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어 사전 - 젠더(Gender)

젠더

Gender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은 평소에 조선의 아낙이 해방되는 날이 곧 전 인류가 해방되는 날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모순이 집적되어 있는 장소가 20세기 초의 조선이고 조선의 모든 모순을 끌어안은 것이 여성이라는 견해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제자가 물었다.

“그 말씀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강일순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예끼, 그렇기야 하겠는가? 남녀가 똑같아져야 한다는 말이지.”

 

강일순의 말은, 일찍이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은 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니라 부르주아지, 나아가 전 인류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견해와 닮은꼴이다. 궁극적인 해방은 피억압자를 억압자의 위치로 반전시키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평등을 도모하는 것이다.

 

 

성(性)이라고 하면 남녀의 성적 차이를 가리키지만 이 개념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우선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인데, 이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 차이 이외에 사회적 차이도 있다. 이렇게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성을 젠더라고 부른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는 남녀의 성적 구분을 섹스 대신 젠더로 표현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극단적인 페미니즘은 인류의 문명사와 거의 일치할 만큼 오래된 남성 중심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여성이 가정과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관계 역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성차별에 불과하다. 복수가 복수를 낳듯이 차별에 역차별로 대응한다면 차별의 악순환은 근절되지 않고 오히려 증폭된다.

 

젠더의 개념은 남녀의 성적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가 차별로 전화되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를 반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ㆍ생물학적 차이가 사회적 역할에서 차이를 낳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차이가 거꾸로 성적 차이를 규정하기에 이르른 것도 사실이다. 그로 인해 남성성과 여성성의 관념이 생겨났고 개인들에게 강요되었다.

 

 

성적 차이가 차별로 전화되는 과정은 처음에 금기로 시작되었다. 남성의 사냥도구를 여성이 만지면 부정이 탄다든가, 남성이 부엌에 들어오면 안 된다든가, 제사와 같은 종교 의식에서 여성이 배제된다든가 하는 등의 관습적 규제가 그런 예다. 이와 같은 각종 규제와 금기에 의해 점차 남성의 영역은 가정을 넘어선 공적 공간이고 여성의 영역은 가정으로 제한된 사적 공간이라는 차별적인 구분이 생겨났다. 특히 여성은 출산이라는 특유의 신체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녀 양육과 취사 같은 가사가 여성의 역할로 고착되었다.

 

사회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원시 공동체에서 고대, 근대 사회를 거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된 남성과 여성의 역할 구분은 더욱 강화되었고, 사회적 역할의 비중은 점점 남성에게로 기울었다. 성의 차이는 성의 차별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접어들어 이런 구도는 급격히 깨지기 시작했다. 우선 인권 평등의 관념이 탄생했고, 정치적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성적 차별이 이념적으로 거부되었으며, 직업, 교육, 관습 등의 변화로 사회적 역할 구조가 성적 차이와 무관하게 바뀌었다.

 

그런 변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흔히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고 불리는 성전환자다. 이들은 신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에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성적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이들이 엄연히 실존함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가 의도적으로 무시되거나 트랜스베스티즘(→ 관음증, Transvestism)과 같은 성도착증 환자로 규정되었지만, 지금은 사회적 소수자로 인정되며 법적 공인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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