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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2부 자람 - 5장 분열이 자연스러운 인도, 최초이자 최후의 제국: 다양한 매력의 지배자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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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2부 자람 - 5장 분열이 자연스러운 인도, 최초이자 최후의 제국: 다양한 매력의 지배자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7.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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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매력의 지배자

 

 

바부르의 무굴 제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과 간다라를 포함해 데칸 고원의 일부, 동쪽으로는 벵골에까지 이르는 드넓은 영토를 장악했다. 인도 지역에 국한한다면 고대의 마우리아나 쿠샨, 굽타보다 통일 제국으로서의 위상이 약하겠지만, 북인도만을 놓고 따지거나 그 북쪽의 중앙아시아까지 포함시킨다면, 무굴 제국은 인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일 제국일 것이다. 게다가 수명도 중세 이후 어느 인도 왕조보다 긴 200여 년에 달했다.

 

바부르는 파괴적인 정복자일지언정 적어도 무지한 정복자는 아니었다. 정원에 심취한 데서 보듯이 심미안을 가진 지배자였으며, 문학에 조예가 깊고 시와 산문을 즐긴 팔방미인이었다. 튀르크어로 된 그의 저서 바부르의 회상은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문학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무굴 제국은 건국자인 바부르가 돌연히 사망하면서 하마터면 단명 왕조로 끝날 뻔했다. 새 제국이 아직 충분히 안정되지 못했을 때 바부르의 아들 후마윤(Humayun, 1508~1556)은 신흥 세력의 우두머리인 셰르 칸 수르(Sher Khan Sur, 1486~1545)에게 패배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달아났다. 아버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후마윤은 각지를 떠돌며 지원을 부탁하는 처지로 전락했다후마윤이 스물두 살 무렵 중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바부르는 신에게 자신의 목숨을 대신 가져가라고 탄원했다. 과연 신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었다. 아들의 병이 나은 대신 아버지가 몸이 쇠약해져 죽은 것이다. 그때 바부르는 아직 쉰이 채 되지 않은 나이였으니 신생 무굴 제국의 안위를 위해서는 아들보다 아버지가 살았어야 한다.

 

한편 델리를 정복한 셰르 칸 수르는 황제로 자칭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계 델리 술탄국을 복구하려 했다. 그는 북인도를 지배하는 5년 동안 화폐를 통일하고 물가를 안정시켰으며, 토지조사와 대규모 도로 건설을 했고, 그밖에 여러 가지 개혁 조치도 단행했다

 

셰르 칸 수르의 통치가 제대로 이어졌더라면 무굴 제국은 이후 인도 역사에서 한 문단으로 정리되고 대신 아프가니스탄 제국이 한 개 장 정도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권위 있는 건국자가 죽으면 정세가 혼탁해지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가 죽으면서 아프가니스탄 제국은 급격히 무너졌고, 마음을 고쳐먹은 무굴의 후마윤이 재도전 끝에 델리를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뒤이어 후마윤의 아들인 아크바르(Akbar, 1542~1605)의 시대에 무굴은 제국의 기틀을 갖추고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을 이루게 된다.

 

 

정원을 좋아한 바부르 바부르는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왕국에서 순식간에 국력을 키워 북인도까지 정복하고 무굴 제국을 세운 흥미로운 인물이다. 무굴(Mughul)이란 바부르의 부족 이름으로서 몽골(Mongol)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바부르는 몽골의 후예일 텐데, 역사책에는 튀르크계라고도 되어 있다. 실상 흉노, 돌궐(튀르크), 몽골은 시대마다 이름이 달라졌을 뿐 모두 중국 북방을 고향으로 하는 민족이다. 몽골이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이후 칭기즈 칸과 티무르의 지배를 거치면서 돌궐족과 몽골족이 혼혈을 이루었는데, 무굴의 바부르는 바로 그 혼혈 출신일 것이다.

 

 

인용

목차

연표

십팔사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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