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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만나다,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 3장 철학의 은밀한 두 가지 흐름, 두 가지 사유의 이미지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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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만나다,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 3장 철학의 은밀한 두 가지 흐름, 두 가지 사유의 이미지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2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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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사유의 이미지

 

 

마지막으로 들뢰즈의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이 문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알튀세르와 마찬가지로 그도 철학의 은밀한 두 가지 흐름을 발견했던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리좀은 출발하지도, 끝에 이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는 사이존재이고 간주곡이다. ‘나무는 친자 관계(filiation)를 이루지만 리좀은 결연 관계(alliance)를 이루며, 오직 결연 관계일 뿐이다. 나무는 ……이 존재한다(être)’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et) ……(et)……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 존재한다라는 동사에 충격을 주고 뿌리를 뽑을 수 있는 힘이 충분하게 들어 있다.

천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들뢰즈는 우리의 사유를 두 가지 이미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나무(tree)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리좀(rhizome, 뿌리줄기)리좀과 나무를 서로 비교하면서, 들뢰즈는 리좀에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공식을 제안하고 있다.(천개의 고원) 그것이 바로 ‘n-1’이라는 공식이다. 사태들의 다양성(n)을 긍정하기 위해서 들뢰즈는 이 다양성을 인위적으로 통일시키는 통일성이나 중심(1)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이란 이미지입니다. 나무는 땅에 굳건히 뿌리를 박고 서서 무성한 가지와 잎을 지탱합니다. 나무의 뿌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가지와 잎에 앞서 존재하는 절대적인 토대, 즉 절대적인 의미이자 필연성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들뢰즈는 뿌리와 줄기로 구성된 나무 이미지를 아버지와 아들의 구조로 이루어진 친자 관계에 비유합니다. 아버지가 없다면 아들은 존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관계에서 절대적 의미를 지닌 것은 바로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리좀은 어떻게 활동하는지 주목해보지요. 이것은 땅속에서 부단히 증식하면서 다른 뿌리줄기와 연결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온갖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식물입니다. 리좀의 활동이 새로운 연대와 다양한 유대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들뢰즈는 남녀가 만나서 맺어지는 것과 같은 결연 관계에 그것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 때문에 리좀은 새로운 타자, 새로운 사건과의 우발적인 마주침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지요.

 

그런데 들뢰즈의 이야기에서 조금 어려운 대목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나무는 ………이 존재한다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는 대목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프랑스 지식인들 특유의 현란한 문체에 너무 현혹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읽으면 됩니다. 여러분의 존재를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물론 두 분이 서로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두 분은 우연히 만났고, 두 분의 사랑을 통해 정자와 난자가 서로 만나서 수정체를,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이루어냈죠. 물론 정자와 난자는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태어나서 특정한 친구와 우정을 맺은 적이 있지요? 물론 그 친구와도 만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군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물론 이 경우도 여러분은 사랑하는 상대와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발적인 만남이 계속 이루어지면서 여러분은 바로 현재의 여러분으로서 존재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런 무한한 만남을 들뢰즈는 ………………라는 접속사, 즉 프랑스 말 ‘et’로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런 예기치 않았던 사건과의 마주침, 즉 우발적인 만님의 결과물입니다. 결국 여러분이 나는 이러저러한 존재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기우제를 지낸 후 비가 온다고 해서 두 사건 사이에 필연성이 있는 것은 아닌 것과도 같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우리의 존재란 확고 불변한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여러분, 그리고 저 자신은 무한한 우발적인 만남의 결과, ‘………………로 설명될 수 있는 우연한 만남의 효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결코 불안해하지는 말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괴로운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지금과는 또 다른 사람, 혹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생성될 수 있다는 축복 말입니다. 앞으로 예기치 못한 우발적인 만남과 사건으로 여러분의 삶이 수놓아질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책과의 만남도 그리고 저와의 만남도 우리의 삶을 다르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 저의 바람이기도 하구요. 여러분과 저와의 만남! 그리고 여러분과 저의 또 다른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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