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지 못한 실학③
북학파가 중상학파라면 내부 개혁론자들은 중농학파라고 부를 수 있다. 또한 당시에 중국에서 유행했던 용어를 빌려 말하면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는 학자들이 중상학파에 해당하고, 경세치용(經世致用)을 주창하는 학자들은 중농학파에 해당한다고 구분할 수도 있다(강조점은 약간씩 다르지만 이용후생, 실사구시, 경세치용은 모두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고민을 하자는 뜻이다).
북학파 | 내부 개혁론자 |
중상학파(重商學派) | 중농학파(重農學派) |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 |
경세치용(經世致用) |
박지원, 박제가 | 이익, 정약용 |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름이나 이론이 아니다. 중상이든 중농이든 다 좋다. 이용후생이든 경세치용이든 다 잘 해보자는 이야기다. 문제는 실학자들이 내놓은 대안들이 현실의 정책으로 채택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뭘까?
우선 그들의 제안이 대부분 탁상공론에 머물고 있다는 게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실학자들은 머릿수만큼 다종다양한 개혁안을 내놓았으나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은 별로 없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그들이 이룬 가장 중요한 업적은 단지 저마다 책을 저술해서 실학 관련 문헌들만 늘려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들이 새로운 학풍을 주장하면서도 성리학의 기본 테두리에서 결코 벗어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문의 초보적인 분과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성리학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실학자들은 각자 나름대로 방법론을 정립하고, 마치 백화점에 물건을 늘어놓는 것처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정책화할 만큼의 전문성을 갖춘 대안이 나오기란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실학자들은 중앙정치 무대에 깊숙이 침투하지 못했다. 이론을 정책으로 만들려면 물론 이론도 좋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학문과 정치의 현실적인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앞에서 학자 관료라는 표현을 썼듯이 유학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학문적 성과가 곧바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 실학자들은 현실 정치로부터 소외된 처지가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의 이론도 대부분 처음부터 정책화되지 못할 운명이었다(아마 이런 현실이 그들의 구상을 더욱 탁상공론으로 몰아갔을 터이다). 유형원도 재야인사였을뿐더러 중농학파의 태두였던 이익도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은 실학의 그런 운명을 말해준다(그러나 이익은 그 자신도 학문의 대가였을 뿐 아니라 아들, 조카, 손자에 이르기까지 가문에서 많은 실학자들을 길러내 실학에 크게 기여했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