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Minority
현대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세기 공리주의에서 비롯된 이 원칙은 언뜻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므로 질적인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가급적 많은 사람의 뜻대로 모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바로 이런 뜻이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을 도외시하고 ‘다수’라는 양적인 기준만 앞세우는 게 최선은 아니다. 그래서 벤담의 공리주의를 계승한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행복의 질적인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다수결의 원칙을 수정하고자 했다. 비록 현재까지도 그 원칙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골간을 이루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소수자에 대한 배려다.
사회적 소수자는 세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신체적 소수자다. 장애인이 대표적이지만 그밖에도 왼손잡이나 RH 음성형 혈액을 가진 사람 등 사회 구성원의 다수와 신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신체적인 차이가 실제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는 흔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공인되어 있다. 그래서 대개의 사회에는 신체적 소수자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보호의 대상이면서도 소수자들은 흔히 비공식적인 차별을 겪는다. 장애인의 취업이 법적으로 가능한 기업에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으려는 관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수자의 둘째 그룹은 동성애자나 성전환자 같은 성적 소수자다(→ 젠더), 신체적 소수자와 달리 이들은 법적으로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며, 사회적 보호는커녕 공공연하게 차별을 받는다. 동성애자와 성전환자의 결혼이나 자녀 입양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아직 많지 않다. 특히 병역을 의무화하는 나라의 경우 성전환자의 처지는 거의 묵살된다.
셋째 그룹은 문화적 소수자인데, 소수 민족이나 외국인, 우리 사회에 특유한 탈북자, 범죄 전력을 가진 사람(전과자), 실정법에 위배되는 교리를 가진 특정한 종교의 교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 신분상으로는 구분되지 않아 항구적인 소수자는 아니지만, 소수자의 취향을 가진 사람도 이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낡은 모델의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고집스럽게 사용하는 사람들, 1960~70년대의 영국 록 음악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소수자는 다수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소수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차별과 불이익을 당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 있다. 동성애자는 법적 차별과 더불어 주변의 경멸 어린 시선을 받고, 외국인은 원주민들의 텃세에 시달리고, 특이한 문화적 취향을 가진 사람은 바보나 괴짜로 몰린다.
더 큰 문제는 다수와 소수를 구분하는 근거가 전혀 필연적인 게 아니라 우연적이고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다수는 정상이고 소수는 비정상이다. 이것이 소수자를 배제하는 ‘다수결의 원칙’이다. 그러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광기(狂氣)의 예를 들어 말했듯이(→ 권력)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정상과 비정상은 그 자체로 정의되는 게 아니라 늘 시대의 담론에 따라 달리 규정될 뿐이다. 그렇다면 결국 다수는 다수이기 때문에 정상이고 소수는 소수이기 때문에 비정상이라는 동어반복의 논리밖에 남지 않게 된다.
공기의 밀도가 어디서나 고르다면 바람이 불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회 구성원들이 다수에 속하는 표준형 인간들뿐이라면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무의식적 욕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표출할 줄 아는 사회의 아웃사이더나 일탈자들에게서 새로운 사회혁명의 동력을 찾았다.
현대 사회에서 소수자의 권리는 꾸준히 신장되고 있으나 아직 법과 제도를 통한 보장은 보기 드물다. 선진 사회를 규정하는 참된 기준은 경제 규모나 사회간접시설 따위가 아니라 섬세하고 정교한 것을 지향하는 사회의 가치관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배려는 선진 사회의 시금석이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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