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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생각의 집, 나를 어디서 찾을까? - 6. 연암이 과거시험을 절망스럽게 본 이유 본문

책/한문(漢文)

생각의 집, 나를 어디서 찾을까? - 6. 연암이 과거시험을 절망스럽게 본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0. 4. 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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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연암이 과거시험을 절망스럽게 본 이유

 

 

박종채朴宗采과정록過庭錄(1-15 / 22)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당시 선군의 문장은 명성이 이미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울리었다. 매번 과거 시험이 있을 때마다 시험을 주관하는 자가 반드시 끌어당기려 하였으나, 선군은 그 의도를 간파하고 혹은 응시하지 않거나 혹은 응시는 하되 시권試券을 제출하지 않으셨다. 하루는 과장科場에 있으면서 고송古松과 노석老石을 그리니, 세상에서는 서투르고 물정을 모른다고들 비웃었다. 그러나 이는 대개 달갑게 여기지 않는 뜻을 보이신 것이었다.

선군은 회시에 응시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친우들이 억지로 권하는 자가 많아 드디어 마지 못해 과장에 들어갔다가 시권을 제출하지 않고 나오셨다.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이를 듣고 모두들, 나아감에 구차하지 않으니 옛 사람의 풍모가 있다 하였다. 장인인 유안옹遺安翁은 이때 고향집에 계셨다. 그 아들 이재성李在誠에게, “아무개가 회시에 응시하는 것은 나로서는 그다지 기쁘지 않다. 그 사람 역시 어찌 생각이 없겠는가하셨다. 시권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기쁘게 여기셨다.

-역주과정록, 박종채 저/김윤조 역주, 태학사 간, 31쪽과 37

 

 

그는 왜 모든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벌떼같이 달려드는 과거 시험장에서 백지를 제출하거나, 한가롭게 고송古松 따위를 그리며 앉아 있었던 걸까? 과거 시험이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송욱처럼 미치지 않고는 견딜 길 없던 세상, 경국제세經國濟世의 포부를 실현하겠다고 익힌 공부가 국가 사회를 위해 쓰일 수 없고, 고작 권문權門에 빌붙어 일신의 영달을 구하는 데만 쓸모 있게 된 세상, 달아 삼켜 놓고 쓰다고 뱉는 그런 세상에 대한 절망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때의 그 세상은 눈앞의 지금과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니 차라리 저 장주莊周의 훨훨 나는 호접몽胡蝶夢의 자유경自由境을 부러워도 해볼 일이다. 그런데 명나라 장조張潮유몽영幽夢影에서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니 장주의 행운이었고,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니 나비의 불행이었다. 莊周夢爲胡蝶, 莊周之幸也. 胡蝶夢爲莊周, 胡蝶之不幸也고 그나마도 톡 쏘았다. 그렇지만 장주와 나비의 행불행幸不幸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꿈 속 꿈의 잠꼬대 같은 소릴 뿐이다. 그럴진대 과연 발가벗고 방을 뛰쳐나간 나는 여태 어디서 헤매 돌고 있는 걸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정말 나일까?

 

 

 

 

인용 

목차

작가 이력 및 작품

1. 송욱이 송욱을 찾아다니다

2. 자신의 과거시험지를 자신이 채점하다

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4. 전후의 안쓰러운 내면풍경

5. 아홉은 죽어나가는 과거시험

6. 연암이 과거시험을 절망스럽게 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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