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성의 사유를 공격한 어느 동양철학자
앞서 보았듯이 알튀세르는 서양철학사에 면면히 흐르는 상반되는 두 가지 사유 경향을 발견합니다. 그 하나가 필연성의 철학이라면, 다른 하나는 우발성의 철학이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구분은 단지 서양철학의 흐름에서만 발견되는 것일까요? 분명 그렇지는 않습니다. 순자의 사유에서 엿볼 수 있었듯이, 동양철학에서도 방금 언급했던 두 가지 사유 흐름이 서로 대립하며 전개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순자는 기우제를 지내는 것과 비가 내리는 것 사이의 관계가 단지 우발적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뒤 같은 유학 사상가였던 동중서(董仲舒, BC 176~104)【동중서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로 유명한 한나라 때의 유학자이다. 천인감응설은 글자 그대로 하늘로 상징되는 자연계의 변화가 군주로 상징되는 인간계의 변화를 낳고, 역으로 인간계의 변화가 자연계의 변화를 낳을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종교적인 철학이자 동시에 철학적인 종교라고도 할 수있는 천인감응설은, 그후 중국 사유의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는 강력한 요소라는 점이 중요하다. 동중서의 사상은 『춘추번로(春秋繁露)』에 잘 드러나 있다】는 다시 둘 사이의 관계가 필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늘에는 음과 양이 있으며, 사람도 또한 음과 양을 가지고 있다. 하늘과 땅의 음기가 일어나면 사람의 음기도 이에 대응해서 일어난다. 또 역으로 사람의 음기가 일어나면 하늘과 땅의 음기도 또한 이에 대응해서 일어나게 된다. (자연계와 인간계의) 도(道)는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비가 오게 하려면 음을 움직여 작동하도록 해야 하며, 비가 그치게 하려면 양을 움직여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춘추번로(春秋繁露)』 「동류상동(同類相動)」
이것은 ‘천인감응(天人感應)’으로 알려진 동중서의 유명한 주장입니다. ‘천인감응’은 말 그대로 ‘자연과 인간이 서로 반응한다’는 이론이지요. 자연이나 인간은 모두 음(陰)과 양(陽)이라는 두 가지 계기를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음은 자연의 음을 초래하고 역으로 인간의 양은 자연의 양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이구요. 동중서의 말이 옳다면 이제 우리는 비를 내리게 할 수도, 혹은 반대로 비를 그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는 축축하고 습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음’을 활성화시키는 제사를 통해서, 예를 들면 물을 뿌린다거나 아니면 동물의 피를 흘린다거나 하는 예식을 통해서 비를 오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동중서의 이야기대로 기우제를 지냈는데도 비가 계속 오지 않는다면, 그의 이론은 결국 좌절되고 말까요?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는 아마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않아서 정성이 부족하여 비가 오지 않을 뿐이라고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언제까지 동물을 계속 죽여야 할까요? 여러분은 이미 눈치 챘겠지만, 그것은 분명 비가 오는 바로 그 순간까지입니다. 동중서가 아무리 많이 배운 박식한 유학자라고 할지라도, 그의 생각은 심청을 인당수에 던져 넣었던 뱃사람들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죠.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동중서가 필연성의 철학을 주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왕충(王充, 27~100)【왕충은 중국 후한 시대에 활동했던 탁월한 자연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이나 귀신설 같은 일체의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사유를 공격했다. 그가 모든 종교적인 사유를 공격할 때 취한 이론적 무기가 바로 우발성이란 관념이었다. 우발성이란 관념의 파괴력을 은폐하기 위해 주류 중국철학 전통은 아직도 그를 숙명론자라고 비난하면서 폄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의 사상은 『논형』이란 저서에 잘 드러나 있다】이라는 자연주의자가 또다시 중국에 태어납니다. 헤겔이 등장하자 맑스가 등장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게 말이죠.
어떤 사람의 품성은 어질 수도 있고 어리석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화와 복을 만나는 것은 우발적인 문제일 뿐이다. 일을 시행할 때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상과 벌을 만나는 것은 우발적인 문제일 뿐이다. 같은 시간에 적병을 만났을 때 숨어 있던 자는 칼에 맞지 않을 수 있고, 같은 날 서리를 맞았을 때 몸을 가린 자는 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칼에 맞거나 상해를 입었다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고, 숨어 있거나 몸을 가리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숨어 있거나 몸을 가리고 있던 경우나, 칼에 맞거나 상해를 입는 경우도 모두 우발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함께 군주에게 충성을 다했는데, 어떤 사람은 상을 받고 어떤 사람은 벌을 받을 수도 있다. 함께 이득을 얻으려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신용을 얻고 어떤 사람은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상을 받고 신용을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참되다고 할 수 없고, 벌을 받고 의심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거짓되다고 할 수도 없다. 상을 받고 신용을 얻은 경우나, 벌을 받고 의심을 받은 경우 모두 우발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논형(論衡)』 「행우(幸偶)」 1
凡人操行, 有賢有愚, 及遭禍福, 有幸有不幸. 擧事有是有非, 及觸賞罰, 有偶有不偶. 並時遭兵, 隱者不中 ; 同日被霜, 蔽者不傷. 中傷未必惡, 隱蔽未必善, 隱蔽幸, 中傷不幸. 俱欲納忠, 或賞或罰 ; 並欲有益, 或信或疑. 賞而信者未必眞, 罰而疑者未必僞, 賞信者偶, 罰疑不偶也.
어떤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고 해봅시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벼락을 맞아 죽은 남자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 평상시 선한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며, 결국 천벌을 받았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또한 그의 유족들마저도 벼락에 맞아 죽은 그 남자를 달갑지 않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충은 사람이 선하고 악한 것과 그 사람에게 화나 복이 이르는 것 사이에는 어떤 필연성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악한 사람에게 복이 올 수도 있고, 반대로 선한 사람에게 화가 닥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기우제를 지낼 때 비가 오는 것과 같은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왕충은 우발성을 인간 사회의 내부, 즉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도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면, 신하에게는 그에 걸맞은 상이 내려져야겠지요.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과연 충성을 다한 사람이 항상 그런 대우를 받았었나요? 오히려 충성스런 신하가 어리석거나 잔인한 군주를 만나서 죽은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신하가 군주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자신과 관련된 일, 즉 군주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는 덕목과 용기를 키우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알아줄 군주를 만났느냐, 혹은 만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역량 밖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상한 고독감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이런 느낌은 바로 우발성의 진리로부터 유래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충성스런 신하가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즉 세계에는 만남과 마주침이 편재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엄연한 진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는 내릴 수도 있고,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는 기우제를 지낼 수도 있고, 지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기우제를 지냈을 때 비가 내릴 수도 있고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반대로 기우제를 지내지 않았는데도 비가 내릴 수도 있고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우제를 지내는 인간의 행동과 비를 내리는 자연의 작용이 서로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난다고 해도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우발적인 것이라고, 즉 그것은 하나의 우발적인 마주침에 불과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왕충이 중요한 이유도 그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서도 우발성의 진리를 관철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동양철학 전통에서 필연성의 허구를 폭로하고 우발성을 사유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철학자들 속에 포함될 수 있을 겁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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