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물결
Third Wave
보통 혁명이라 하면 프랑스혁명,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같은 근대의 정치적인 대사건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정작으로 중요한 혁명은 문명사적인 혁명이다. 인류 문명을 통틀어 그런 혁명은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에 일어난 농업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19세기 초반의 산업혁명이다. 농업혁명은 인간이 지구상에 태어나 살아왔던 500만 년 동안의 변화보다 더욱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산업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 지금은? 지금도 역시 혁명의 와중에 있다. 이 세 번째 혁명을 미래학자 토플러(Alvin Toffler, 1928~2016)는 제3의 물결이라고 부른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은 각각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에 해당한다. 제1의 물결은 1만 년의 인류 역사를 이끌었고, 제2의 물결은 200년간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제3의 물결은 어떨까?
현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특징을 가리키는 이름은 많이 있다. 정보화 시대, 지구촌, 후기 산업사회, 과학기술혁명 등의 용어들은 현대 사회의 변화를 나름대로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토플러는 ‘물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쓰는데, 그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연속성을 뜻한다. 물결이라는 말의 원래 뜻이 그렇듯이 지금의 변화는 과거에 있었던 변화(제2의 물결)의 연속선상에 있다. 즉 제3의 물결은 제2의 물결을 대체하는 동시에 그것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산업화, 즉 제2의 물결은 모든 것을 규격화하고 획일화하는 데서 변화의 동력을 얻었다. 정치적으로는 권력의 집중, 경제적으로는 대량생산이 그 표현이다. 그러나 그러한 규격화와 획일화는 결국 탈규격화와 탈획일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권력의 집중이 완성되면 권력의 다원화를 지향할 수밖에 없고,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를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제2의 물결은 스스로 제3의 물결의 물꼬를 터 주게 된다.
물결의 둘째 의미는 총체성이다. 제3의 물결이 가져온 변화는 사회의 특정한 분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전면적으로 파고든다. 한 예로 토플러는 기업에서 출퇴근 제도가 흔들리면서 직원 개인이 자신의 근무 시간을 정한다든가 아예 집에서 일하는 근무 방식으로 바뀌고 있음을 말한다【요즘 흔히 말하는 재택근무나 ‘소호(Small Office Home Office)’ 방식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토플러다】, 생활환경이 바뀌면 당연히 가족 제도도 바뀐다. 제2의 물결이 가져온 핵가족화는 산업화 시대가 끝나갈 즈음부터 심하게 흔들린다. 이혼 가정이 늘고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많아진다.
중요한 것은 그런 변화들이 특정한 하나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3의 물결에서는 제2의 물결 때처럼 어느 한 제도가 모든 사회를 지배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는다. 그 대신 다양한 제도들이 생겨난다. 대다수 사람들이 통일된 가족제도에 의해 살지 않고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 개성 있는 삶을 꾸려나가게 된다. 『제3의 물결』”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한 가지로만 정형화시키지 않는다. 정치, 기업 경영, 지식의 발전, 일상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의 변화는 “획일성을 피하고 다양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획일성이라는 제2의 물결의 처방에 계속 의지하려는 개인이나 정부는 결국 시대에 뒤처지게 된다.
제3의 물결이 반드시 장밋빛 미래인 것은 아니다. 다원화와 다양성은 인간에게 큰 폭의 자유를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윤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부담도 준다. 그것을 자유로 활용할 것이냐, 부담에 짓눌려 주저앉을 것이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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