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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Ⅸ. 타자의 타자성 - 2. ‘포정 이야기’에 대한 예비적 분석, 유동적인 마음의 역량으로 타자와 직면하다 본문

고전/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Ⅸ. 타자의 타자성 - 2. ‘포정 이야기’에 대한 예비적 분석, 유동적인 마음의 역량으로 타자와 직면하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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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동적인 마음의 역량으로 타자와 직면하다

 

 

구체적으로 포정이 문혜군에게 이야기한 소 잡는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자. 포정은 처음에는 보이는 것마다 다 소로 연상되었을 정도로 소에 집중을 한다. 다시 말해 포정은 지금 개를 보아도 소로 보이고 고양이를 보아도 소로 보이는 몰입의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몰입의 상태에 빠져 있던 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이제 포정은 살아있는 소를 보아도 일상인이 보는 것과 같은 온전한 소가 아니라 소의 모든 부위들과 뼈들만 보게 되었다. 이런 경지에 이른 다음 그는 자신이 지금 소를 잡을 때 그 소와 신()으로 조우하지 눈으로 보지는 않는다[以神遇而不以目視].”고 말한다.

 

여기서 포정이 말한 눈으로 본다는 것과 신으로 조우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본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내가 어떤 대상을 능동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다는 말은 주체가 어떤 관심과 목적을 가지고 주체 밖의 어떤 대상을 관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체와 대상이 거리를, 다시 말해 나는 나고 대상은 대상이라는 식의 거리를 함축한다는 말이다. 반면 조우한다는 말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조우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처럼, 이 말은 어떤 관심을 가지고 누군가를 찾다가 그 사람을 보게 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용되는 신()이라는 표현이 주체와 대상의 거리감이 없는 소통의 역량, 유동적인 마음의 상태, 타자와 직면해서 그 타자에게 어떤 인칭적 관심도 없이 귀를 기울이는 상태의 마음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유동적인 마음의 역량, 즉 신()으로 타자와 조우했기 때문에, 수천 마리의 소를 잡은 포정의 칼은 아직도 마치 숫돌에 방금 간 칼처럼 새롭다. 왜냐하면 포정의 칼은 뼈와 뼈 사이, 근육과 근육 사이를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헤치고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정의 칼은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음에도 온전하게 칼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지를 포정은 저 소에게는 틈이 있지만 칼날에는 두께가 없기 때문에, 두께가 없는 칼로 틈이 있는 것을 지나가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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