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 우익
Left Wing & Right Wing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부터는 한반도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게 되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생겨나면서 분단을 맞았던 한반도가 이제 그 이데올로기가 수명을 다했는데도 아직 분단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지금 북한은 세계적으로 가장 폐쇄적이고 철저한 공산주의 이념의 수호자가 되어 있고, 남한은 상대적으로 가장 철저한 반공(反共) 이념의 수호자가 되어 있다. 세계를 갈라놓았던 이념의 구분이 약해졌는데도 한반도는 여전히 좌익/우익이 대립하는 특수한 지역이다.
흔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념을 가리켜 우익(右翼)이라고 부르고,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념을 가리켜 좌익(左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좌익/우익이라는 개념은 원래 특정한 이념을 나타내는 데 쓰는 용어가 아니라 서로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두 세력의 상대적 관계를 가리키는 용어다. 일반적으로 같은 정체성을 지닌 집단 내에서도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세력을 좌파라고 부르고, 보수적이고 점진적인 세력을 우파라고 부른다.
언어 자체에 왼쪽은 어떻고 오른쪽은 어떻다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언어적으로 보면 오른쪽을 뜻하는 영어의 right와 프랑스어의 droit는 모두 ‘바르다’는 뜻이 있고, 왼쪽을 뜻하는 left와 gauche는 모두 ‘그르다’는 뜻이 있다. 또 우리말에서도 오른쪽은 ‘옳다’라는 말에서 나왔고, 왼쪽은 ‘그릇되다’라는 뜻의 옛말인 ‘외다’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항상 더 많기 때문에 그랬을 뿐 좌익/우익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좌익/우익이라는 말은 프랑스혁명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혁명의 와중인 1792년에 프랑스는 절대주의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당시 공화정 수립의 주체였던 국민공회는 크게 지롱드(Girondin)당과 자코뱅(Jacobin)당의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물론 둘 다 공화주의자들이었으나 지롱드당은 부유한 부르주아지를 대변했고 지방 분권과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했다. 자코뱅당 역시 부르주아지 출신이었지만 이들은 소시민층과 민중을 지지 기반으로 삼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주장했다.
자코뱅당은 민중의 복지와 프랑스혁명의 승리를 위해서는 통제 경제도 불사해야 한다고 생각한 급진적인 민주주의자들이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사회주의 이념까지 수용한 셈이다. 국왕인 루이 16세는 지롱드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코뱅당이 처형을 주장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표결의 결과는 찬성 387표, 반대 334표로 아주 근소한 차이였다. 이것은 당시 좌익/우익의 팽팽한 대립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결국 루이 16세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마지막 왕이 되고 말았다. 절대 군주인 국왕을 처형한다는 발상은 아무리 혁명적인 분위기라 해도 당시에는 대단히 급진적이고 획기적인 대사건이었다.
그러면 지롱드와 자코뱅 중 어느 쪽이 좌익이고 어느 쪽이 우익인가를 알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좌익/우익이라는 명칭 자체는 정치적 성향에서 나온 게 아니다. 마침 국민공회에서 지롱드당은 오른쪽에 있는 좌석에 앉았고, 자코뱅당은 왼쪽에 앉았다.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게 된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좌익과 보수적이고 온건한 우익의 개념은 단순한 좌석 배치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속하고 있는 단체에서는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과 행동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 가운데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있고, 온건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있다. 심지어 한 사람의 마음속에 그 두 가지 사고방식이 병존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좌익/우익이란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게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의 결론을 내릴 때 사용하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두 다리가 모두 있어야만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듯이, 좌익/우익 양쪽의 기둥이 튼튼해야만 균형 잡힌 사고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미 박물관에 들어갔어야 할 냉전 이데올로기가 유독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존재하며, 특히 선거 시기에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물론 가장 끔찍한 동족 간의 전쟁을 겪었고, 아직 분단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기는 하지만, 민족의 비극을 낳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우리만 끌어안고 있다면 우리의 앞날은 과거의 족쇄에 묶여 펄펄 날지 못하게 될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 법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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