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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7부 유교왕국의 완성 - 3장 팍스 코레아나, 문자의 창조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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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7부 유교왕국의 완성 - 3장 팍스 코레아나, 문자의 창조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17.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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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창조

 

 

하지만 만들어 놓고도 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갓 태어난 훈민정음의 시운전은 집현전 학자들 중에서도 고참에 속하는 권제(權踶, 1387 ~ 1445)와 정인지, 안지(安止, 1377 ~ 1464)가 맡았다. 14세기에 출생한 노장파에 어울리게 1445년에 그들이 지은 최초의 한글 작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이성계의 조상들에서부터 세종에 이르기까지 조선 왕실의 인물들을 칭송한 시가다. 이듬해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首陽大君, 1417 ~ 68)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부처의 일생을 묘사한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지었고, 여기에 세종은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직접 지어 화답한다. 이렇게 왕실과 사대부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한글은 그 해 말에 아전들을 뽑는 이과(吏科)의 과목에 포함되기에 이른다.

 

만약 그런 분위기가 지속되었더라면 한글은 아마 일찌감치 조선의 국어'로 자리잡았을 것이며, 머잖아 공문서를 작성하는 데까지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은 얼마 못 가서 사장될 운명에 처한다. 나중에 보겠지만 그 주범은 조선 중기에 접어들면서 왕권을 누르고 정치 권력의 중심에 복귀하는 조선의 사대부들이다. 한자 문화에 경도된 그들이 조선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한글은 멸시되고 공식 문자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닫히게 된다그 덕분에 지금 쓰는 한글이라는 이름도 실제 한글이 생겨난 지 400여 년이나 지나서야 탄생하게 된다. 처음 태어났을 때 훈민정음이라는 책 이름으로 불리던 한글은 나중에 언문(諺文)이라는 한자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속된 말, 상스런 말이라는 뜻이므로 한글은 처음부터 대단히 모욕스러운 이름을 지니게 된 것이다. 16세기에 최세진(崔世珍, ? ~ 1542)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한글을 반절(反切)’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것도 한글의 철자가 한자의 일부분이라는 뜻이므로 언문 못지 않게 치욕적인 이름이다(예를 들어 의 음은 덕홍德紅切이라고 하는데, ‘의 초성 을 따고, ‘의 중성과 종성인 ’, ‘을 따서 자의 음을 표기한다는 뜻이다). 1894년 갑오개혁 때 한글의 이름은 언문에서 국문으로 바뀌었다가 최초의 한글 전용주의자인 주시경(周時經, 1876 ~ 1914)에 의해 처음 한글로 불리게 된다.

 

그나마 규방의 부녀자들이 아니었다면 한글은 전승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그 때문에 한글은 한때 암클’, 즉 여자들이나 쓰는 문자라는 이름까지 얻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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