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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5부 국제화시대의 고려 - 3장 안정의 대가, 북방의 새 주인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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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5부 국제화시대의 고려 - 3장 안정의 대가, 북방의 새 주인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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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새 주인

 

 

하지만 유목민족답게 기병 전술에 능한 여진은 오히려 엉성하게 편제된 고려 정벌군을 크게 무찌르며 기세를 올린다. 이때 숙종에게 발탁된 인물이 비운의 스타 윤관(尹瓘, ?~1111)이다. 기병 없이는 여진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기병을 중심으로 하는 별무반(別武班)이라는 군대를 편성하는데, 이름 그대로 여진 정벌을 위해 별도로 창설한 임시 군대다. 비록 숙종은 별무반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1107년에 윤관은 드디어 별무반을 선봉으로 삼아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동북 원정에 나선다. 아무리 여진이 날랜 기병대를 가지고 있고 한창 끗발이 오르는 시기라 해도 변변한 국가조차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고려의 대군을 맞아 이길 수는 없다. 결국 이 전쟁은 윤관과 척준경(拓俊京, ?~1144)을 스타로 만들면서 고려의 압승으로 마무리 된다. 윤관은 함흥에서 길주에 이르는 지역에 성을 쌓고 개선했다.

 

내친 김에 두만강까지 치고 올라갔다면 삼국시대 이래 처음으로 한반도 전역이 한반도 왕조의 손아귀에 들어왔으리라. 하지만 불행히도 고려는 어렵게 얻은 9성마저 오래 보유하지 못한다. 삶의 터전을 잃은 여진이 강력히 반발하자 고려 조정에서는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든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튀어나온다. ‘줘도 못 먹나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일 게다. 개국 초부터 외쳐왔던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진취적 기상은 이미 체제 안정기에 접어든 고려 조정에서 슬로건으로도 사용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대신들은 오히려 새로 개척한 땅이 너무 넓지 않느냐며 아우성이다. 대다수 대신들이 9성의 반환을 주장하는 판에 학문을 사랑하는 문화군주인 예종이 굳이 반대할 리 없다.

 

결국 여진에게서 평화 유지를 약속받는다는 조건으로 9성은 여진에게 반환되었고, 윤관(尹瓘)은 졸지에 개선장군에서 비운의 스타로 전락했다. 영토 개척의 공로를 인정받기는커녕 명분 없는 전쟁으로 국력을 탕진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관직까지 삭탈당한 윤관, 그나마 예종이 그를 처벌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끝내 물리치고 보호해준 게 다행이었다 할까?

 

사실 당시 욱일승천하는 여진의 기세를 감안하면 고려 조정의 비겁한 태도가 오히려 현실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9성을 둘러싸고 벌인 그 해프닝은 여진의 세력 확장에 엔진을 달아준 격이 되었다. 한 때 여진을 놓고 거란과 핑퐁 게임을 벌이던 거란과 고려는 어느새 서산에 지는 해가 되어 버렸고(하기야 고려는 별로 높이 떠본 적도 없긴 하지만) 이제 여진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9성을 돌려받은 지 불과 몇 년 뒤인 1115년에 여진은 드디어 나라를 이루고 금()이라는 국호를 채택하기에 이른다(거란과 달리 처음부터 중국식 국호를 정한 데서도 여진의 포부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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