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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9. 도를 깨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 성혼의 시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9. 도를 깨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 성혼의 시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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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깨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 성혼의 시

 

 

一區耕鑿水雲中 물가 구름 속의 한 구역에 밭 갈고 우물 파느라,
萬事無心白髮翁 만사에 무심한 백발의 늙은이라네.
睡起數聲山鳥語 두어마디 산새소리에 잠을 깨서는
杖藜徐步繞花叢 명아주 지팡이로 천천히 걸으며 수풀 맴돈다네.

 

소화시평권상 99에 첫 번째로 소개된 우계 성혼의 시는 저절로 격양가(擊壤歌)가 생각나며 달관한 사람의 면모가 가득 보인다. 세상을 달관한다는 게 무관심해진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다른 욕망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 절대정신 같은 것일 거다. 그러니 겉에서 보면 만사에 무심한 노인 같지만, 그는 자연의 흐름을 온몸에 받아들여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제와는 달리 오늘 새로 피어난 수풀의 이름 모를 풀들에 감응할 줄을 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성혼의 시를 읽으면 하릴없는 백수’, 요즘 말로 하면 루저잉여스러워 보인다는 점이다. 세상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채 방안에만 틀어박혀 자신의 세계에만 파고들어가는 것 말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엔 이런 사람들을 무중력 세대라는 새로운 단어로 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성혼의 자세와 요즘 흔히 이야기되는 그런 사람들의 자세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니 말이다. 무중력 세대로 불리는 사람들은 정말 세상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 아니,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나 외엔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나만이 가장 힘들고, 나만이 가장 고민이 많기 때문에 나 외에 다른 것엔 눈길을 돌릴 여유도, 흥미도 전혀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성혼은 그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살아갈 최소한의 기반은 스스로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1구에 나오듯 밭을 갈고 우물을 파며 먹고 마시다가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찐하게 낮잠을 잔다. 소화시평을 공부하며 알게 된 내용처럼 낮잠에 대한 칭송이 있었다. 그렇게 자다가 새소리에 잠이 깨면 그제야 지팡이를 짚고서 수풀을 맴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칸트 같은 경우도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즐겼다고 하며, 그 산책이 새 작품을 써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던데 어쩌면 성혼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산책을 하며 그는 수풀에 새롭게 피어난 꽃들과 이젠 져버려 볼 수 없는 꽃들을 관조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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