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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무엇을 봅니까? - 6. 벗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들 본문

책/한문(漢文)

스님! 무엇을 봅니까? - 6. 벗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들

건방진방랑자 2020. 4. 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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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벗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들

 

 

짤막한 편지글 두 편을 함께 더 읽어본다. 두 편 모두 벗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별의 말이 간절해도, 이른바 천리 길에 그댈 보내매 마침내는 한번 이별일 뿐이라는 것이니 어찌 하겠소. 다만 한 가닥 가녀린 정서情緖가 이리저리 감겨 면면이 끊어지지 않으니, 마치 허공 속의 허깨비 꽃과도 같구려. 와도 어디서 조차 오는지 모르겠고, 떠나가도 다시금 애틋할 뿐이라오.

別語關關, 所謂送君千里, 終當一別, 柰何柰何. 只有一端弱緖, 飄裊纏綿, 如空裡幻花. 來卻無從, 去復婀娜耳.

답경지答京之, 즉 경지에게 보낸 답장의 엽서다. 벗과 헤어진 뒤 그 연연하고 애틋한 정서를 절묘하게 포착한 소품이다. 잘 가시게, 잘 있게. 이별의 말을 나누자 어느 새 가슴 한 구석이 메어져 온다. 무어라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가녀린 명주실이 온 몸을 이리저리 감싼 듯 떨칠길 없는 면면한 정서가 내 마음 위로 흐른다. 그것은 분명히 있으되 볼 수가 없으니 허공 속의 환화幻花가 아니겠는가? 이런 정서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접때 백화암百華菴에 앉았노라니, 암주菴主인 처화處華가 먼데 마을에서 바람결에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를 듣고는 그 비구인 영탁靈托에게 게를 내려 말하였다.

탁탁톡톡 하는 소리 어디 먼저 떨어질꼬?”

그러자 영탁靈托이 손을 맞잡고 말하였다.

먼저도 아니요 나중도 아니거니, 어디에서 이 소리를 듣겠습니까?”

頃坐百華菴, 菴主處華, 聞遠邨風砧, 傳偈其比丘靈托曰: “椓椓礑礑, 落得誰先?” 托拱手曰: “不先不後, 聽是那際?”

그리고 나서 연암은 뚱딴지 같은 선문답禪問答을 늘어놓는다. 깊은 밤 먼데 마을에서 겨울 옷을 다듬이질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탁탁톡톡, 탁탁톡톡. 리듬을 타고 쉴 새 없이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듣다가 문득 백화암百華菴의 주지인 처화處華 스님이 상좌에게 질문을 던진다. “저 다듬이 소리가 허공으로 올라갔다가 가장 먼저 떨어지는 곳이 어디 쯤인고?” 영탁靈托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스님! 앞에도 없고 뒤에도 없으니 소리는 무슨 소리를 듣는답니까?” 소리가 떨어지는 지점을 묻는데, 아예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고 한다. 동문東問에 서답西答으로 사제 간의 선문답은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사실 앞인지 뒤인지를 굳이 따져 헤아리는 분별지分別知를 마음에서 걷어내고 보면, 소리의 집착을 넘어서는 대자유의 경계가 펼쳐지는 법이다.

 

 

어제 그대가 정자 위에서 난간을 돌며 서성거릴 때 저는 또 다리 어귀에서 말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 사이의 거리가 하마 1리 남짓 되더군요. 그때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던 곳은 또 어디쯤이었을까요?

昨日足下, 猶於亭上, 循欄徘徊, 僕亦立馬橋頭, 其間相去已爲里許. 不知兩相望處, 還是那際.

어제 내가 그대와 헤어진 뒤 그대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정자 난간을 세며 돌고, 나도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다리 어귀에서 말을 세우고 그대가 서성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소. 그때 우리 두 사람이 바라보던 그 지점은 어디였을까요? 허공의 환화와 같은 그리움이 만나던 지점은 앞이였던가요, 뒤였던가요? 아니, 우리의 마음은 애초에 떨어짐이 없이 하나였는데, 만나기는 어디서 만난답니까?

 

 

저물녘 용수산龍首山에 올라 그댈 기다렸지만 오시질 않더군요. 강물만 동편에서 흘러와서는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더이다. 밤이 이슥하여 달이 떠오길래 정자 아래로 돌아왔지요. 늙은 나무가 희뿌연데 사람이 서 있길래, 나는 또 그대가 나보다 먼저 그 사이에 와 있는가 생각했었다오.

暮登龍首山, 候足下, 不至. 江水東來, 不見其去. 夜深泛月, 而歸亭下. 老樹白而人立, 又疑足下先在其間也.

답창애答蒼厓다섯 번 째 편지이다. 오기로 한 벗은 기다려도 오지 않고, 강물만 멀리서 흘러와서는 또 어둠 속으로 흘러가 버린다. 밤 깊어 달이 둥실 떠오길래 만나기로 한 정자 아래로 돌아오는데 희뿌연 나무 아래를 보니 사람이 하나 우두커니 서 있다. 반가운 마음에 그대가 나를 놀래 주려고 그 사이에 먼저 와 있는가 했더라는 사연이다. 길게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뭐 연기처럼 왔다가 티끌로 스러지고 마는 허무한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따뜻한 편지라도 한통 주고받으며 산다면 세상 사는 재미가 그 얼마나 푸근할 것이랴. 옛글을 읽다 보면 참 우리가 멋도 없이 사는구나 싶을 때가 많다. 앞서 본 치준緇俊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연암의 풍악당집서楓嶽堂集序에도 다른 삽화로 실려 있다.

 

 

 

 

인용

목차

작가 이력 및 작품

1. 사라지는 연기

2. 향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히다

3. 분명히 있지만 없는 것

4. 태를 바꿔가며 변해가네

5. 무엇을 보려는가

5-1. 총평

6. 벗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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