허망할 뿐이고, 무엇을 남긴다 함도 덧없을 따름이다. 그저 왔다가 바람결에 사라져 버리는 연기와 같은 것을. 그것이 비록 한때는 아름다운 향기였다 할지라도 지나고 나면 싸늘히 식은 재에 불과한 것을. 제자야! 명심하도록 해라. 내일은 오늘이 아니요, 오늘은 어제가 아니니라. 그러니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오늘로 끌어올 수가 없고, 가버린 어제를 오늘에 붙들어 둘 수는 없는 것이야. 그저 해와 달이 쉬지 않고 운행을 계속하듯, 오는 인연 마다않고 가는 인연 연연치 말아야지. 순리로 받아들여 순리대로 보내면 되는 것을. 네 마음에 아무 것도 들이지 않고, 네 생각에 엉킨 집착도 없이 천명天命에 순응하여 천명으로 를 바라보고 이로써 떠나보내 을 살핀다면, 네 손가락 끝에서 강물이 흘러가고 흰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날 것이니라. 그저 이름만 버린다고 될 일이 아니니라. 네가 이 이치를 알겠느냐? 깨달을 수 있겠느냐!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사라지는 연기

2. 향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히다

3. 분명히 있지만 없는 것

4. 태를 바꿔가며 변해가네

5. 무엇을 보려는가

5-1. 총평

6. 벗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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